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여행]
'마카오(Macau)'라는 낯선 지명을 입안에서 둥글게 발음해 볼 때면, 머릿속에는 결코 섞일 수 없을 것만 같은 두 개의 상반된 풍경이 동시에 피어오른다. 한쪽에는 칠흑 같은 밤하늘을 대낮처럼 밝히는 코타이 스트립의 거대한 카지노 리조트들과, 자본이 뿜어내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일렁인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다른 한쪽을 바라보면, 오래된 좁은 골목길을 따라 향 연기가 피어오르고 수백 년 전 포르투갈 선원들이 거닐었을 법한 파스텔 톤의 낡은 유럽풍 건축물들이 고즈넉한 숨결을 내뱉고 있다. 이 극명한 대비는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인문학적 질문을 던진다. 화려한 자본의 불빛과 오래된 역사의 이끼 중, 마카오의 진짜 얼굴은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도심의 화려함을 잠시 등지고, 가장 오래된 구도심인 '마카오 반도(Macau Peninsula)'의 심장부로 걸음을 옮겨야 한다. 마카오 반도 여행의 출발점이라 불리는 세나도 광장에 처음 들어섰을 때, 아마도 대부분의 여행자는 좁은 광장을 빈틈없이 메운 전 세계의 인파에 압도당하고 말 것이다. 이리저리 부딪히는 어깨와 사방에서 들려오는 낯선 언어들은 흡사 붕괴하기 직전의 바벨탑을 연상케 한다. 만약 그저 '사람에 치인다'는 육체적 피로감만으로 이 거리를 스쳐 지나간다면, 마카오가 수백 년 동안 품어온 거대한 서사는 영영 침묵하고 말 것이다.
여행지에서 장소를 깊이 있게 읽어내는 '도슨트의 시선'은, 렌즈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서부터 출발한다. 눈앞을 가로막는 인파를 지나쳐 우리의 발밑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오래된 건물의 벽면을 손끝으로 더듬어 읽어 나가는 순간, 소음으로 가득했던 평범한 광장은 이내 400년의 묵직한 두께를 지닌 거대한 역사 책으로 변모하는 마법을 부린다. 수백 년 전, 지구 반대편의 동양과 서양이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교차하던 이 좁고 신비로운 반도에서는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싹을 틔우고 잎을 피워냈을까.
마카오 반도 도보 여행의 진정한 서막을 여는 세나도 광장(Senado Square)은, 여행자를 순식간에 남부 유럽의 어느 고요한 마을로 데려다 놓는 힘을 지니고 있다. 광장을 병풍처럼 다정하게 감싸고 있는 파스텔 톤의 신고전주의 건축물들은 마치 시간을 멈춰 세운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 광장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시선을 빼앗겨야 할 곳은 화려하게 장식된 건물들의 파사드(Facade)가 아니라, 우리가 무심코 딛고 서 있는 바로 그 '바닥'이다.
물결치듯 유려한 흑백의 무늬가 끝없이 교차하는 광장의 바닥 장식을 두고, 혹자는 '칼리파'라는 잘못된 이름으로 부르거나 그저 이국적인 포토존 정도로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모자이크 장식의 정확한 명칭은 포르투갈어로 '깔사다 포르투게자(Calçada Portuguesa)'이며, 여기에는 단지 미학적인 가치를 뛰어넘는 치열한 생존의 역사가 서려 있다. 이 바닥은 대항해시대를 목숨 걸고 개척했던 포르투갈 선원들의 처절한 피와 땀, 그리고 그들이 마주했던 거친 바다의 기억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거대한 기록물이다.
과거 포르투갈의 웅장한 무역선들은 낯선 향신료와 부를 찾아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고 인도양의 거친 풍랑을 헤쳐 마카오에 이르는, 그야말로 목숨을 건 항해를 감행해야 했다. 이때 거친 파도에 가벼운 빈 배가 중심을 잃고 뒤집히는 것을 막기 위해, 선원들은 출항 전 배의 밑바닥에 무거운 석회암과 현무암을 가득 실었다. 짐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일종의 '밸러스트(Ballast)'였던 셈이다. 마침내 수개월의 사투 끝에 마카오 항구에 무사히 닿은 배들은, 동양의 진귀한 비단과 도자기를 싣기 위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무거운 돌들을 항구에 아낌없이 버리고 고향으로 떠났다.
버려진 돌들은 현지인들의 거친 손에 의해 잘게 깨어지고 부서졌으며, 그 흑과 백의 조각들은 이내 세나도 광장의 바닥에 거대한 물결무늬 모자이크로 새롭게 환생했다. 이러한 숭고한 역사적 배경을 알고 나면, 우리는 그저 사진 찍기 좋은 광장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항해시대의 그 험난했던 바다 위를 두 발로 걷고 있다는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발밑에서 끊임없이 일렁이는 이 흑백의 파도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400년 전 거친 바다와 싸웠던 선원들의 심장 박동을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발끝으로 생생히 전해준다.
세나도 광장의 흑백 물결을 따라 걷다 성 바울 성당의 유적 쪽으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 오르막에 접어들면, 우리의 시각보다 후각이 먼저 다음 목적지를 강렬하게 안내하기 시작한다. 매캐하면서도 짙은 불향, 고소하면서도 달콤한 고기 굽는 냄새가 코끝을 스치면 바로 마카오 미식 여행의 상징이자 수많은 여행자의 발길을 붙잡는 '육포 거리'에 다다른 것이다.
여행이 주는 묘미는 종종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뜻밖의 감각적 경험에서 찾아오는데, 마카오의 육포가 건네는 미각적 충격이 바로 그러하다. 한국에서 흔히 안주나 간식으로 접하던, 차갑고 건조하며 질긴 식감의 붉은 육포를 상상했다면 마카오의 육포는 그 익숙함을 보기 좋게 무너뜨린다. 길거리에 다닥다닥 늘어선 상점에서 방금 숯불에서 구워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육포를 시식용으로 건네받아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입안 가득 퍼지는 숯불의 짙은 풍미와 혀끝을 감싸는 촉촉한 육즙의 부드러움에 완벽하게 매료되고 만다.
그렇다면 왜 전 세계 수많은 도시 중 하필 마카오에서 이토록 독특하고 부드러운 방식의 육포가 발달하게 된 것일까.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마카오가 지닌 척박한 지리적 기후와, 그들이 겪어온 역동적인 교역의 역사가 빚어낸 필연적인 생존의 결과물이다. 연중 덥고 습한 아열대 기후를 지닌 마카오에서는 과거 냉장 시설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 귀한 식재료인 고기를 오랫동안 부패 없이 보존하는 것이 삶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중대한 과제였다. 이에 중국 남부 광둥 지방 특유의 전통적인 고기 보존법이 마카오로 유입되었고, 여기에 마카오가 아시아 제일의 중계 무역항으로 전성기를 누리며 세계 각지에서 들여온 다채롭고 이국적인 향신료들이 더해졌다.
마카오 사람들은 이 다국적 향신료로 고기를 깊게 재운 뒤, 뜨거운 숯불에 구워 표면의 수분은 날려 보존성을 극대화하면서도 그 속은 놀랍도록 촉촉하게 유지하는 완벽한 조리법을 완성해 냈다. 즉, 우리가 왁자지껄한 거리를 걸으며 무심코 씹고 삼키는 이 따끈따끈한 육포 한 조각에는 덥고 습한 기후를 극복하려 했던 인간의 지혜와, 동서양의 물산이 쉼 없이 교차했던 중계 무역항 마카오의 뜨거운 역사가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다. 역사는 때때로 도서관의 두꺼운 활자가 아니라, 골목길에서 피어오르는 길거리 음식의 따뜻한 온도와 강렬한 미각을 통해 우리의 몸 안에 더 선명하게 각인되기도 한다.
육포 거리의 달콤한 향기를 뒤로한 채 다시 촘촘한 인파의 물결에 몸을 맡겨 가파른 계단의 끝에 다다르면, 이내 마카오를 대표하는 가장 압도적이고 장엄한 상징물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홀로 우뚝 서 있는 '성 바울 성당의 유적(Ruins of St. Paul's)'이다. 1835년 마카오 반도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거대한 대화재는 이 웅장했던 성당의 목조 본체를 모두 무자비하게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며칠 밤낮을 삼킬 듯이 타오르던 붉은 불길이 마침내 사그라진 뒤 남은 것은, 오직 돌로 단단하게 만들어진 건물 전면부의 파사드(Facade)와 그 앞을 묵묵히 지키는 68개의 계단뿐이었다.
본당의 공간 없이 텅 빈 하늘과 바람을 뒷배경 삼아 솟아 있는 이 거대한 돌의 파사드는, 역설적이게도 그 뼈대만 남은 결핍 덕분에 수백 년 전의 영광을 더욱 처연하고 강렬하게 뿜어낸다. 하루에도 수만 명의 관광객들이 이 거대한 석벽 앞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기념사진을 남기기 바쁘지만, 도슨트의 인문학적 시선을 장착한 여행자라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렌즈를 내려놓은 채, 파사드에 빼곡히 새겨진 정교한 조각들과 깊은 눈맞춤을 시도해야 한다. 이 남겨진 벽면은 단순한 건축의 잔해나 화재의 상흔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가 치열하게 충돌하고 또 기적처럼 융합하며 인류에게 남긴 거대한 석조 암호문이기 때문이다.
17세기 초, 이 거대한 아시아 최대 규모 성당의 밑그림은 머나먼 유럽에서 건너온 이탈리아 예수회 신부들의 이성적인 설계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거친 돌을 깎아내고 무거운 벽을 세워 건축을 완성한 이들은 유럽의 석공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본국에서 벌어진 잔혹한 기독교 박해를 피해 바다를 건너 도망쳐 온 일본인 기독교인 장인들과 현지에 거주하던 중국인 장인들이었다. 전혀 다른 문화적 궤적과 종교적 배경을 지닌 이 이방인 장인들의 투박하지만 절실했던 손길은, 성당 벽면 곳곳에 지울 수 없는 이질적인 흔적들을 깊게 남겨 놓았다.
가까이 다가가 조각을 하나하나 확대해서 들여다보면 그 기묘한 조화가 자아내는 기운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성스러운 가톨릭 성모 마리아 조각의 바로 옆 공간에는 뜻밖에도 한자(漢字)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으며, 서양의 악마를 물리치고 있는 대천사 미카엘의 조각 아래에는 다름 아닌 동양에서 신성하게 여겨지는 용(龍)이 무참히 짓밟혀 있는 형상이 묘사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을 상징하는 국화꽃 문양과, 악귀를 쫓는다는 중국풍의 늠름한 사자상이 가톨릭 성인들의 조각과 아무런 위화감 없이 나란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거대한 파사드는 지구상 그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동서양의 종교와 예술, 그리고 당대 민중들이 온몸으로 겪어내야만 했던 시대의 아픔과 생존의 의지가 한쪽 벽면에 완벽하게 융합된 기적적인 결과물이다. 모든 것을 집어삼킨 맹렬한 화마조차 끝내 무너뜨리지 못한 이 견고한 벽면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문화와 종교의 차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뛰어넘어 오직 정과 망치 하나로 숭고한 구원을 빚어내려 했던 옛 장인들의 거친 숨결이 들려오는 듯하다. 마치 그들이 후대에 남겨놓은 비밀스러운 암호를 하나씩 해독해 내는 듯한 깊은 전율이 마음속을 강하게 파고든다.
발밑에서 춤추는 세나도 광장의 흑백 파도 위를 걷고, 육포 골목에서 역사가 빚어낸 미각을 입안 가득 음미한 뒤, 성 바울 성당 유적 앞에서 동서양 융합이 만들어낸 장엄함에 숙연해지는 여정. 마카오 반도의 오래된 구도심은 단 한순간도 여행자의 시선을 허투루 놓아주지 않을 만큼, 빽빽하고 밀도 높은 역사적 서사를 쉴 새 없이 쏟아낸다. 이토록 치열하고도 경이로운 인문학적 산책을 묵묵히 소화해 냈다면, 이제는 북적이는 수많은 인파와 복잡한 시대의 무게에서 한 걸음 물러나 여행의 호흡을 가다듬고 온전한 쉼표를 찍을 시간이다.
압도적인 성 바울 성당에서 발길을 돌려 도보로 불과 5분 남짓 걷다 보면, 등 뒤로 아스라이 멀어지는 광장의 소음과 함께 마치 시공간을 이동하는 마법에 걸린 듯 고즈넉하고 비밀스러운 골목 하나가 눈앞에 펼쳐진다. 바로 마카오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구역으로 손꼽히는 '성 라자루 성당 구역(St. Lazarus' District)'이다. 좁은 골목길을 캔버스 삼아 채워진 형형색색의 식민지 시대 건축물들과, 그 사이를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스쳐 지나가는 현지인들의 일상적인 풍경은, 방금 전까지 겪었던 번잡하고 역동적인 마카오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고요한 평안함을 선사한다.
이 포르투갈풍의 골목 깊숙한 곳으로 걸음을 옮기면, 수백 년의 억겁을 견뎌낸 듯한 거대한 녹나무 두 그루가 마치 정원의 문지기처럼 든든하게 호위하고 있는 노란색 콜로니얼 양식의 건물을 만나게 된다. 그곳이 바로 도심 속 비밀 정원이라 불리는 '알베르구 1601(Albergue 1601)'이다. 과거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 속에서 갈 곳 잃은 포르투갈 피난민들과 의지할 곳 없는 할머니들의 쓸쓸한 안식처였던 이 공간은, 세월의 더께와 슬픔을 자양분 삼아 현재 마카오 최고 수준의 매키니즈(Macanese, 마카오 현지화된 포르투갈 요리)와 전통 포르투갈 요리를 선보이는 가장 낭만적인 레스토랑으로 아름답게 변모했다.
햇살이 쏟아지는 수백 년 된 나무가 드리우는 짙은 그늘 아래,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고풍스러운 정원의 테이블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아본다. 토마토와 해산물이 진하게 우러난 포르투갈식 해물 밥(Arroz de Marisco)의 깊고 풍부한 풍미를 천천히 음미하고, 서늘하게 칠링 된 청량한 포르투갈 와인 한 잔을 곁들인다. 입안 가득 은은하게 번져가는 이국의 낯선 맛과 향기는, 마치 이 낡은 건물이 오랫동안 품어온 지난날의 애환과 상처를 따뜻하게 쓰다듬고 감싸 안는 듯하다. 여행이 주는 짙은 여운은 끊임없이 걷고 감탄하는 순간을 지나, 이처럼 조용히 머무르며 침전하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 온전히 스며든다.
마카오 반도를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아시아의 라스베이거스라 불리는 환락의 도시 이면을 들여다보는 가벼운 일탈이 아니다. 이곳의 낡은 골목마다, 발끝에 채이는 돌멩이 하나하나마다 400년이 넘는 아득한 시간 동안 동양과 서양이라는 거대한 두 세계가 끊임없이 충돌하고 타협하며, 끝내 아름답게 섞여 들어간 살아있는 박물관을 만나는 일이다. 포르투갈 선원들의 치열한 생존의 무게가 담긴 모자이크 바닥을 걷고, 척박한 기후를 이겨낸 지혜로운 육포를 베어 물며, 동서양의 장인들이 합심하여 조각해 낸 성당의 파사드를 우러러보는 일. 그것은 곧 인류가 교류를 통해 이룩해 온 찬란하고도 아픈 시간의 지층을 나의 두 발로 직접 밟고 걷는 경건한 행위와 같다.
진정한 의미의 여행은 단지 지도에 표시된 새로운 풍경을 시각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 익숙하고 평범해 보이던 장소에서 이전에는 결코 보이지 않던 이면의 깊은 서사를 끄집어내어 읽어내는 주체적인 행위일 것이다. 마카오 반도에서의 치열했던 도보 여행은 우리에게 겉모습에 가려진 공간의 진짜 서사를 해독하는 지적이고 감성적인 즐거움을 일깨워 준다.
어쩌면 우리가 매일 부딪히며 살아가는 일상의 삶 역시, 이 복잡하고 오묘한 마카오의 골목을 묘하게 닮아 있지 않을까. 겉으로 보기엔 그저 목적지 없이 복잡하게 엉켜 치열하게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그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각자가 쏟아낸 땀방울로 정교하게 새겨 넣은 고유한 무늬가 있고, 예기치 않은 우연한 만남들이 빚어낸 독특하고 다채로운 조화가 소리 없이 숨 쉬고 있을 것이다.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과 카지노의 소음 아래 조용히 침묵하고 있던 마카오의 진짜 얼굴을 찾아 나섰던 이 길고 깊은 여정은, 훗날 내 일상의 이면에 깃든 작고 소중한 가치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따뜻한 인문학적 영감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바람결에 묻어오는 상큼한 포르투갈 와인의 향기와 낡은 돌계단의 서늘한 이끼 냄새가,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도 여전히 코끝을 부드럽게 맴도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