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여행]
마카오라는 도시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눈앞에 그려지는 풍경은 무엇인가. 필시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황금빛 호텔들과 밤을 잊은 채 번쩍이는 네온사인, 그리고 그 안에서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베팅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화려한 군상일 것이다. 코타이 스트립(Cotai Strip)으로 대변되는 이 압도적인 풍경은 마카오를 지탱하는 거대한 '경제'이자, 자본주의의 정점을 보여주는 마카오의 '지갑'이다. 하지만 여행의 진정한 깊이는 종종 랜드마크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법이다. 거대한 자본의 산물인 코타이 스트립에서 불과 10분 남짓 거리를 이동하면, 마카오라는 도시가 지닌 전혀 다른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마카오의 '생활'이자 '부엌'이라 불리는 공간, 타이파 빌리지(Taipa Village)다.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시간의 흐름은 묘하게 느려진다. 에어컨 바람으로 완벽하게 통제되던 인공적인 서늘함 대신, 갓 구워낸 빵의 달콤한 향기와 사람들의 체온이 섞인 훈풍이 여행자의 뺨을 스친다. 잿빛 빌딩 숲은 어느새 파스텔 톤의 포르투갈풍 건축물과 붉은빛이 감도는 중국의 전통 가옥으로 모습을 바꾼다. 트래블 도슨트로서 나는 종종 이곳에서 여행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곤 한다. 우리는 왜 수천억 원이 투자된 화려하고 안락한 리조트를 벗어나, 굳이 발 디딜 틈 없이 비좁은 옛 골목으로 걸음을 옮기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완벽하게 연출된 환상보다는, 땀 냄새와 음식 냄새가 뒤섞인 날것의 '삶' 속에서 우리가 더 깊은 위로와 공감을 얻기 때문일 것이다.
타이파 빌리지의 골목을 걷다 보면, 발밑에 깔린 돌길 하나하나가 오랜 역사의 파편임을 깨닫게 된다. 지금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관광 명소가 되었지만, 타이파는 본래 바다에 기대어 살아가던 작고 조용한 어촌 마을이었다. 이 평화로운 마을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포르투갈 귀족들이 하나둘 이곳에 휴양을 위한 별장을 짓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민트색과 레몬색으로 칠해진 유럽풍의 외벽 곁에, 향을 피우고 붉은 등을 내건 중국인들의 삶의 터전이 나란히 자리 잡았다. 동양과 서양, 제국과 식민지라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타이파는 그 모든 이질성을 품어 안으며 마카오만의 독특하고 오묘한 문화를 잉태했다.
하지만 도슨트의 시선으로 타이파를 바라볼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숨은 서사가 하나 있다. 바로 과거 마카오의 경제를 떠받쳤던 '폭죽 공장'들의 존재다. 한때 타이파에는 위험한 화약을 다루는 폭죽 공장들이 밀집해 있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을 맨손으로 만지며 하루하루 생사를 오가던 노동자들에게, 퇴근길 타이파 빌리지의 식당들은 단순한 음식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곳은 고단한 하루를 무사히 넘긴 것에 안도하며 따뜻한 밥 한 그릇으로 서로의 영혼을 위로하던 거대한 '부엌'이었다. 매캐한 화약 냄새를 씻어내고 주린 배를 채워주던 그 다정하고도 치열한 "먹이는 문화"는 시대를 넘어 타이파의 DNA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타이파가 마카오 미식의 절대적인 중심지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누군가를 살려내던 따뜻한 부엌의 온기가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골목 곳곳에 짙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타이파 빌리지의 심장이라 불리는 '쿠냐 거리(Rua do Cunha)'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솔직한 심정으로 내 머릿속을 스친 첫 생각은 "큰일 났다"였다. 성인 서너 명이 나란히 걷기에도 벅찬 좁디좁은 골목은 이미 전 세계에서 모여든 인파로 꽉 막혀 있었다. 나 홀로 떠난 배낭여행이었다면 기꺼이 그 인파 속으로 뛰어들었겠지만,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온 효도 여행의 가이드 입장에서는 덜컥 겁부터 났다. 행여나 부모님이 이 복잡함에 지쳐 여행의 흥미를 잃으시진 않을까, 차라리 시원하고 쾌적한 코타이의 호텔 식당으로 모셔야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후회마저 들었다.
그러나 나의 걱정은 철저한 기우에 불과했다. 골목 안으로 한 걸음 깊숙이 들어가는 순간,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피어오르는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우리의 닫혀 있던 후각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광둥어와 낯선 외국어들이 뒤섞인 웅성거림, 상인들의 활기찬 호객 소리, 그리고 손에 간식을 든 채 환하게 웃는 여행자들의 표정.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오히려 지루하고 정체되어 있던 여행의 긴장감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쿠냐 거리는 정제되지 않은 삶의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고, 그 북적임은 피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마카오라는 도시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박동이었다.
중화권 여행을 할 때 많은 한국인 여행자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장벽은 언어도, 덥고 습한 날씨도 아닌 바로 '향신료'다. 팔각과 고수, 마라 등 특유의 강렬한 향에 익숙하지 않은 부모님 세대에게는 매 끼니가 하나의 도전과도 같다. 이번 여행에서도 부모님은 마카오의 강한 향신료 음식에 적응하지 못해 번번이 수저를 내려놓으셔야 했고, 점차 기력을 잃어가고 계셨다. 도슨트이자 자식으로서 깊은 무력감을 느끼던 그때, 쿠냐 거리의 한 모퉁이에서 구세주처럼 우리 가족을 구원해 준 음식이 있었으니, 바로 '망고 찹쌀 모찌'였다.
청주평기 등 유명한 모찌 가게 앞에는 이미 인내심을 요구하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받아 든 모찌의 자태는 영롱했다. 얇고 투명할 정도로 쫀득하게 빚어낸 찹쌀 피 안에는 샛노란 생망고 반 개가 통째로 들어가 있었다. "이건 향 냄새 안 나네?" 반신반의하며 한 입 베어 무신 부모님의 얼굴에 비로소 화색이 돌았다. 입안 가득 퍼지는 과일 본연의 상큼한 과즙과 찹쌀의 기분 좋은 쫄깃함은, 그동안 향신료에 지쳐 있던 미각을 완벽하게 씻어내 주었다. 인위적인 설탕의 단맛이 아니라 과일이 품은 건강한 단맛이었다. 화려하고 값비싼 호텔 뷔페에서도 채우지 못했던 부모님의 포만감을, 좁은 골목길 한구석에서 산 이 작고 소박한 모찌 하나가 채워주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자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인파에 치여 걷다 조금씩 다리가 뻐근해질 무렵, 우리는 '또우화(Douhua)'라는 간식을 파는 작은 가게와 마주쳤다. 또우화는 연두부에 달콤한 시럽이나 설탕물을 곁들여 먹는 중화권의 전통 디저트다. 두부를 디저트로 먹는다는 사실이 한국인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던 이 한 그릇에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서민들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나온 또우화를 한 숟갈 떠서 입에 넣는 순간, 씹을 새도 없이 부드럽게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식감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한국의 찌개용 순두부보다 훨씬 매끄럽고 푸딩처럼 탱글탱글한 또우화는, 은은하게 곁들여진 달콤한 시럽과 만나 기막힌 조화를 이루었다. 땀을 뻘뻘 흘리는 한낮에는 차갑게 얼음과 함께 먹어 더위를 쫓고, 속이 차가울 때는 따뜻하게 데워 먹어 위장을 편안하게 달래주는 음식. 자극적인 맛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이 담백함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호불호 없이 다가가는 거대한 포용력을 지녔다. 혀끝을 강타하는 매운맛과 짠맛의 홍수 속에서, 또우화의 슴슴하고 부드러운 맛은 마치 소란스러운 세상을 향해 건네는 조용한 위로처럼 느껴졌다.
타이파 빌리지에서의 미식 탐험은 쿠냐 거리 초입부터 진동하는 고소한 냄새의 발원지, '코케이 베이커리(Kokei Bakery, 晃記餅家)'에서 절정을 맞이한다. 이곳은 미슐랭 가이드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린 100년 전통의 노포(老鋪)다. 급변하는 마카오의 풍경 속에서도 묵묵히 옛 방식을 고집하며 자리를 지켜온 이 빵집은, 단순한 상점을 넘어 존재 자체로 하나의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수많은 종류의 구움 과자 중에서도 이 집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메뉴는 단연 '봉황권(Phoenix Egg Roll)'이다. 겉보기에는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롤 모양의 과자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반전이 숨어 있다. 바삭한 에그롤의 안쪽을 짭조름한 김과 가늘게 찢은 돼지고기 포(pork floss)가 촘촘히 채우고 있는 것이다. 한 입 베어 물면 계란 과자의 달콤함과 바삭함이 먼저 느껴지고, 이어서 돼지고기 포의 깊은 감칠맛이 밀려온다. 단맛과 짠맛의 완벽한 밸런스, 바삭함과 폭신함이 교차하는 식감의 변주는 맥주 한 캔을 부르는 훌륭한 안주이자 쌉싸름한 차에 곁들이기 좋은 최고의 다과다. 무엇보다 포장이 정갈하여 여행의 기억을 나누는 선물용으로 이보다 제격일 수 없다. 백 년의 세월을 견뎌낸 장인의 고집을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일, 그것은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우아한 사치일지도 모른다.
타이파 빌리지, 특히 쿠냐 거리는 언제 방문해도 사람들로 어깨를 부딪히며 걸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내해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수고로움조차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값진 생동감이었다. 화려하고 거대한 자본주의의 상징인 코타이의 리조트들 속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사람 사는 냄새, 그리고 투박하지만 진심이 담긴 먹거리들이 이곳에 있었다.
지갑을 열어 최고급 서비스를 누리는 것도 여행의 훌륭한 방식 중 하나다. 하지만 마카오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잠시 지갑은 닫아두고 도시의 가장 낮은 곳, 가장 붐비는 '부엌'으로 걸음을 옮겨보기를 권한다. 그곳에는 미슐랭 3스타의 코스 요리 대신, 좁은 골목에 서서 호호 불며 베어 무는 모찌 하나가 부모님께 더 큰 추억과 웃음을 찾아준다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진리가 숨어 있다.
여행의 여운을 극대화하고 싶은 이들에게 트래블 도슨트로서 마지막 팁을 건넨다. 쿠냐 거리가 뿜어내는 최고의 열기를 느끼고 싶다면 오후 2시에서 5시 사이가 제격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북적임 뒤에 숨겨진 타이파 빌리지의 오랜 역사와 고즈넉한 숨결을 온전히 마주하고 싶다면, 아침 햇살이 비치는 오전 11시에 여유로운 브런치를 즐기러 오거나, 상점들이 문을 닫기 시작하는 저녁 8시 이후 낭만적인 야경과 함께 골목을 산책해 보라. 달빛 아래 묵묵히 서 있는 파스텔톤 벽돌 사이를 걷노라면, 수십 년 전 하루의 고단함을 덜어내던 마카오 사람들의 옅은 웃음소리가 밤바람을 타고 당신의 귓가에 조용히 머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