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여행]
마카오(Macau)라는 지명을 입에 올릴 때, 사람들의 뇌리에는 조건반사적으로 몇 가지 파편화된 이미지가 스쳐 지나간다. 밤을 잊은 채 명멸하는 코타이 스트립의 거대한 네온사인, 슬롯머신의 기계적인 마찰음, 그리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인간의 헐떡이는 욕망들.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포르투갈과 중국의 문화가 충돌하고 융합하며 빚어낸 매혹적인 골목들은, 언제부턴가 거대 자본이 쏘아 올린 화려한 카지노 호텔들의 그늘 아래 숨죽이고 있다. 마카오는 흔히 '동양의 라스베이거스'라 불리며 소비와 유흥의 성지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도슨트의 시선으로 바라본 마카오는 단순히 자본주의의 최전선에 머무는 도시가 아니다. 이 도시는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갱신하고자 몸부림치는 거대한 유기체와 같다. 그리고 그 치열한 몸부림의 가장 아름다운 증거가 바로 '시티 오브 드림즈(City of Dreams)'에 숨겨져 있다. 화려한 호텔 로비를 지나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The House of Dancing Water)'의 어두운 원형 극장에 들어설 때, 나는 스스로에게 하나의 인문학적 질문을 던졌다. "극한의 자본은 과연 인간의 영혼을 울리는 예술로 승화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1만 4천 톤의 거대한 물기둥이 무대 위로 솟구쳐 오르는 순간 명징하게 다가왔다. 그것은 도박의 도시가 스스로의 오명을 씻어내기 위해 준비한 거대하고도 숭고한 정화(淨化)의 의식이었다.
이 경이로운 무대의 탄생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10년 9월 17일이라는 시간적 좌표로 돌아가야 한다. 당시 마카오 정부와 자본가들은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카지노 산업으로 축적된 막대한 부는 도시의 외형을 부풀렸지만, '도박꾼들의 쾌락 도시'라는 낙인은 마카오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갉아먹고 있었다. 이들은 공간 사회학적인 결단을 내린다. 어른들의 은밀한 유흥 공간을, 전 세계 가족 단위 여행객이 모여드는 보편적인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허브'로 재편하겠다는 거대한 마스터플랜이었다.
그 야심 찬 기획의 첨병이 바로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였다. 5년의 치밀한 구상, 2년의 지독한 리허설, 전 세계 25개국에서 차출된 80여 명의 엘리트 캐스트와 160여 명의 기술진. 그리고 무엇보다 한화 약 3,000억 원(2억 5천만 달러)이라는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투입되었다. 이 숫자의 나열은 단순한 스펙의 과시가 아니다. 이것은 자본이 문화를 어떻게 재편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현대판 바벨탑의 건설과도 같았다. 그러나 오만에 빠져 무너져내린 바벨탑과 달리, 이들은 인간의 보편적 감성을 건드리는 '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라스베이거스를 뛰어넘는 독자적인 예술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이 공연을 기점으로 마카오를 찾는 관광객의 인구통계학적 지형도는 완벽하게 뒤바뀌었다.
이 막대한 자본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이는 2022년 세상을 떠난 세기의 연출가 '프랑코 드라고네(Franco Dragone)'다. 태양의 서커스 전성기를 이끌며 서커스를 한낱 기예에서 철학적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그는, 라스베이거스의 'O쇼'를 통해 이미 수중 퍼포먼스의 창조주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마카오에서 서양의 문법을 단순히 복제하지 않았다. 그는 동양의 깊은 사유 속으로 침잠했다.
드라고네가 선택한 철학적 뼈대는 바로 '상선약수(上善若水)'였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노자의 가르침처럼, 무대 위의 물은 형태를 고집하지 않으나 모든 것을 포용하고,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끝내 가장 강력한 폭발력을 보여준다. 그는 서구의 압도적인 기술력이라는 차가운 그릇 안에 동양의 '윤회(Samsara)'와 '인연(Karma)', 그리고 권선징악의 서사를 담아냈다. 마카오에서만 피어날 수 있는 이 독창적인 마스터피스는, 드라고네라는 연금술사가 이질적인 두 문명을 '물'이라는 보편적 질료로 융합해 낸 찬란한 결과물이다.
관객석에 앉아 극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시각적 경외감을 넘어 인간 이성이 도달한 공학적 성취에 전율하게 된다. 지름 수십 미터의 원형 극장 중앙에는 올림픽 규격 수영장 5개 분량의 거대한 바다가 일렁인다. 그러나 극의 전개에 따라 육지가 필요한 순간, 수면 아래 숨죽이고 있던 11개의 거대한 유압식 승강기가 굉음과 함께 솟아오른다. 1분도 채 되지 않는 찰나의 순간, 1만 4천 톤의 물은 특수 설계된 바닥의 틈새로 빨려 들어가고, 요동치던 바다는 어느새 모터사이클이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견고한 콘크리트 대지로 변모한다. 이것은 데카르트적 이성이 자연(물)을 완벽하게 통제해 낸 기계미학의 절정이다.
하지만 이 공연이 진정 위대한 이유는, 그 완벽한 기계적 통제 위에서 가장 날것의 인간적 한계를 시험하기 때문이다. 시선을 천장으로 돌리면 지상 24.5m 높이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샹들리에와 다이빙대가 보인다. 아파트 8층 높이, 인간이 가장 극도의 공포를 느낀다는 그 지점에서 배우들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허공을 가르며 물속으로 투신한다. 철저히 계산된 컴퓨터 공학의 차가움과, 피와 땀으로 빚어진 인간 육체의 뜨거움. 이 극단적인 이성과 야성이 무대 위에서 정면으로 충돌하며 빚어내는 스파크야말로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가 관객에게 선사하는 궁극의 카타르시스다.
대사 한 마디 없는 넌버벌(Non-verbal) 퍼포먼스임에도 불구하고, 90분간 극을 이끌어가는 서사의 힘은 강력하다. 작은 조각배를 타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어부가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쓸려 미지의 마법 왕국으로 편입되는 오프닝은, 일상을 떠나 마카오라는 이질적 공간에 당도한 관객의 처지와 절묘하게 오버랩된다.
그곳에서 만난 난파된 이방인, 사악한 어둠의 여왕에게 갇힌 순수한 공주, 그리고 그녀를 구하기 위한 처절한 전투. 이 단순해 보이는 줄거리는 신화학자 조셉 캠벨(Joseph Campbell)이 설파한 인류 보편의 원형 서사, 즉 '영웅의 여정'을 완벽하게 계승하고 있다. 모터사이클 부대가 내뿜는 매연과 포효는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혼돈과 폭력성을 상징하고, 수중 무용수들이 그려내는 유려한 곡선은 잃어버린 순수와 치유를 대변한다. 언어가 배제된 공간에서, 관객들은 배우들의 근육이 팽창하고 수면이 파동 치는 원초적인 에너지를 통해 국경과 세대를 초월한 깊은 교감을 나누게 된다.
이 거대한 제의(祭儀)에 동참하고자 하는 예비 여행자들을 위해, 도슨트로서 공간의 미학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실천적 조언을 남긴다. 270도로 무대를 감싸 안은 원형 극장에서 당신이 어느 좌표에 앉느냐는, 곧 당신이 이 극을 어떤 철학적 태도로 수용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극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뛰어들고 싶다면 주저 없이 A, B, C 구역의 1~4열, 이른바 '스플래쉬 존'을 택하라. 투명한 우비 한 장에 의지한 채 눈앞에서 튀어 오르는 물보라를 온몸으로 맞고 있노라면, 어느새 당신은 관찰자라는 안전한 외투를 벗고 극의 일부로 동화되는 물의 세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반면, 거장이 설계한 무대의 거시적인 미학과 배우들의 미시적인 감정선을 동시에 통찰하고 싶다면 B구역의 5~11열이 최고의 성소가 된다. 예산의 한계로 C구역의 뒷열에 앉게 되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모터사이클이 무대로 진입하는 통로와 맞닿은 그곳에서는, 정제된 예술 이면에 숨겨진 날것의 굉음과 엔진의 진동을 날 선 감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연의 피날레, 어둠의 여왕이 물러가고 평화를 되찾은 왕국을 뒤로한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어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것은 화려한 쇼가 끝났다는 아쉬움이 아니었다.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과 그것을 끈질기게 구현해 낸 숭고한 노동에 대한 경외였다.
우리는 종종 여행지에서 거대한 건축물이나 화려한 야경을 보며 셔터를 누르지만, 정작 그곳에 깃든 인간의 서사를 읽어내는 데는 인색하다. 마카오는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라는 투명한 캔버스를 통해 우리에게 묻고 있다. 쾌락과 자본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피어나는 예술의 생명력을 믿느냐고 말이다.
이 에세이를 읽는 당신이 마카오로 떠나게 된다면, 부디 성 바울 성당의 낡은 파사드 앞에서만 멈춰 서지 않기를 바란다. 3,000억 원이라는 자본의 무게를 가뿐히 딛고 도약하는 인간의 몸짓, 1분 만에 세상을 뒤바꾸는 치밀한 이성,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 물의 철학을 마주해보라. 찰나의 물결 위에 새겨진 이 거대한 서사시는, 메마른 일상을 살아가는 당신의 영혼에 잊지 못할 깊은 파동을 남길 것이다. 트래블 도슨트가 길 위에서 건져 올린 마카오의 진짜 얼굴은, 바로 그 심연의 물속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