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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선 Sep 18. 2020

한국 바선생은 양반이었다, 직접 겪은 해외 바선생 썰들

<웰컴 투 삽질여행> 바선생과의 동거

<웰컴 투 삽질여행>

바선생과의 동거


* 바선생 : 바퀴벌레를 뜻하는 인터넷 신조어. 단어조차 혐오스러워서 순화시킨 것이 아닌가 싶다. 바퀴벌레라는 글자만 봐도 혐오스럽기에,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가능한 바선생으로 순화시켜 쓰고 있다.



2년여 전, 인터넷에 이런 글 하나가 올라와 SNS를 달궜다. 제목은 ‘키 160cm의 바선생이랑 한 달 동거하고 100억 받는다면 할 거임?’이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이 글에는 여러 가지 조건이 더 첨부되어 있었다. 동거할 바선생은 하루에 두 번이나 씻을 정도로 깨끗하단다. 다만 당신은 바선생이 씻은 다음에 씻어야 하고, 바선생이 몸을 닦은 수건으로 몸을 닦아야 한다. 밥은 바선생이 차린다. 요리 실력도 좋단다. 그런데 하루 한 끼는 무조건 겸상을 해야 한다. 당신이 밥을 맛있게 먹으면 키 160cm의 바선생은 기뻐서 날개로 기지개를 켠다. 외로움을 많이 타서 일주일에 두 번은 안고 자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었다. 대신 성격은 매우 신사적이라고 한다. 이 끔찍한 이야기를 읽고 ‘100억이 뭐야, 만수르가 돼도 안 한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밸런스 붕괴’라고 생각할 정도로 바선생과의 동거를 선택했다. 아니, 다들 바퀴벌레가 단순히 더러워서 싫어하는 거였어? 또 나만 진심으로 혐오하는 거였냐고!     


그렇다. 나는 벌레가 너무 너무 너무 무섭다. 어느 정도로 무서워하냐면, 에프킬라에 그려진 벌레 그림도 혐오스러워 가려놓고, 벌레를 잡아 죽인 곳은 당분간 맨발로 밟지도 못하는 식이다. 벌레의 흔적들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된다. 그중에서도 벌레의 대명사 바선생은 무지하게 끔찍하다. 다행히 바선생께서도 나를 썩 좋아하진 않는지, 바선생과 엮인 일화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어릴 적 바선생은 내게 귀신과 같은 존재였다. 무슨 뜻이냐면, 실체를 확인해본 적 없는 것을 소문으로만 듣고 무서워했다는 말이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아파트는 개미나 거미와의 동거가 잦았는데, 웬일로 바퀴벌레가 등장하는 일만은 드물었다. 딱 한 번, 부엌에 바퀴벌레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식탁 위로 올라가 벌벌 떨었다. 그 사이 엄마는 바선생을 처리해주었다. 나는 바퀴벌레 그림자도 못 보았지만 일단 사건은 해결되었다.   

  

벌레와의 본격적인 전쟁은 집 나와 혼자 살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아파트라는 집단 방역 체계에서 벗어나 주택가에 방 한 칸을 얻어 사니 여름이 이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없었다. 서울로 올라와 첫 보금자리를 튼 곳은 대학가였는데, 바선생이 많다고 소문난 지역이었다. 하지만 운도 좋게 우리 집엔 바선생이 찾아오지 않으셨다. 하지만 바선생의 천적으로 알려진 돈벌레님들께서 종종 찾아오셨다. 어떤 분께서는 길이가 내 손가락보다 길었으며, 빠르고 수많은 다리를 자랑하셨다. 돈벌레는 바선생을 잡아먹는 익충이라던데, 아니 비주얼이 저 정도면 해충인 거지!!! 비주얼이 바선생 저리가라잖아요! 돈벌레 선생은 바선생과 달리 에프킬라 한 방이면 금방 죽어버린다. 하지만 매번 양 조절을 못해 녹아내린 돈벌레의 시체를 치우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 혼자서 엉엉 울곤 했다.     



교환학생으로 오사카에 1년 정도 갔을 때, 가장 걱정이 되었던 부분은 다름 아닌 바퀴벌레였다. 나는 1인 자취방을 대여했기 때문에 바선생 출몰 시를 미리 대비해야 했다. 왜냐하면 일본 바선생은 개체 수도 많을 뿐더러 한국 바선생보다 사이즈가 크시다…. 지난 도쿄 여행에서 자동차에 밟혀 터지는 바선생을 목격한 이후로 나의 트라우마는 배가 되었다. 오사카에 오자마자 며칠 안 되어 바선생 대비를 위해 마트를 찾았다. 일본은 에프킬라 종류도 얼마나 다양한지 모기용, 거미용에서부터 바퀴벌레용까지 온갖 종류가 나열되어 있었다. 종류별로 다 사면 4천 엔은 족히 나올 것 같아서, 가장 세 보이는 바선생용 에프킬라를 하나 구입했다. 한번은 모기가 출몰해 바선생용 에프킬라를 뿌렸는데, 에프킬라가 얼마나 센지 모기가 수직으로 똑 떨어져 즉사했다. 에프킬라에 깊은 신뢰감이 생긴 나는 머리맡에 항상 에프킬라를 비치해두고 살았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벌레 퇴치를 위하여. (그 와중에 항상 바선생 그림이 보이지 않게 뒤로 돌려 비치했다.)     

일러스트 쓱콘티 안소정

여름에는 바선생께서 주로 밖을 쏘다니다 가을이 돼야 따스한 실내로 들어오신다. 위층에서 바선생이 출몰했다는 소식이 점점 들리기 시작했다. 내 심장은 벌써 바선생이라는 공포에 잠식당해 버렸다.

저녁 약속을 위해 옷 박스를 뒤적거리던 날, 드디어 그분께서 찾아오셨다. 옷가지 사이에서 갈색의 무언가가 휘리릭 나타나더니, 이내 밝은 빛이 싫었는지 옷가지 안으로 숨어들어 갔다.

“…….”

너무 놀라면 비명도 안 나온다던데, 진짜였다. 상황 파악을 위해 몇 초간 머리를 굴리고, 바선생께서 오셨음을 인지했다.

‘미치겠네. 엉엉.’

당장 안전한 침대 위로 올라가 경건한 자세로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퀴벌레가 나왔는데, 제발 좀 잡으러 와주시면 안 될까요? 저 혼자서는 도저히 못 잡겠어요. 제발요.”

그는 알겠으니 30분쯤 기다리라고 했다. 30분이 이렇게 긴 시간이던가. 침대 위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경건하게 그를 기다렸다. 1시간 같던 30분 후, 그는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옷 박스 안에 바선생이 있음을 알리자, 복도로 박스를 끌고 가 자연스럽게 바선생을 퇴치해주셨다. 그리고 방 안에서 겁먹고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왔다.

“아주 귀여운 아기 바퀴벌레네.”

“네?”

잠시만요. 아기 바퀴벌레요? 이미 사이즈가 내 손가락만 했던 것 같은데요? 

“그거 알아? 바퀴벌레 한 마리가 나타나면 이미 수백 마리가 있는 거야.”

“그런 무서운 소리 하지 말아주실래요?”

바선생이 전혀 무섭지 않아 보이는 그는 능글맞은 농담을 던지고 총총 사라졌다.     


그의 농담 같지 않은 농담에 질겁했으나, 다행히 그 이후로 내 방에서 바선생과 만날 일은 없었다. 다음 해가 되었다. 본격적인 오사카의 여름과 만나는 첫해였다. 길거리에 바선생의 개체 수가 늘고 있다는 불안감이 점점 현실로 다가왔다. 당시 아르바이트를 마치면 자정이 넘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뻥 안 섞고 역에서 집까지의 3분 거리에서 하루 평균 2~3마리의 바선생과 마주쳤다. 어두워서 실루엣만 보였기에 망정이지. 엉엉.     


“오키나와 리조트에서 일하면 어떨까?”

“그것도 괜찮네.”

“근데 오키나와 여름에 바퀴벌레 짱 많대.”

“그래? 그럼 기각.”

일본에서 보금자리를 틀지 않은 이유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정말 바퀴벌레였다.     



이번엔 몰타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의 이야기다. 휴양지니까 당연히 봄과 여름이 좋을 거로 생각하고, 4월에 떠나 8월에 돌아왔다. 그런데 내가 또 망각한 사실이 있었다. 여름은 바선생의 계절이라는 것을.

숙소에서 처음 몰타의 바선생과 만났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이 새끼들! 일본 것들보다 훨씬 더 크잖아!!!!’

본격적인 여름이 되자, 발육이 잘되신 바선생의 출몰이 늘기 시작했다. 이들은 점차 밤거리를 정복하기 시작했고, 숙소에도 종종 출현하셨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사실은 이 숙소에는 나 혼자만 사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도움을 요청할 강심장들이 있으니 안심이 되었달까. 게다가 반지하에 있는 1인실은 이미 바선생 소굴이 되었다는 소식에 2인실을 신청하길 진심으로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몰타에서는 24시간 슬리퍼만 신고 다녔었는데, 진심으로 운동화를 신고 나가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밤거리라면 언제 어디서 바선생을 밟아 터트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혹시나 그들이 내 발등 위로 올라온다면, 으아아아아아!     


7월이 되자, 나는 유럽 본토를 여행하기 위해 몰타를 2주간 떠났다. 지긋지긋한 더위도 소름 끼치는 바퀴벌레도 잠시만 안녕이다, 이 자식들아! 2주 후 만난 룸메이트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너 없는 동안 더워서 밤에 문 열고 잤거든.”

방충망도 없는 나라기에 이 말은 즉 벌레가 들어오면 그냥 동거하겠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더위에도 에어컨이 없는 방이었기에 당연히 그럴 수 있었다. 둘이서 함께 방을 쓸 때도 자주 그랬으니까. (내 침대가 창문 쪽이 아니어서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기도 하다.)

“새벽에 바퀴벌레가 날아와서 내 얼굴에 부딪히고 갔어.”

“뭐?”

“너무 놀라서 그냥 방문 열어줘 버렸어. 복도로 나가라고. 애들 더우니까 다 요즘 문 열고 자잖아. 밤에 온 방을 싸돌아다녔는지, 목격담이 어마어마하더라.”

“아니, 잠시만. 그 전에 얼굴에 부딪혔다고?”

오, 마이, 갓. 신이시여, 제가 그 시기에 여행을 떠나서 정말이지 다행입니다. 다시 몰타를 찾게 된다면 나는 절대 여름엔 가지 않을 것이다. 끔찍한 더위와 더 끔찍한 바선생의 콜라보레이션은 여기까지 겪어봤으면 족하다.





* 이 글은 <웰컴 투 삽질여행>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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