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다른 내가 불편한가요?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회사의 사정이 좋지 않았던 그 해 11월, 매년 마지막에 남은 연차를 월급에 더해서 보상해 주던 제도를 그 한 해에만 중지하기로 했다는 경영진의 결정이 전해져 왔다. 전 사원이 남은 연차를 한 달 안에 모두 사용해야만 했다. 회사에서 연차 사용을 권고하는 상황이라니! 철없던 나는 회사의 안위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고 휴가를 갈 생각에 들떠 있었다. 남은 연차 5일을 사용하면 앞뒤로 주말을 끼고 9일 동안 여행을 갈 수 있었다.
일이 많지 않은 덕분에 소식을 듣자마자 스카이스캐너 사이트를 열고 비행기 표 가격을 알아봤다. 따뜻한 여름 휴양지와 겨울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여행지 중에서 고민을 하다가 비엔나행 티켓이 할인하는 것을 보고 유럽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러 비엔나에 가야겠다고 친구에게 네이트온 메시지를 보냈다. 대학교 시절부터 단짝이었던 친구랑은 일주일에 두세 번을 만나면서도 매일 네이트온으로 일하는 틈틈이 채팅을 하곤 했다. 나와 함께 여행을 계획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보낸 메시지에 돌아온 답변은 "루이비통 백이나 하나사."였다.
친구의 답변을 읽고 나서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아주 오랫동안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았다. 대학 때부터 명품 브랜드에 관심이 많았고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부터 명품 백을 브랜드 별로 차곡차곡 모으고 있던 친구였지만 여행지를 묻는 질문에 루이비통 백으로 답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입장은 아주 논리적이었는데 해외여행을 가기 위한 왕복 비행기 표가 아무리 저렴해도 80만 원에서 150만 원까지 할 것이고 숙박비와 여행 경비를 모두 더하면 200만 원에서 많게는 300만 원까지도 될 텐데 한 번 다녀와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 여행을 하느니 그 돈으로 평생 곁에 둘 가방을 하나 장만하라는 것이었다. 반박도 하지 못할 단호한 어투의 충고와 함께 나에게 어울릴만한 모델들을 골라 링크를 여러 개 보내주었다.
그녀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다. 그녀와 내가 원하는 것이 달랐을 뿐이었다. 일 년에 한두 번 해외여행을 가는 게 내 회사 생활의 활력이 돼주었던 것처럼 여행을 즐기지 않았던 그녀에게는 명품 백이 그런 역할을 했던 것이다. 나는 적당히 저렴한 가격이라면 백만 원 정도 하는 비행기 티켓을 쉽게 예약하고 여행지에서도 내 형편에 맞는다 생각하면 깊게 생각하지 않고 돈을 썼지만 옷과 가방은 그와 같은 가격이라고 해도 내 능력에서는 살 수 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시즌마다 명품 브랜드 별로 컬렉션이나 패션위크 쇼까지 챙겨보고 꼭 갖고 싶다고 생각한 옷이나 가방이 있었음에도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한 금액을 지불할 수는 없었다. 내가 최우선으로 원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나를 값진 충고를 듣지 않는 어른스럽지 못한 철부지처럼 대하며 자기 생각을 나에게 주입시키려고만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이야기는 내 인생에서 충격적이었던 사건으로 남아있는데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그녀를 아는 만큼 그녀도 나에 대해 잘 알았을 텐데 그 친구는 내가 원하는 것을 전혀 존중해 주지 않았고 그런 그녀에게 아주 크게 실망했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입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가방을 들어야 했던 그녀의 취향을 나는 동의하지 못했지만 충분히 존중해 주었는데 내 의견을 쉽게 무시해버리는 그 친구의 행동에 그동안 내가 그녀를 존중하기 위해 했던 노력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동의하지 않는데 어떻게 존중할 수 있었을까? 나는 아무리 내가 친한 친구라고 해도 그녀의 생각과 취향은 내가 침범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그 친구의 생각에 대한 내 의견을 충분히 이야기했지만 그녀를 비판하거나 내 의견에 무조건 동의하기를 바란 적은 없었다. 그 친구의 모든 것을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내가 동의할 수 없는 것들도 그녀의 일부분이라 생각하고 그녀의 생각을 들으며 최대한 공감해보려 노력했고 이런 과정이 내가 그 친구를 존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그 친구 사이에 비슷한 사건들이 몇 번 더 있었고 서로의 차이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녀와는 점점 멀어져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기게 되었다. 종종 이 에피소드가 떠오를 때마다 내가 존중이라고 생각했던 행동들이 옳은 것인지, 내가 조금 더 강하게 그녀에게 내 의견을 피력했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나도 나를 내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했던 것인데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랐던 걸까?
당신과 다른 내가 불편한가요?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은 쉽게 믿고 존중하는 반면, 다른 사람은 잠시도 견디지 못하고 함부로 판단하고 무시한다. 남의 인생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인사말과 함께 훈수를 둔다. 아시아 어느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 하찮다고 생각하는 유럽 사람들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 읽었을 법한 선입견들로 농담을 던진다.
한국에서는 남들과 조금 다르게 산다는 이유로, 스페인에서는 남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마음을 여러 번 다쳤지만 여전히 대처법은 모르겠다.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게 애매하기도 하고 나 혼자 속상한 마음을 달래면 상황은 곧 종료되기 때문에 맞설 의욕을 잃었다. 사실 언젠가부터는 이런 대우를 받는 게 익숙해져 나에게 무례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 것도 같다.
그때는 아무 말 하지 못했던 내가 한참이 지난 뒤에야 블로그에 이야기하는 이유는 아팠던 마음을 이제는 정리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 글을 읽고 한 분이라도 그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단단하게 박혀있던 아픈 감정이 풀어질 것 같다. 그렇게 위로받고 싶어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