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 열차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떠난 여행이기 때문에 꼭 성공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다시 돌이켜 생각해봐도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이해조차 되지 않지만, 여행을 했을 때 끄적였던 메모장을 보면 그런 내용이 적혀있다. 여행에는 성공과 실패가 없는데 말이다.
나는 이 여행이 엄청 대단한 것이 되는 것 마냥 이 여행을 통해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된 세계여행
블라디보스토크를 시작으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유럽으로 넘어가 발트 3국부터 유럽에 나의 발자취를 남겨보자는 거대한 꿈을 꾸며 열차에 올랐다.
방을 배정받고 열차칸에 들어섰다.
두근거렸다. 이 긴 여정을 함께 하게 될 사람은 과연 누굴까?
나는 첫 여행의 시작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
영화를 보면 여행길에 야간열차를 타고, 그곳에서 우연히 멋진 이성과 눈이 맞고 사랑을 하고, 여행을 하고…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낭만적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드디어 그럴 기회가 왔구나 하는 부푼 기대를 안고 들어섰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10살 남짓 되어 보이는 티모시와 그의 엄마 올라가 왔다. (그럼 그렇지 로맨스? 낭만? 개뿔)이라는 생각을 속으로 하며 어색한 웃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시작된 2박 3일의 동고동락
영어와 러시아어를 못하고, 한국어만 할 줄 아는 한국인과, 영어 그리고 한국어를 못하고,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러시아인과의 만남
대충 손짓 발짓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들은 집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그리고선 가방에서 주섬주섬 과자를 꺼내 우리에게 나눠주었다
과자를 꺼내 받고 3초의 정적
'어디서 많이 본 과잔거 같은데'
"대박! 초코파이!!!"
갑자기 흥분한 나는 티모시에게 이거 우리나라 만든 과자라는 것을 손짓 발짓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 과자가 어느 나라의 과자인지 알지 못 한 듯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머나먼 곳에서 한국을 발견했고, 역시 초코파이는 정이라며 그들에게서 따뜻한 정을 나눴다.
첫 시작부터 기분이 좋았다.
이른 아침 눈을 뜨니 티모시와 올라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어제 분명 늦게 잔 것 같았는데, 참 부지런한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시작되는 나의 루틴 거울보기
이틀째여서 그런지 아직 까지는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횡단 열차를 탄 여행자들의 후기를 본 적이 있다. 들어보면 좀 쑤시고, 씻지도 못해서 불편하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는데...
우린 체질인 듯했다. 편해도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9년 동안 교대근무에 맞게 매일 알람을 맞추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 일상은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지 않아도 됐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됐다.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가만히 있으면 되고 하고 싶으면 하면 됐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열차를 탈 때 직원이 도시락을 고르라고 했다.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있다 보니 집중해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들었다 그렇게 우리 귀에 들어온 단어 치킨 우리는 냉큼 치킨으로 주문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점심이 돼서 도시락이 도착했다
도시락에 쿠키까지 구성이 좋다며 우리끼리 하하호호 이야기를 하며 도시락을 열었다
어제 분명 치킨이라는 단어를 들었던 거 같은데 응?
메뉴를 보니 내가 생각하던 치킨이 아니었다
아! 물론 닭이 맞긴 맞았다. 수연이가 못 먹는 닭....
다행히도 우리에겐 컵라면이 있었기에 수연이는 컵라면을 먹었고, 나는 컵라면 국물과 함께 밥을 먹었다.
닭고기는 간이 제법 짭조름하게 되어 있어 비리거나 냄새가 나진 않았고, 먹을만했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이 어이없는 상황이 너무 웃겼고 즐거웠다.
여행은 그런 거 같다 단 하나도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
그리고 그 빗나간 모든 변수들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즐길 줄 아는 순간 이 여행은 더 재미있어진다는 사실
나는 이제 점점 여행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