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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메신저 Jul 24. 2020

나는 더 이상 네 인생 들러리가 아니야!

말 쓰레기 버리기



큰 아이를 낳은 지 7개월 되었을 때 친구가 미국에서 결혼을 했고 들러리를 하기 위해 신랑과 아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갔다.  미국 문화를 전혀 모르는 나는 친구가 원하는 대로 준비하고 움직였다. 하지만 모든 일이 순탄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결혼을 했고 달라진 삶을 살고 있었다. 친구 역시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었다.


인생의 매우 중요한 순간에 우리 두 사람은 서있었다.


열 살 아이의 마음으로 서른 살이 겪어야 할 문제 앞에 서있었다. 열 살은 서른 살 어른이 할 일을 할 수 없다.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면서 나는 예전에 내가 생각하던 모습으로만 친구를 느끼고 생각했고 기대했다. 그동안 얼마나 변하고 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무뎠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온 맘 다해 친구를 위해 움직였다.


내 시간, 내 마음, 내 돈, 내 신랑과 아이까지도 뒤로 미루고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게 잘못이었다.


나는 그때 내 신랑과 아이를 지켜야 했고 내 시간과 내 마음을 지켜야 했다. 친구를 위해 쓸 수 있는 돈도 미리 정했으면 좋았을지 모르겠다. 나는 내 모든 걸 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친구였기 때문에 아무런 계산도 하지 않았다. 친구의 기대대로 내가 움직이지 못했을 때 친구가 말했다.



"이럴 거면 뭐하러 여기까지 와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

순간 심장이 멎는 느낌과 동시에 생각이 멈췄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정신을 차리고 나서 내가 한 행동은 사과였다. “미안해. 널 힘들게 할 생각은 없었어.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나는 친구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그때, 내 마음을 돌봐줄 사람은 없었다. 내가 나를 돌보지 않는데 누가 나를 돌볼까?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생각했다. 나는 거기에 왜 간 걸까.




아들러는 삶의 모든 문제는 인간관계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살면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들 중에는 다시 보지 않을 사람도 있고, 일로만 만나는 사람도 있고, 인생을 나누는 소중한 사람도 있을 것이며, 잘 지내다가 연락을 끊고 지내는 사람도 있을 거다. 이들 중에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잘 지내다가 연락을 끊고 지내게 된 사람이다.

나는 관계중심으로 살았다. 관계가 중요했기에 해야 할 일보다 사람이 먼저였다. 나는 내 인생 제일 앞에 절친을 세워두고 살았다. 나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었다. 그렇게 사는 동안은 몰랐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사람이 친구였다는 걸.

20년을 함께 지낸 절친과 연락을 끊고 나서 돌아보니 알게 됐다. 그런 절친과 사이가 멀어질  나는 인생을 잃은  같은 상실과 공허, 두려움이 있었다.

"친구 관계에도 서열이 있어."


절친은 항상 그렇게 말했다. 나나 다른 친구들은 그러려니 했다. 우리랑은 생각하는 방식이 약간 다르고 그게  친구가 가진 매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친구관계 서열 1번에 항상  친구를 놓아주었다. 나는 서열에 관심 없는 사람이었고 다른 친구들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친구관계 서열이  인생에 이렇게 크게 영향을 줄지 꿈에도 몰랐다. 나는 무의식으로 항상  친구를  인생  앞에 놓고 살았다. 우정 테스트를 해본 일이 있는가?
어떤 항목이 있는  아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 나랑 친해 걔랑 친해?"

"내가 죽을병에 걸리면 너는  위해 죽을  있어?"


이런 질문이 난처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대답을 피할 수도 없었다. 대답을 해야 상황이 끝났으니까. 나는 친구를 위해 대답했고 언제나 내 대답은 같았다.
"나는 너랑 가장 친해."

"죽을 일이 없어야겠지만, 대신 죽을  있지."
나는 대답만 할 뿐 되묻지도 않았다. 너는 나를 위해 대신 죽을 수 있느냐고. 너는 나랑 친하냐고 쟤랑 친하냐고. 나한테는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친구가 좋았고 그 친구가 마음 상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우리는 20년을 함께 했다.




한국에 돌아와 심한 우울감으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심장을 멎게 만든 그 말은 나한테 쓰레기였다. 그런 말을 듣고 나는 구겨서 버렸으면 됐는데 4년 동안 가지고 다니면서 마음 아파하고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힘들어했다. 그 말 때문에 나는 친구와 나를 떨어져서 볼 수 있게 됐다. 지난 20년의 세월이 중요하지 않게 됐다. 어쩌면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서로한테 필요한 것을 서로 나누었고 이제 남은 것은 사소한 감정과 나누지 않아도 될 말 쓰레기 정도가 아닐까.


더 이상 마음 쓰지 않기로 했다. 지난 20년 동안 서로한테 좋은 사람이었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랜 연인과 이별하듯 나는 20년 지기 절친을 내 마음에서 버렸다. 그리고 찾은 건 나였다. 거리가 없던 관계에 거리를 두고 나니 보이는 것이 아주 많이 생겼다.

아쉽지만 나는 더 이상 네 인생 들러리가 아니야. 그걸 깨닫기 위해 내가 거기에 갔었나 봐. 나 때문에 힘들었지? 그럼 이제 그만 힘들고 각자 잘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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