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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 Sep 27. 2022

운명의 15분


역시,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날을 돌이켜 보면 그날의 사진만 쏙 빠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날의 일들은 오롯이 우리의 기억 속에만 남았다.


이른 아침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삽산열차를 타기 위해 짐을 싸고 있었다.

그때 수연이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

"여권 챙겼지?"

"......"

3초의 정적이 흐른 뒤 나는 가방을 뒤져 여권을 찾기 시작했다. 분명 체크인을 할 때 여권을 주고, 여권을 복사하는 모습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도무지 여권을 받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배낭가방부터 보조가방까지 가방이라는 가방을 모조리 다 뒤졌지만 여권을 찾을 수 없었고, 결국 리셉션으로 가 여권이 있는지 물어봤지만 여권을 찾지 못했다.

등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고, 졸지에 리셉션 직원을 의심하기까지 했다(물론 속으로)


우리가 타야 하는 삽산열차는 9시 40분 기차

현재시간 8시 30분 

30분에 집에서 나서려 했는데 여권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점점 초조해지고 있던 찰나 수연이가 가방에서 탁 하고 여권을 꺼냈다.

'어쩐지.... 여권을 받은 기억이 나지 않더라니....' 자기가 챙겨놓고 나에게 왜 물어본거야 도대체! 


그렇게 우리는 예정된 시간보다 15분 늦은 8시 45분에 숙소에서 나왔다.

앞서 말했듯 열차의 시간은 9시 40분, 숙소에서 레닌그라드 역까지는 3 정거장

조금 늦게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기차를 못 탈 정도로 늦은 시간은 아니었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아직도 아찔한 그 순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혜원아 내가 길 찾아놨어 OKT 여기로 가면 돼."

"그래? 알겠어 가자" 

무슨 정신으로 길치인 네가 하는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출발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게 수연이가 체크해둔 OKT로 시작하는 옥탸브리스카야역에 도착

도착시간 9시 30분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뭔가 이상했다. 기차역이어야 하는 이곳이 그냥 지하철역이란 말이지....


결국 1시 40분 기차표를 새로 끊었고, 그렇게 우리는 8시 45분에 집을 나와 1시 40분 기차를 타고 6시 40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늘 그렇듯 여행은 항상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일들은 내 마음 가짐에 따라 즐거움과 우울함으로 나뉜다.

하여, 이 글을 읽고 앞으로 여행을 하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여행을 하면서 생기는 모든 일들을 그리고 그 시간과 그 순간들을 즐기길 바란다.



에필로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여행을 했을 때 만난 할머니 한분이 계셨다.

우리가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간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할머니는 바디랭귀지로 우리에게 정말 열심히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설명을 해주셨다.

그때는 그저 그 상황이 너무 웃겼고 유쾌한 할머니를 한 분을 만났구나 정도로 기억하고 흘려보냈다.



레닌그라드 역(횡단 열차에서 내리는 역)에서 5분 떨어진 콤소몰스카야역(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역) 가는 길을 설명해주고 있는 할머니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랬다.

우리가 횡단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에서 상트로 간다는 이야기를 했고, 

할머니가 기차역에서 내려서 지하도 같은 곳으로 '총총총' 건너가면 거기가 상트로 가는 역이라고 설명을 해줬었는데, 우리는 뭐 때문에 왜 때문에 OKT로 시작하는 옥타브리스카야역으로 갔던 것일까










왜 나는 지도를 한 번도 보지 않고 길치인 너를 따라 그냥 믿고 갔던 것일까

어쩐지 분명 3 정거장만 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오랜 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더라... 














기차를 놓치고 정신이 반쯤 나가서일까

아님 이 상황이 그저 어이없고 웃겨서일까

하염없이 히죽히죽 거리면서 근처 카페로 들어가 

커피 한잔을 하면서 4시간을 시간 때우던 

우리들의 모습


가방을 맞은편에 두고 소개팅하는 거 같다면 웃고 떠들고 이 모든 상황을 즐기며

이렇게 또 우리의 에피소드가 하나 생겼다며 좋아했다





10만 원을 날려버린 우리에게 생겨 버린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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