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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선 Aug 05. 2022

사하라의 시간 : 모로코에서 만난 사하라사막

포토에세이, 모로코 메르주가에서 만난 사하라사막

꿈꾸던 사하라로 가는 길

메마른 풍경 속에서 길고 긴 사막길을 달렸다. 반복되는 창밖의 정취에 몽롱하게 취해있을 무렵, 어느  순간 믿기 힘든 풍경이 나타났다.  오래도록 꿈꿔왔던 모래사막이다. 듬성듬성 지구의 표면이 드러난 자갈길 뒤에는 모래가 그린 능선이 고고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아, 꿈에서만 그리던 사하라의 모래사막이다. 이렇게 어느 순간 툭 튀어나오는 풍경이었단 말인가.  자갈길을 벗어나 모래로 향하는 순간, 진정한 사하라로의 초대장을 받은 것만 같았다. 


사막을 질주하는 꿈

자동차 하나가 쌩 하니 달려나간다. 내가 운전하는 것도 아닌데 쾌감이 느껴졌다. 모래사막을 배경으로 질주하면 어떤 기분일까?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스스로 개척하며 길을 내는 기분은 또 어떨까? 이곳에서 나는 운전대를 잡아보고 싶었다. 

나는 운전대를 잡는 것이 무섭다. 운전대를 잡는 순간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세상에 내던져진 기분이다. 운전대 앞에서는 고민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고민하는 순간 사고를 내버리거나 누군가가 내게 화를 낼 것만 같다. 도로 위의 공기가 무섭다. 그래도, 이곳이라면 운전대를 잡고 싶다. 그 어떤 정해진 길도, 내가 정한 길에 간섭하는 그 어떤 대상도 없는 곳에서, 실컷 달려보고 싶다. 


낙타의 걸음걸음에 맞춰

베르베르인들의 스카프를 머리에 둘러맸다. 잠시나마 사막에서 나고 자란 이가 된 기분이었다. 낙타 위로 올랐다. 낙타의 커다란 몸이 크게 한번 기울더니 두둥실 떠올랐다. 조금 더 높은 세상에서 사막의 능선과 마주했다. 낙타 행렬을 장식하는 베르베르인 스카프 무리의 한 일원이 되었다. 낙타의 걸음걸음을 느껴본다. 오랜 인류의 역사 속에서 척박한 사막의 친구가 되어준 동물.  사막길로 먼 여행을 떠난 옛 상인들의 낙타와, 관광객을 태우고 하루 스케줄을 소화하는 낙타의 삶 중 어떤 삶이 더 나을까? 아무래도 나를 태운 이 낙타가 더 나으려나? 고맙고, 미안하다. 


반짝이는 모래 속에서

낙타가 데려다 준 모래산을 올랐다. 신발을 벗고, 두 발로 찬찬히 모래 위를 걸었다. 지구의 비밀스런 구석으로 똑 떨어진 느낌이다. 겨울 한낮의 햇빛을 받은 모래가 따스히 밟혔다. 걸을 때마다 발가락 사이사이의 모래가 사르르 떨어졌다. 명성만큼 건조하기 때문인지 모래는 옷이나 몸에 전혀 달라붙지 않았다. 사막의 모래는 햇빛 아래서 모든 그림을 연출했다. 황금색 모래빛도 어두운 모래의 그림자도 모두 햇빛과 합작한 결과물이다. 사구의 능선에 앉았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황홀한 광경. 하루 해가 천천히 떨어진다. 사막의 모래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눈부시게 반짝였다. 


사막에서의 하루가 저물고

사막에서의 하루가 저물어간다. 낙타들의 하루도 저물고 있다. 고단한 하루 일을 마친 낙타들이 편히 쉴 시간이다. 수고했어, 얘들아. 내일은 조금 더 가벼운 손님이 타길 기도해줄게. 


슬프고도 신명나는 북소리

사막의 캠프파이어가 시작되었다. 황량한 모래사막에서 불길이 솟아오른다. 사하라의 겨울 밤, 불길은 차가운 공기를 걷어갔다. 신명나는 밤이 시작되었다. 커다란 북을 치고 신나는 노래를 부르며 기묘하고 힘찬 춤사위를 펼치는 이들과 만났다. 이들은 모로코 사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베르베르인이 아니었다. 멀지 않은 옛날, 사하라 남부에서 노예무역으로 팔려왔던 이들의 후손이란다. 이토록 신명나는 노래가 왠지 모르게 구슬프게도 들렸다. 환하게 웃어주는 미소가 고마웠다.


별이 빛나는 밤에

그야말로 별이 쏟아졌다. 하늘에 별이 이렇게 많았던가. 내가 사는 세상과 별이 사는 세상이 다르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분명 서울의 하늘에도 이렇게 별이 많이 있겠지. 별자리 어플까지 동원해 찾아냈던 희미한 흔적 속 별자리들은 이곳에선 오히려 쉬이 찾을 수가 없었다. 별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저 광활한 우주가 품고 있을 이야기에 경외심이 느껴졌다.


또 하루가 시작된다

일출을 찾아 사구 위로 올랐다. 어제의 따뜻했던 모래는 어디로 가고 차갑게 식어 얼음장 같은 모래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녘 검은 모래 위로 아주 조금씩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평선 위로 노란 띠가 생기더니 금세 하늘이 밝아왔다. 비스듬히 들어온 아침 햇빛이 온 땅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사막의 아침이 밝았다. 지구의 역사를 천천히 수놓을 하루가 이렇게 또 시작된다.




글/사진. 서지선 

지도 위를 걷는 여행자. <지리 덕후가 떠먹여주는 풀코스 세계지리>, <웰컴 투 삽질여행>, <이토록 환상적인 세계 도시는 처음입니다만!>을 썼습니다.


* 모든 사진과 글에 대한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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