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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더 Heather May 20. 2018


그럼에도 호주


호주에서 살아가면서 '만족감', '행복함'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침 출근길, 직장에서, 퇴근을 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에는 호주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 볼 때가 있다. 한국에서도, 싱가포르에서도, 호주에서도 매일 같은 반복하는 삶을 사는 것은 똑같다. 하루하루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운명이라면 이런 생각을 해 볼 기회가 있을까 하지만 혼자 힘으로 한국도 아닌 해외에서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매일매일 행복하진 않더라도 굳이 멀리까지 나와서 사는 것에 대해 만족도가 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서 살아갈 이유가 없다.




20대 초반에 해외에 처음 나왔을 때는 외국에서 혼자 힘으로 먹고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걸로 만족했다. 내가 몇 시에 일을 해야 하건, 그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말도 통하지 않는 먼 이국땅에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렇기에 하루에 쓰리잡을 뛸 수 있는 에너지가 있었고 열정이 있었다.




숱한 알바 생활을 거쳐 싱가포르에서 제대로 된 풀타임 일을 구하게 되었고 대기업에 소속되었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대학 시험과 과제에 힘들어하고 있을 때 나는 이미 해외에서 1년이나 지낸 경험도 생겼고 호주를 떠나 새로운 나라를 여행할 수 있었고 취직까지 했으니 그때 당시의 만족감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20살의 나보다 한 단계 더 성장했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렇게 싱가포르에서의 직장 생활이 1년 지나고 나의 업무에 완벽히 적응을 하고 난 뒤부터 무료한 감정이 느껴졌다. 매일 아침 일어나 준비를 하고 직원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고 그렇게 저녁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면 하루가 끝이 났다. 일주일에 5번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내 일은 완벽히 적응했지만 더 이상 발전의 기회가 보이지 않았다. 

고민을 하다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호스피탈리티 분야에 일하고 있었지만 내가 하던 일은 세일즈와도 관련이 있었다. 직접적으로 세일즈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레스토랑에 단체 손님이 예약하게 되면 손님의 '니즈'와 회사의 '이익'사이에서 중간 조율을 하는 것이 나였다. 손님의 요구 사항을 듣고, 그에 맞춰 셰프와 메뉴를 상의하고, 스페셜 메뉴를 제작하고, 가격을 책정하는 등의 세일즈 업무에 엄청난 관심이 생겼다. 손님과 회사의 중간자 역할로써 내 선택에 따라 회사의 수익에 보탬이 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풀타임으로 일을 하고 파트타임으로 1년간 공부를 하다 보니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바쁘고 힘들었다. 공부를 함으로써 나의 관심분야에 대한 지식이 솔직히 많이 늘지는 않았지만 학업을 하고 성취를 했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은 상당했다. Bachelor Degree까지 공부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일과 학업을 병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알았기 때문에 파트타임으로 공부를 마쳤다.

그 뒤로 2년이란 시간을 더 일했다. 처음 일을 시작하고 1년 뒤에 느꼈던 감정을 2년 내내 느꼈고 나는 결국 다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싱가포르가 작은 나라다 보니 나라의 동쪽에서 서쪽까지 차를 타고 1시간이면 갈 수 있었다. 사람은 큰 곳에서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기업이다 보니 직원 수도 4000명이나 되고 승진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서비스직에 일을 하다 보니 내가 일을 한 시간에 비해서 발전의 기회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심지어 매니저도, 제너럴 매니저도, 다이렉터까지도 레스토랑이 바빠지면 주말이건 늦은 저녁이건 레스토랑에 나와서 웨이터/웨이트리스를 도와 서빙을 하거나 큰 이벤트가 있으면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키기 마련이었다. 물론 서비스직을 안 좋게 얘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3년이란 시간을 서비스직에 일을 했더니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결혼을 한 상사나 동료들은 가족보다 동료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결혼을 하고 떠나는 직원들도 하나 둘 생겨났다.




싱가포르를 떠나기로 결정을 하고 엄청난 내적 갈등을 했다. 너무 그리운 호주를 가야 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꿈꿨던 미국을 가야 할까. 사실 그때는 내 평생의 소원인 미국을 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리운 호주로 다시 와야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19년이란 시간을 살아온 한국보다 1년이란 시간을 보냈던 호주가 그리웠다. "그래 다시 돌아가서 딱 1년만 지내보자." 이런 생각으로 다시 오게 된 호주. 그때 내가 호주를 선택하지 않고 다른 나라로 갔으면 나는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 해보는 생각일 것이다. 여행이 힘들어서 한국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고, 다른 나라로 가서 더 좋은 기회를 얻으며 지낼 수도 있고, 계속 이곳저곳 옮겨 다닐 수도 있겠다.




다시 돌아온 호주는 예전에 내가 1년의 시간을 보냈던 '환상의 나라'같은 이미지와는 조금 달라져있었다. 호주는 변함없는데 내가 호주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호주 사람들의 알 수 없는 벽도 보이고, 무료로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없고, 당일 배송이나 하루 만에 배송되는 택배 시스템도 없고 마음 맞는 친구 사귀기는 왜 이렇게 힘든 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근이 없어서
강가에 앉아서 멍 때릴 수 있어서
무슨 옷을 입고, 무엇을 하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서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돼서
사람들의 표정에 여유가 있어서
주말에는 일을 안 해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어서
한국보다 시급이 높아서
어딜 가든 붐비지 않아서

난 아직 호주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About 헤더의 20살에 시작한 세계여행

헐리웃 배우 아담 샌들러에게 빠져 혼자 힘으로 미국을 가겠다는 생각에 20살이 되자마자 한국을 떠나 해외 생활 겸 여행 경비를 모으기 위해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그 후, 여행의 매력에 빠져 21살에는 호주에서 싱가폴로 건너가 3년간 거주하며 대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현재는 서호주 퍼스에서 살고 있으며, 해외 취업과 세계 여행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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