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반드시 피해를 본다... 그럼 어떻게 할까?
“인간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에 기록한 내용입니다. 모두가 상생하는 시스템은 과연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대답에 부정적입니다. 아쉽게도 사냥을 하며 살았던 선사시대의 부족사회를 제외하고는 모든 역사가 계급의 대립 관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 이름만 조금씩 바뀌었을 뿐이죠. 농경사회에서는 영주와 농노, 산업혁명 시절에는 자본가와 노동자 등으로 이 관계는 조금씩 변해왔습니다.
계급의 대립이란 어느 한 집단이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역사에는 이에 대한 기록이 참 많습니다. 노동자가 원가 절감을 위해 공장에 설치된 기계를 파괴하며 스스로의 권리를 되찾으려 했던 러다이트 운동이 대표적입니다. 반면에 자본가들은 노동자 주도로 발생했던 비슷한 형식의 활동을 뼛속 깊이 증오했습니다. 이처럼 대개 누군가의 이익은 다른 집단의 손해로 작용합니다. 마키아벨리 역시 이 의견에 동의했던 것 같습니다. 다음은 이 사실에 대한 그의 의견이 수록된 로마사 논고의 문구 중 일부입니다.
“군주들은 부유한 것처럼 살고 싶어 했기 때문에, 엄청난 수탈을 자행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취한 비열한 방법 중 하나가 특정한 행동을 금지하는 법들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자신들이 먼저 핑계를 대고 그 법에 복종하지 않았으며, 많은 백성들이 위반하는 것을 발견하게 될 때까지 위반하는 자들을 처벌하지 않고 방치하였다. 그런 다음 그들은 처벌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는데, 그 이유는 준법정신에 대한 열의에서가 아니라 벌금을 징수하려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위 문구에서 핵심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프레임’입니다. 군주들은 재산을 축적하기 위해 모든 국민이 지켜야 할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규칙을 만드는데 참여할 수 있는 권한조차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따라야 했습니다. 당연히 이런 법칙은 전적으로 지배층에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세부적인 내용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역사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배층은 규칙을 어떤 방식으로 설계할까요? 이는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세율을 높여서 사람들을 쥐어짜는 것과 동시에 그들에게 줄 돈의 규모를 줄이는 것(복지 축소)입니다. 이렇게 하면 전체적으로 국가에 걷히는 돈의 양이 늘어납니다. 만약 이때 나쁜 마음을 먹고 있으면 늘어난 세금은 거의 대부분 지배계층의 주머니로 들어갑니다. 대개 이런 현상은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을 도구로 보는 시각이 강할 때 발생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악습은 고대부터 있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 제199조에는 ‘다른 사람이 소유한 노예의 눈을 다치게 하거나 뼈를 부러뜨린 사람은 그 노예 값의 절반을 주인에게 물어 주어야 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예를 돈으로 계산할 수 있는 물건으로 보지 않았다면 이런 조항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반면에 세금을 많이 걷기 위해 세율을 낮추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개 이러한 성향을 가진 리더들이 사용하는 방식은 거둬들이는 세금의 양을 파격적으로 할인하고, 완전히 납부할 경우 남는 생산물은 그들의 개인 소유로 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자신의 재산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욕이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높습니다. 이는 농산물의 전체 생산량을 증대시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거둬들이는 세금의 양도 늘어나죠. 종래에는 세율은 낮으면서도 거둬들이는 세금의 양은 많아지는 이상적인 상황이 발생합니다.
어찌 되었건 이런 관계 속에서도 유리한 것은 지배계층입니다. 비록 두 번째 전략이 처음에 말했던 사례보다는 인간적이지만 결국 위에서 언급한 방법들은 백성보다 지배계층이 더 쉽게 재산을 축적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처럼 세금이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지배계층이 피지배계급을 착취하는 구조가 형성된 근본적인 원인은 지배층이 지닌 토지, 공장과 같은 생산수단입니다. 이 수단을 갖지 못한 서민계층은 자신의 노동력을 지배계급을 위해 제공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일을 한 다음 급여를 받는 형식으로 말입니다. 보수는 예전에는 곡식, 요즘은 화폐의 형태로 제공되었습니다. 문제는 노동력이라는 가치를 판단하는데 필요한 정확한 기준을 세우기가 어렵기 때문에 특정한 협의를 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급여가 대개 최저 수준으로 책정된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착취된 수익은 지배계층의 힘을 강화하는 데 사용됩니다. 안타까운 현상입니다. 슬프게도 역사는 거의 대부분 이런 관계 속에서 형성되어 왔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한 사람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칼 마르크스입니다. 그의 작품인 자본론을 보면 해당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죠.
오늘날에 일어나고 있는 일도 곰곰이 살펴보면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계화의 탓인지 이전과는 다른 반응이 종종 나오기도 합니다. 자신을 수탈하려 하는 지배층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거나 (이민, 국적 포기), 권력층의 생산수단을 빌지 않고 스스로 부를 축적하는 방법(지식노동자)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지식노동자의 경우 자본가를 위해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개인이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누릴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됩니다. 영주와 농노로만 나뉘던 시대에 부르주아라는 새로운 계층(농노도 아니고 영주도 아닌)이 나타나며 역사가 바뀐 것처럼 이들의 등장이 앞으로의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예측하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되자 힘이 있는 사람들의 입장은 난처해졌습니다. 수탈할 수 있는 재화의 양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지배계층은 백성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범한 도덕적인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말입니다. 이런 그들을 향한 마키아벨리의 비판은 송곳처럼 날카롭습니다.
“군주들은 자신들이 다스리고 있는 인민들이 범한 죄악에 대해 결코 어떠한 불평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죄악은 필연적으로 군주의 태만이나 그 자신이 저지른 잘못들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민 들 사이에서 횡행하는 강도질이나 그와 유사한 죄악들을 검토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한 죄악들이 전적으로 그들과 같은 본성을 가진 통치자들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실 이 정도 되면 지도층은 시민들의 삶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또한 오늘날의 삶은 마키아벨리가 이 말을 했던 중세보다 훨씬 더 복잡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지도층에게 고마움을 느낀다면 그들을 위해 당연히 무언가를 더 해주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원망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경우라면 필요한 수단을 활용하여 제도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뜯어고치려 할테죠. 이런 시도가 성공할 경우 우리는 이를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생각만큼 자주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성공 가능성도 낮죠. 그러므로 우리는 상생하는데 필요한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삶을 조금씩 바꾸는 방식의 안전하면서도 현명한 전략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다음의 이야기를 읽으며 함께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한 스승의 마지막 수업 날이었습니다. 스승은 제자들을 데리고 들판으로 나가 빙 둘러앉게 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잡초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평소에 생각해 본 주제의 질문이 아니었기에 제자들은 "삽으로 땅을 갈아엎으면 됩니다.”, “불로 태워버리면 없앨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뿌리째 뽑아 버리면 됩니다.”라며 건성으로 대답했습니다.
모든 제자들의 대답을 들은 스승은 제자들에게 집으로 돌아가 각자 말한 방식으로 마음속에 있는 잡초를 없애라고 명했습니다. 만약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면 1년 뒤에 다시 이 자리에 모이자는 말도 남겼죠.
마음속의 잡초를 없애지 못한 제자들은 1년 뒤 같은 장소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습니다. 잡초로 가득했던 그 들판은 온 데 간데없고 곡식이 가득한 밭이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밭의 한가운데에는 이런 팻말 하나가 꽂혀 있었습니다.
"들판의 잡초를 없애는 방법 중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자리에 곡식을 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음속에 자라는 잡초 또한 선한 양심으로 어떤 일을 실천하며 그 원리를 마음으로 체득할 때에만 뽑아낼 수 있다."
어려움을 없애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는 올바른 것을 익히며 세상을 살아갈 나만의 기준을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의 근심과 걱정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삶을 이겨낼 핵심적인 원리가 그에게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올바른 마음으로 심어진 가치는 우리의 인생을 바르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모두가 상생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작업은 바로 이것입니다. 옳은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질 때 사회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세상에는 이런 조건을 달성하지 못한 사람의 수가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한 개인은 올바른 마음을 바탕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단단함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개인의 능력과 마음이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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