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든 순수한 미얀마를 떠나며...
칸도지 뿐만 아니라 모든 호수가 미얀마 청춘들의 핫 플레이스였다.
셋째 날이 밝았다. 미얀마 날씨는 여전히 화창, 아니 뜨거웠다. 일찍 호텔에서 나왔다. 인야 호수(Inya Lake)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인야 호수는 양곤 공항 근처에 있다. 시내로부터 꽤 먼 곳에 있어서 택시를 타고 30분 정도 이동했다. 인야 호수에는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들이 많았다(하지만 나는 혼자야). 양곤의 청춘들은 호수를 참 좋아하는지, 매번 호숫가 근처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칸도지 호수가 푸르러서 더 좋았다. 나는 그늘이 있는 곳에 앉았다. 호수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려고 하는 것도 아주 잠시, 너무 뜨거워서 도저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 얼른 이곳을 뜨자!'
흘레단 마켓은 첨단화 되고 있는 흘레단 지역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구글맵을 사용하여 다음 목적지인 흘레단 마켓(Hledan Market)으로 향했다. 양곤 대학교 근처에 있어서 젊음의 거리로 불리는 흘레단! 양곤에서는 보기 힘든 에어컨이 빵빵 나오는 큰 쇼핑센터도 있고, 미용실과 각종 가게가 즐비한 게 신기한 풍경이었다. 반면 흘레단 마켓은 전통 시장의 느낌이 강했다. 마켓에는 현지인들로 가득했다. 좀 더 둘러보려고 했지만, 여전히 강렬한 미얀마의 땡볕은 더 돌아다녀야겠다는 의지를 꺾어버렸다.
나는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사실 아주 길치다. 그래서 면허가 있어도 길을 잃을까 무서워서 운전대는 잡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몇 번이나 지나다니던 길도 금방 까먹기 일쑤다. 어쩔 수 없이 구글맵을 상당히 의존하게 된다. 반대로 구글맵만 있다면 하나도 걱정이 없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제야 지도 보는 재미를 알게 됐다. 이동하다가 흥미로운 장소를 발견하면 지도를 켜서 어떤 곳인지 살펴보게 됐다. 그렇게 숙소 근처를 며칠 돌아다녔더니 지금까지 열심히 택시를 타고 다녔던 장소들이 다 거기서 거기란 걸 알게 되었다.
택시 안에서 본 풍경, 삼성이 있는 건물인데 정말 오래된 듯했다. 아직 양곤의 많은 건물은 오래된 느낌이 난다.
더운 날씨를 피해 호텔로 돌아왔다. 출출해졌다. 양곤에서 보내는 세 번째 밤이었는데도, 제대로 된 로컬 음식을 시도해 보지 않았다. 아니 시도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음식에 있어선 조금 까다롭다. 어쩔 수 없이 이번 여행 내내 먹은 거라곤 빵, 정크푸드, 라면 … 동네 KFC에서 테이크어웨이 해 온 버거 세트는 값도 싸고 맛도 있었다.
꼬불꼬불한 미얀마 언어. 안에는 말끔하게 옷을 차려입은 현지인들도 많았고, 나처럼 혼자 온 여행자 아저씨도 있었다.
강렬한 햇볕이 사그라들 때까지 낮잠을 자고서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이번에는 인스타 팔로워가 추천해준 랑군 티 하우스에 가기로 했다. 구글맵을 키고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찾았다. 먼저 들렀던 바 분(Bar Boon)과는 다르게 레스토랑 느낌이 물씬 나는 곳이었다.
메뉴를 둘러보다 나는 오렌지 파인애플 스무디 한잔을 시켰는데, 그리 오래 앉아 있지 않고 나왔다. 너무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라 혼자 있기가 좀 그랬다. 혼자 가기에는 바분 같은 카페가 더 나은 거 같았다.
길을 걷다가 마주친 거리. 작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거리는 온통 알록달록한 게 예뻤다
사진관에서 나와서 다시 택시를 잡기 위해 가던 길. 다리 위에서 술래 파고다의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양곤에서는 참으로 작은 사건들이 많았는데, 한 가지를 소개한다면 캄보디아 비자 건이다. 캄보디아에 가기 위해선 여행 비자가 필요했는데, 처음에 나는 이 사실을 몰랐다. 다른 동남아 국가처럼 캄보디아도 90일은 비자 없이 여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러다 뒤늦게 비자가 필요한 걸 알게 되고 부랴부랴 인터넷으로 비자 신청하는 방법을 찾았다. 다른 건 해결할 수 있었는데, 여권 사진만큼은 방법이 없었다. 미얀마에서 조달해야 했다. 그때부터 나는 패닉 상태였다. 구글로 양곤의 사진관을 찾아서 전화를 거는데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은 그냥 끊어버리기 일쑤고, 그나마도 여권 사진은 안 찍는다고 하는 게 아닌가! 아니, 양곤 사람들은 증명사진도 안 찍나?! 나는 정말 당황해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캄보디아였는데, 이렇게 못 가는 건가, 미리 사놓은 비행기 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만감이 교차했다.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한국말을 잘하던 호텔 직원에게 물어봤다.
“여기 사진관 있어요? 여권사진 찍어야 하는데!”
“네~ 있어요옹. 호텔 근처에 많아요옹”
친절한 직원은 아주 자세히 사진과의 위치를 알려줬고, 나는 당장 사진관으로 향했다. ‘그래, 미얀마 사람들도 당연히 사진을 찍겠지!’ 사진관에 도착해서 증명사진을 찍겠다고 하니 직원은 바로 나를 앉혀서 몇 초 만에 사진을 찍었다. 20분 정도 기다리니 바로 사진이 나왔는데, 충격적이었던 건 이게 단돈 1,000원이라는 사실. 물가가 저렴한 게 이럴 땐 참 좋았다. 힘들었던 것도 잠시, 나는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며 사진관을 나왔다. 새삼 모든 게 예뻐 보였다.
무려 3D영화였음에도 표값은 2,000원 밖에 하지 않았다.
양곤에서 3일 정도 있으니 이제는 뭘 할까, 고민이 생겼다. 사실 사람들이 많이 탄다고 하는 순환 열차 타는 것을 포기해서 시간이 꽤 남았다. 문득 심심한데 영화나 볼까 싶었다. 구글에서 양곤의 영화관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호주에서 못 봤던 캡틴 아메리카를 보기 위해 로컬 영화관을 찾았다. 3D인데도 영화 티켓은 2,000원 밖에 하지 않았다. 호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격이다. 1/10 가격이니 말 다했다. 평일이었는데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아주 가끔 외국인들이 보였지만, 나처럼 혼자 온 아시안 여자는 없었다. 나는 팝콘 대신 작은 콜라 하나를 사서 입장했다. 미얀마의 극장은 어릴 적 아빠와 갔던 옛날 극장의 느낌이었다. 1관으로 입장하라는 전광판에 불이 들어오니 모두 입장 했다. 들어가기 전, 3D 안경을 하나씩 챙겼다.
재밌었던 건 미얀마에서는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다는 거다. 혹시나 더빙이 나오는 거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더빙은 아니었다. 옆자리 아저씨는 영화 시작부터 계속 팝콘을 아작아작 드신다. 영화가 시작됐다. 더빙도 아니었고, 영어 자막도 없었지만 웃음 포인트에서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여행을 가서 카페를 찾아다니는 게 취미였지만, 영화관도 좋은 경험이었다.
낮에 찾은 마하 반둘라 정원. 낮에 보는 게 더 이쁘다.
양곤에서의 마지막 날이 다가온다. 양곤을 떠나면 캄보디아로 간다. 사실 나는 처음 미얀마에 도착했을 때 실망했다. 왜 왔을까 후회도 했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게 됐고,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삶의 방식을 고작 며칠 여행하는 내가 평가한다는 게 옳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미얀마를 떠날 때는 살짝 그리워지기까지 했다. 본격적인 관광 산업에 문은 연 미얀마. 지금 이 모습도 훗날 완전히 달라질 텐데 그때가 되면 반가우면서도 조금은 슬퍼질 것 같다. 혼자 떠난 3박 4일의 미얀마 여행은 이런 생각을 곱씹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