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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에서 만난 하루의 인연

비포선라이즈....

by 여행너구리

2017년 8월 19일 오전 9시 30분. 나는 프라하 성 입구에서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테러 위험 때문에 소지품 검사가 철저히 이루어지고 있어 시간이 지체되는 듯했다.


6일간의 혼자 여행으로 몸은 지쳐 있었고, 입에서는 단내가 나는 것만 같았다. 한인 민박집에서 아침을 먹으며 몇 마디 나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대화 상대를 찾기 위해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누구든 걸려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살폈다.


앞에는 한국 여성 두 명이 있었고, 뒤에는 빈티지한 중절모를 쓴 키 큰 백인 남성이 서 있었다. 그는 멀뚱히 줄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그의 눈을 마주치기 위해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나는 망설임 없이 말을 걸었다.

“혼자 왔어요?”


낯선 동양인의 갑작스러운 질문이 꽤나 의아했나 보다. 그는 독일 뮌헨에서 왔으며 금요일부터 주말 여행 중이라고 짧게 답했다. 그의 태도는 약간 경계하는 듯했다.

짧은 5분간의 대화로 우리는 서로의 여행 스타일과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도 나처럼 아침에 대충 그날의 일정을 정하고 계획 없이 발길 닿는 대로 여행하는 타입이었다.


프라하 성에서 프라하 전경을 배경으로 서로의 사진을 찍어준 후, 나는 이 만남을 어떻게 끝낼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먼저 물었다.

“같이 다닐래요? 혼자 다니는 것보다는 재미있을 거예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나는 흔쾌히 좋다고 답했다. 그렇게 우리의 프라하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는 22살의 나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동생이었다. 이름은 슈테판 융(Stephan Jung). 자신을 독일어식으로 “슈테판”이라고 소개했다. 내가 대화 중 “당케!“를 외치면, 그는 독일인들이 항상 화가 난 건 아니라며, 그런 편견은 잘못된 거라고 열을 올렸다.


그는 독일인이지만 맥주를 좋아하지 않았고, 축구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의 신용카드에 뮌헨 바이에른 팀 로고가 큼직하게 박혀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는 “독일인이라고 하면 맥주와 축구를 좋아한다는 편견이 싫다”며 다시 한번 흥분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는 나와 같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는 후배였다. 우리는 NBA를 좋아한다는 또 다른 공통점도 있었다. 그는 클리블랜드의 르브론 제임스를 응원했고, 나도 같은 팀을 지지했었다. 비록 그때는 서로의 존재를 몰랐지만 말이다.


내가 삼각대를 들고 다니며 야경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자, 그는 배낭에서 삼각대를 꺼내며 환히 웃었다. 그리고 자신만의 독특한 사진 찍기 방법을 공유해줬다. 그는 여행 전에 우표나 구글맵에서 본 멋진 사진을 참고하며, 같은 구도에서 사진을 찍어보는 것으로 연습한다고 했다. 사진을 단순히 찍는 것이 아니라, 각도를 탐구하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표현하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그가 추천한 몇몇 사진 스팟은 지금도 내 여행 사진첩 속에서 빛나고 있다. 아래는 그에게 배운 구도와 함께 내가 찍은 사진들 중 몇 장이다.


20170819_094608.jpg 프라하 전경


DSC00760.jpg 존 레논 펍
LRG_DSC00758.jpg 오리와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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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얘는 남자일까? 영화 비포 선라이즈처럼 로맨틱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이 들 무렵, 우리는 “Marry Me”라는 보석상을 지나쳤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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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 you marry me?”


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 우리 만난 지 겨우 4시간밖에 안 됐잖아.”


“뭐야? 성별이 문제가 아닌 거야?”


“응, 함께한 시간이 문제야.”


그의 시크한 대답에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한 아이리시 펍에 들어가 맥주 한 잔을 마셨다.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던 그는 갑자기 독일 맥주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했던 라이브 공연이 시작되었고, 우리의 하루를 완벽하게 마무리해 주었다.


그렇게 하루의 짧은 만남을 마무리하며, 우리는 아쉬운 마음에 다음 날 아침 다시 만나 브런치를 함께했다. 이후 나는 이탈리아로 떠났고, 그는 다시 뮌헨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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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만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년 뒤, 우연한 기회에 내가 뮌헨을 방문하게 되었고, 놀랍게도 운이 좋게 다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연재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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