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균형이 먼저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받는 벌칙은 약방의 감초입니다. 그중에서도 우리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은 ‘고무줄로 맞기’입니다. 길게 잡아당긴 끈의 한 쪽을 놓으면 고무줄은 채찍처럼 날아가 상대방의 얼굴에 꽂힙니다. 시청자는 출연자가 우스꽝스럽게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합니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싶은 취미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일까요? 그 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줄을 놓았을 때 힘이 생기는 이유는 균형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잡아당기는 동안에는 당기는 힘과 버티는 힘이 서로 같기 때문에 고무줄이 튕겨나갈 염려가 없습니다. 그러나 둘 중 어느 한쪽이 버티던 손을 놓으면 상황은 완전히 반대로 바뀝니다. 고무줄은 순식간에 반대편으로 날아간 뒤 상대방의 얼굴에 큰 고통을 선사합니다.
우리는 이 사례를 통해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삶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우리는 간단한 고무줄에조차 힘의 원리가 적용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일이 잘 되고 있을 때 이런 사실을 떠올리지 못합니다. 아마 그 당시에는 크게 필요하지 않다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고대에는 균형을 어떤 방식으로 유지하려 했을까요? 이 기준은 나라별로 조금씩 다릅니다. 예를 들어 아테네는 교양을 고루 갖춘 인간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들이 교육을 했던 초기에는 체육학교·음악학교가 발달하였고, 후기에는 소피스트의 수사학교(修辭學校)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인 교육 등이 성행했습니다. 이 방식은 후에 서구에서 이상적으로 꼽는 모범 사례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스파르타는 조금 다릅니다. 7세 이상의 모든 남자아이들은 기숙학교에서 공동생활을 하면서 20세까지 철저한 군사훈련을 받고, 30세까지 군복무를 하고 나서야 시민권이 부여되어 결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스파르타에서는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용감한 군인을 꼽았습니다. 이런 인식은 자연스럽게 교양보다는 육체적인 힘을 바탕으로 일사불란한 체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을 강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스파르타의 시스템은 사회적인 합의나 토론보다는 오히려 개인에게 삶에 필요한 능력들을 길러주는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군주론의 저자인 마키아벨리는 이들 중 스파르타의 방식을 지지합니다. 그가 이상적인 사례로 꼽은 인물은 리쿠르고스. 마키아벨리는 로마사논고에서 그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이러한 정치질서를 만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크게 명성을 떨친 자는 리쿠르고스이다. 그는 왕, 귀족 및 민중에게 각각의 몫을 인정하는 법률을 스파르타에 마련해줌으로써 그 국가로 하여금 800년 동안이나 지속하도록 만들었다. 그 법률 덕분에 그는 최고의 명성을 누리게 되었고, 그 도시는 오랫동안 평화를 즐길 수 있었다.”
제가 생각하는 균형의 개념은 ‘힘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상태’입니다. 리쿠르고스는 스파르타의 모든 백성에게 각자 필요한 것을 보장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몫을 챙겨주면서 각 세력 간 힘의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배려했다는 점입니다. 아테네의 솔론이 민중에 의해 지배되는 국가를 조직했던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입니다. 예상대로 솔론의 시스템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논의는 자주 발생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이하 사민주의)입니다. 이 글을 통해 경제 이야기를 자세히 할 것은 아니므로 핵심만 간단히 요약해보겠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자율성을 중시합니다. 반면에 사민주의는 정부의 개입과 복지를 강조하죠. 신자유주의는 미국과 우리나라가 채택한 제도, 사민주의는 유럽 복지국가의 모델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이 중 어느 방식이 더 좋을까요?
먼저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주도하에 국가의 양적 지표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에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이 커진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내포합니다. 반면에 사민주의는 강력한 복지를 통해 모든 사람의 균형을 추구합니다. 허나 고소득층에게 엄청난 규모의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에 그들의 근로의욕을 하락시키기도 하죠.
그런데 사실 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이 논의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길을 찾지도 못하는데 국가의 제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이 큰 의미가 있을까요? 삶의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 자신을 돌보지 않고 다른 것을 먼저 하는 행위는 장기적인 측면에서 볼 때 썩 바람직한 편이 못됩니다. 대개 지도자들은 일반적인 경우 자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활용합니다. 그런데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개인은 이런 방식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자신의 몸을 세상에 맡길 뿐이죠. 상황은 당연히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개인적 삶의 균형을 회복해야 합니다. 지도층이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신자유주의나 사민주의와 같은 경제 정책을 택하는 것처럼 삶을 움직이는 자신만의 법칙을 세워 봅시다. 각자의 입장에 따라 그 법칙은 다르게 적용되어야만 합니다. 꾸준히 실천하는 가운데 더 나은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키아벨리가 원했던 것도 아마 이 부분이 아니었을까요? 로마사논고에 나와있는 다음의 문구는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줍니다.
“스파르타는 1인의 왕과 소수의 원로원에 의해 다스려졌다. 국가가 그토록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로는 스파르타에 주민의 수가 적었다는 점, 그곳에 이주해 오려는 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지 않았다는 점, 리쿠르고스가 만든 법률 (그 법률을 통해 분란의 모든 소지들이 제거되었다)이 준수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오랫동안 단결을 유지하며 살 수 있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다스리는 일(修身)’입니다. 삶의 균형을 맞추려면 가장 먼저 스스로를 안정시켜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삶은 지금 어떻습니까? 만약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균형을 찾는데 필요한 조건을 갖추도록 노력합시다. 변화는 그곳에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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