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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메신저 Aug 20. 2020

운전 못하는 아내

"자기가 운전을 해봐야 알아!"


젠장  괜찮다고 말했다.

집으로 가는 길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자전거 한 대가 차 앞을 가로질러갔다. 아찔한 기분이 들었지만 자전거를 탄 사람은 차를 의식하지도 않고 계속 앞서 갔다. 차 두 대가 겨우 비껴가야 하는 골목에서 자동차를 앞질러 질주하는 자전거.. 신랑은 운전을 하면서 ‘부우웅’ 하고 신호를 보낸다.

나:(아찔하다)

신랑: (또다시 부우웅 하고 신호를 보낸다)

나: 오빠!!

신랑: 왜! 왜 그러는데!!!

나: (고개를 돌려 앞을 본다.)

아이들: (울음을 터트린다.) 엄마 아빠 그만 해. 엄마 아빠 싸우는 거야?

나: 아니야. 엄마가 좀 놀란 거야. 괜찮아.

젠장.... 또 괜찮다고 말해버렸다. 하나도 안 괜찮다.

두 아이 카시트를 뒷자리에 설치하고도 한동안 나는 카시트 사이에 껴 앉아서 다녔다. 둘째가 엄마를 찾기도 하고 차멀미가 심한 큰 아이를 돌보려면 차라리 불편해도 뒤에 앉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조수석에 앉기 시작한 지 몇 개월 안됐는데 생각보다 앞자리가 많이 불안했다. 앞에 가는 오토바이도 사람도, 옆으로 다가오는 버스도 왜인지 무섭게 느껴졌다.


지나치게 예의 바른 여자

나는 지나칠 정도로 예의 바른 사람이고 다른 사람한테 피해 주는 일을 싫어한다. 그래서 '배려'를 많이 한다. 불편한 건 오히려 내쪽에서 감수하지 상대방이 불편함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 그런데 신랑은 나랑 다르다.

신랑은 불편한 걸 싫어한다. 자기한테 피해 주는 사람을 싫어한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거 같다. 나한테는 다정하고 자상하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 경우에 어긋나는 일도 쉽게 보아 넘기지 못한다. 나는 그런 신랑이 불편할 때가 있다. 굳이 꼭 그렇게 티를 내야 할까?

신랑은 자기편을 들어주기보다 모르는 사람, 우리랑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내 모습에 서운함을 느낄 때가 있다고 말한다. 나는 지나치게 예의 바르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신랑한테 '예의'와 '배려'를 강요하고 있었다.

자동차 사건? 이 있고 난 뒤 3일 동안 우리는 별 말없이 지냈다. 오래 끌고 갈 일은 아니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서 이야기를 풀지 못했고 뒤늦게 이야기를 했지만 찝찝하기만 했다. 아오 불편해....


자기가 운전을 해봐야 알아.

이 일은 이렇게 끝맺음이 되었다. 내가 정말 운전을 해봐야 신랑의 마음을 알게 될까?

아니다. 우리는 운전 때문에 서로 화를 냈던 게 아니다. 본질은 따로 있었는데 그동안 쌓였던 감정을 그날, 우리 차 옆을 지나간 자전거에 대고 쏟아낸 것뿐이었다. 

신랑은 내가 오빠!! 하고 외쳤을 때 왜!! 왜 그러는데!! 하고 받아쳤다. 원래 우리 신랑은 나한테 큰소리 내는 법이 없다. 언제나 나한테 미안하다고 말하고 이해하고 맞춰주는 편이다. 그런 신랑이 대뜸 나한테 소리를 쳤다는 건 쌓인 무언가가 있다는 신호였지만 나는 그런 신랑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지나칠 정도로 배려하는 내가 신랑한테는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쌓여있던 내 마음을 꽁꽁 싸매버렸다.


나한테 솔직하지 못해서..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오늘도 하루를 보냈다. 불편한 자리를 살펴봤다. 나는 왜 화가 났지? 왜 풀리지 않고 찝찝하지? 불편했던 자리를 곱씹다 보면 그 까닭을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악착같이 불편한 자리를 파고든다. 

얼마 전 내 동생은 유방암 2기 판정을 받았다. 수술 전 항암 치료에 들어갔고 이제 2차 항암치료를 받았다. 나는 동생 집에서 조카들을 함께 돌보기도 하고 우리 집에 조카를 데려오기도 한다. 동생이 아픈데 언니인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마음이 아플 때가 많다. 동생이 아프고 몇 번이나 신랑이 동생 집에 갔지만 '처제 괜찮아?' 하는 말이 없다. 병원에 다녀와서 힘들어 보이는 동생 앞에서 괜찮냐는 말이 아니라 주택 청약 얘기나 하고 있는 신랑이 미웠다.

신랑에 대한 기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신랑한테 드는 서운함 야속함 미움들이 내 안에 쌓였던 거다. 제때 풀지 못하고 괜히 지나가던 자전거 탄 사람과 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신랑 태도에 화를 내버리고 만 거다. 

내가 신랑한테 느낀 서운함을 제 때 말했다면,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에서 다투지 않아도 됐을 거다. 에둘러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됐을 거다. 나는 신랑한테 서운했던 일을 제때 표현하지 못하고 아닌 척하며 내 감정을 숨겼다. 그리고 신랑을 매너 없는 사람으로 몰아붙였다. 단지 동생한테 "괜찮냐"는 말을 직접 말하지 못했을 뿐이지. 신랑도 함께 아파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신랑이 자상하게 말해주길 바랐던 모양이다. 


동생이 유방암이라는 말을 듣고 몇 날 며칠을 울었다. 그때 여섯 살 큰 딸이 와서 말했다.

주아: 엄마 이모가 아파서 속상해? 미안해?

나: 응.. 

주아: 엄마 미안해하지 마. 이모가 그냥 조금 아픈 것뿐이야. 엄마 잘못이 아니야..

서른다섯인 나는 여섯 살 딸도 아는 걸 모르고 있었다. 동생이 아픈걸 미안해하며 죄책감으로 끌어안으려 할 때, 딸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거다. 동생이 아픈 게 내가 미안해할 일은 아니라는 걸. 그저 이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나가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라는 걸. 


내 감정을 제 때 알아주는 일, 내 감정을 제 때 표현해주는 일은 나를 건강하게 만든다. 내 삶을 단단하게 해 준다. 내 가정을 지켜준다. 그걸 알면서도 그러지 못할 때가 있다. 얼마나 더 많은 훈련이 돼야 하는 걸까?

“에라이, 나도 이제 운전하련다. 나는 운전면허 학원에 전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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