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살리고 싶어서
“중앙응급의료상황실입니다. 외상 환자 전원 수용 가능 여부 문의드립니다.”
“지역이 어디죠?”
“…경남입니다.”
그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잠깐 동안 주저했다. 상황실 직원도 알고 있었다. 한반도의 동쪽 최하방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어 일분 일초가 급한 이 불쌍한 환자를 200킬로미터 넘게 떨어져 있는 우리 병원에서 받아 줄 수 있는지 물어야 하는 이 상황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상황인지를.
“아니, 경남 어딘데요.”
“사천입니다. 환자는 23세 남자로 오토바이 사고로 수상했는데 unstable pelvic fracture(불안정 골반골 골절)고 active bleeding(현성 출혈) 있다고 합니다. 현재 있는 지역 병원에서는 색전술 등 추가 치료가 불가하다고 합니다.”
사천이라는 단어에서 한 번, 불안정 골반골 골절에서 두 번, 현성 출혈에서 세 번. 그의 짧은 말 한 토막을 듣는 동안 무려 세 번이나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언제 또 이렇게 기가 막혔더라. 아, 사실 헌법에 쓰인 나의 기본권과 직업적 자존감을 박탈당한 올 한 해 내내 그러했다.
큰 투표가 목전이었던 지난 5월, 갑자기 뉴스에서 의대생 2,000명을 증원하고 필수 의료 패키지라는 걸 시행할 예정이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무너져 가는 필수 의료와 지방 의료를 살리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정책은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며 의사들과 충분한 상의를 거친 것이라고도 했다.
“교수님, 그 얘기 들으셨어요? 당장 내년에 학생을 더 뽑아야 한대요.”
“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당장 교실에 한 두 명 더 앉을 데도 없는데 말이 되냐 그게. 빨리 다음 환자 받을 준비나 하자고.”
충분한 상의는 누구와 했다는 것이었을까? 내 자신이 바로 그 무너져 가는 필수 의료를 지방에서 매일 행하고 있는 의사인데, 당장 증원될 학생을 가르쳐야 하는 의과대학 교수인데. 분명한 점은 아무도 우리의 의견을 물은 적은 없었다는 것이었다.
외상센터에는 원래 전공의가 없다. 센터가 설립된 이래로 한 명의 전공의도 있던 적이 없었다. 늙은 교수들끼리 눈앞에 쏟아지는 환자를 감당하기에도 벅찬 하루하루가 가늘게 이어지는 게 일상이었다. 선거철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헛소리에 일일이 귀 기울일 만한 에너지는 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 비상이 떨어졌다. 모든 인턴과 전공의, 학생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진료 유지 명령, 업무 개시 명령, 사직 금지 명령. 난데없이 하늘에서 명령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저런 게 가능하긴 하단 말인가.
태풍으로 수해가 발생한 것도, 지진으로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닌데 정부 사람들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세워 노란 점퍼를 입고 텔레비전에 나왔다. 그리고 매일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의사들이 악마라고.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데 사실 벙벙할 여유도 없었다. 병원에 의사가 없다고 심근경색이나 중증 외상이 기다려주는 것은 아니니까.
우린 한 사람이 열 사람의 몫을 해 내야 했다. 더러 익숙하지 않은 타 직종의 일까지 맡아 하다 보니 극도의 긴장 속에 사고도 발생하고 과로로 쓰러져 입원하는 동료들도 있었다. 그러다 가끔 정신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는 손가락질받고 있었다. 34시간 연속 근무를 마친 뒤 동태 눈깔로 육아를 하고 있는데 키즈 카페 스크린에서도, 집 앞 사거리 전광판에서도 정부의 프로파간다는 계속해서 번쩍거렸다.
선거철이 지나면 되돌려 놓겠지. 설마 미치지 않고서야 이제는 그만하겠지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1년 가까이 사태는 이어졌고 사천에서 다친 젊은이는 갈 곳이 없어 전화 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그렇게 청년이 죽더라도 이젠 더 이상 뉴스 거리도 되지 못한다.
사천에서 천안 사이에는 외상센터가 다섯 군데쯤 있다. 그런데도 나에게까지 이 전화가 왔다는 것은 그 외상센터들이 전부다 마비 또는 붕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백 수천 명의 의료진들이 힘겹게 쌓아올린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는 지난 1년간 완전히 박살났다. 처참히 깨진 다음 가루가 되도록 으깨져서 더이상 재생조차 불가능하다. 심하게 다치면 그냥 길거리에서 죽어야 하는 시절로 다시 되돌아 갔다. 외상 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우리나라 의료의 시계는 타임머신을 타고 십 여년 전으로 비가역적 회귀를 했다. 껍질뿐인 의료 개혁의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필수 의료 종사자들이 전의를 잃은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더 이상 환자를 살리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아졌다. 우리의 말을 들어 주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정부의 선동에 눈이 가려지고 귀가 막혀 현장의 목소리는 밖으로 퍼져 나가질 못했다. 언론은 정부가 불러주는 말만 받아 적었다. 매일 밤 당직에 치이면서도 억울한 죽음에 대해 알리고자 했지만 기자들은 미안하다는 말만 하거나 아예 연락이 닿질 않았다. 의사 하나가 정부를 이겨낼 방도는 없었다.
그 와중에도 내외산소 의사들에 대한 법원의 형사처벌과 과징금 부과 소식이 끊이질 않았다. 나의 1인 시위를 보고 비웃던 전 보복부 실장은 퇴직 후 산하 기관인 심평원에 고액 연봉을 받고 취직했다. 그렇게 나는 무력함을 넘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충동마저 느꼈다.
“지금 환자 혈압은 얼마죠?”
“…40에 30 정도 된다고 합니다. 수혈이 원활하게 되는 곳은 아니라.”
그가 또 머뭇거렸다. 수축기 혈압이 40밖에 되지 않는 환자는 앰뷸런스에 타면 안 된다. 너무나 혈역학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이므로, 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 심장마비가 발생할 것이다. 그러면 동승한 의료진은 심장 압박을 시작하겠지. 굉음을 내며 달리는 앰뷸런스 안에서 수 시간 동안 청년의 갈비뼈와 복장뼈는 아무런 보람도 없이 부러져 갈 것이고, 폐와 심장은 뼛조각으로 인해 찢겨 나갈 테지.
동이 틀 때쯤 청년은 내 앞에 도착할 수는 있겠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일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미 차가운 시체가 된 그의 몸에 의미도 없는 에피네프린을 주입하고, 여러 사이클의 심장 압박을 가해야만 한다.
그다음은 사망 선언을 하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장례식장에서 슬픔에 빠진 유족들에게 브로커들이 명함을 내밀며 어깨를 다독인다.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를 밝혀내야 하지 않겠냐고. 이렇게는 억울해서 못 보내지 않냐고 말이다. 그다음부턴 경찰서와 법원의 시간이다. 여러 명의 의사를 거치고 환자가 사망했을 때, 으레 마지막에 그 환자의 얼굴을 본 의사가 처벌받는다. 형사가 끝나면 민사가 진행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내건 브로커들의 전략하에 17억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진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를 칼로 찔러 죽인 살인자에게도 몇억씩 물어내란 판결은 없는데, 선의로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는 파산을 하고 고민 끝에 자살까지 이르기도 한다.
사천. 40에 30. 내 머릿속은 이미 두 손이 결박된 채 재판정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있는 미래의 내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나는 물불 가리지 않고 모든 환자를 다 받았다.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으면 있던 환자를 밀어내고 새로 베드를 만들어 냈다. 병원에 의사가 부족하면 집에서 자고 있던 동료를 깨워 불러냈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이 청년을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수용 거절’이 아니라 ‘수용 불가’ 통보였다. 수용이 불가능하다고 말해야 할 때 의사는 피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인력과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나와 내 동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었다. 사회가 응급실을, 응급실에서 일하는 우리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외상센터 의사로 일하는 모든 순간 동안 나는 교도소 담벼락 위를 걷고 있었다. 자칫 중심을 잃거나 발이 꼬이면
시커먼 담벼락 안쪽으로 영원히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서 나를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 내 인생은? 나만 바라보는 내 가족들은? 그렇게 나는 이민을 생각하기까지 했다.
처음 내가 중증 외상에 인생을 걸어 보겠다고 결심했던 것은 단순히 눈앞의 한 명을 살리는 의사에 그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외상 환자 한 명을 살리면 그 없이 더 이상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지 못할 가족들의 목숨도 함께 살리는 것과 다름없다. 나아가 사고를 일으킨 가해자나 산업 현장 관계자, 잘못된 기계 설비와 사회 시스템도 고치고 치료하는 셈이니 이보다 더 보람 있는 직업이 어디 있단 말인가.
비단 외상뿐 아니라 모든 필수 의료 분야가 다 마찬가지이다. 소아과 의사는 그냥 어린아이 하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다. 그 아이와, 그 아이의 부모와, 그 아이가 살아갈 찬란한 삶 전체를 구하는 것이다. 산부인과 의사는 산모만 살리는 것이 아니다. 태아와 태아를 잉태한 부모의 목숨, 태어날 아이가 살아갈 인생, 그 아이와 더불어 이어 나갈 가족 모두의 삶 송두리를 더불어 살려 내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알기에, 그리고 이런 가치 있는 임무를 수행할 자격이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이 거룩한 직업에 헌신하기로 했던 것이었다.
우리 안의 이러한 소중한 마음은 지쳐 사라지고 있다. 환자들을 향해 열렬히 불타올랐던 그 사랑은 아주 깊은 곳에 봉인되어 가는 중이다. 다시는 세상 빛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초점 없는 눈으로 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기계적 진료를 이어 갔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바이탈 의사로 사는 마지막 날까지는 슬프게도, 계속 그래야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