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자연과 도시를 넘나들다:경이가 교차하는 길 위에서

[규슈 3박 4일 여행]

여행이라는 단어가 품은 낭만은 종종 현실의 무게 앞에서 그 형태를 바꾼다. 누군가에게 여행은 쳇바퀴 도는 일상을 탈출하는 완벽한 도피처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한 사색의 시간이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끈끈한 테두리 안에서, 특히 이제 막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하는 어린아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전혀 다른 층위의 인문학적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아이의 시선에 맞춘 맹목적인 희생과 봉사의 시간이 될 것인가, 아니면 어른의 욕망과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아이를 그저 무기력한 부속물로 동행시킬 것인가.


이번 3박 4일간의 일본 규슈 여행은 자칫 평행선을 달릴 수 있는 이 두 가지 명제 사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타협점, 혹은 절묘한 균형점을 찾아가는 구도(求道)의 길과도 같았다. '아이를 위한 직관적인 즐거움'과 '어른을 위한 깊이 있는 휴식과 사유'가 맞닿는 교집합을 찾는 것. 그것이 장소에 깃든 서사를 읽어내는 '트래블 도슨트'로서, 그리고 한 아이의 손을 잡은 부모로서 나선 이번 여정의 숨은 미션이었다.


후쿠오카 공항에 내려 낯선 공기를 들이마시며 렌터카의 운전대를 잡던 첫 순간. 한국과는 정반대에 놓인 우측 핸들과 좌측통행의 낯선 규칙은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감각들을 날카롭게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팽팽한 긴장감은 마치 우리가 앞으로 마주할 미지의 시간과 낯선 공간들에 대한 환영 인사 같았다. 그렇게 굳게 닫혀있던 막이 올랐고, 우리는 규슈라는 거대한 캔버스 위로 조심스럽게 타이어 자국을 남기며 스며들기 시작했다.


1. 하카타의 오랜 기원과 현계탄의 파도를 마주하다

다이치노우동.jpg 야채튀김이 올라간 국물우동 다이치노우동의 대표메뉴

여행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곳은 후쿠오카 도심 외곽의 짙은 서민적 정취가 배어있는 식당, '다이치노 우동(Daichinodon)'이었다. 흔히들 일본 규슈의 면 요리라고 하면 돼지 뼈를 고아 만든 진득한 국물의 돈코츠 라멘을 반사적으로 떠올리지만, 인문학적 관점에서 볼 때 후쿠오카는 자타가 공인하는 '우동의 발상지'라는 거대한 역사적 타이틀을 쥐고 있는 도시다. 13세기 가마쿠라 시대, 송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엔니 벤엔(円爾弁円) 스님이 제분 기술을 들여와 처음으로 밀가루를 반죽해 우동과 소바를 빚어낸 곳이 바로 하카타의 조텐지(承天寺)다. 사누키 우동이 면발의 질긴 탄력과 쫄깃함에 집착하며 남성적인 강인함을 뽐낸다면, 하카타 우동은 입술을 스치자마자 부드럽게 끊어지는 유약한 식감 속에 무한한 다정함을 품고 있다.


이곳 다이치노 우동의 시그니처 메뉴인 '고보텐(우엉튀김) 우동'은 둥근 그릇 전체를 거대하게 덮을 만큼 압도적인 비주얼을 자랑한다. 바삭하게 튀겨진 우엉 튀김이 달큰하고 깊은 가쓰오부시 육수에 천천히 스며들며 내는 그 농밀한 고소함은, 수백 년 전 낯선 이국땅에서 밀가루를 반죽하며 고단한 백성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려 했던 구도자의 땀방울마저 떠올리게 한다. 이가 약한 노인도, 아직 씹는 것이 서툰 어린아이도 거부감 없이 훌루룩 넘길 수 있는 다정한 면발. 음식이란 이토록 세대를 뛰어넘어 모두를 포용하는 가장 관대한 언어임을 뜨거운 국물을 삼키며 깨닫는다.

마린월드.jpg 마린월드의 돌고래&물개쇼

뱃속을 따뜻하게 데운 뒤, 렌터카는 북쪽 해안선을 따라 매끄럽게 달렸다. 우리의 목적지는 '마린월드 우미노나카미치'. 이곳은 도심 한가운데 있는 단순한 상업용 수족관을 넘어, '규슈의 바다'라는 장대한 자연의 서사를 통째로 떼어다 놓은 해양 생태의 축소판이다. 특히 한반도와 규슈 사이를 험난하게 흐르는 겐카이탄(현계탄)의 거친 파도와 새하얀 포말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대형 수조 앞에서는 묘한 경건함마저 느껴졌다. 역사적으로 현계탄은 수많은 문화적 교류와 군사적 충돌, 외교사절의 눈물과 희망이 아슬아슬하게 교차하던 국경의 바다였다. 그 척박하고 거칠기 짝이 없는 역사의 물살 속에서도, 물고기들은 유려하게 헤엄치며 각자의 우주를 유영하고 있었다. 거대한 수조를 가르며 돌고래가 허공으로 힘차게 솟구쳐 오를 때, 아이의 작은 입에서는 원초적인 경탄이 터져 나왔다. 아이의 맑은 눈동자에 비친 푸른 물결을 가만히 바라보며, 여행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가장 순수한 기쁨이란 바로 저런 무해하고 직관적인 감탄 속에 존재함을 새삼스레 확인한다.



2. 에도 시대의 시간을 박제한 물의 도시, 히타(日田)


첫날 밤의 지친 몸을 의탁한 곳은 '규슈의 작은 교토'라 불리는 내륙의 소도시, 히타(Hita)였다. 미쿠마 강이 도시의 혈관처럼 유유히 흐르는 이 고즈넉한 물의 도시는, 에도 시대 막부의 직할지인 '텐료(天領)'로서 독자적인 번영을 누렸던 특별한 공간이다. 에도 막부는 이곳의 풍부한 삼림 자원과 수운(水運)의 이점을 철저히 통제하기 위해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고, 그로 인해 막대한 자본과 상업이 집중되며 특유의 세련되고 융성한 상인 문화가 꽃피웠다. 마메다마치의 낡고 고풍스러운 상점가 가옥들 사이사이에는, 그 옛날 봇짐을 풀며 호쾌하게 웃었을 상인들의 숨결이 화석처럼 켜켜이 묻어있다.

미쿠마강.jpg 키잔테이 호텔에서 바라 본 미쿠마강

우리가 묵은 '키잔테이 호텔(Kizantei Hotel)'은 바로 그 역사의 젖줄인 미쿠마 강변에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객실의 다다미방 미닫이창을 열면, 수백 년 전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강물이 차가운 달빛을 받아 은빛 비늘처럼 반짝였다. 서늘한 강바람을 뺨에 맞으며 옥상 노천탕의 뜨거운 온천수에 몸을 뉘었을 때의 그 짜릿하고 관능적인 감각. 차가움과 뜨거움, 과거의 번영과 현재의 고요함이라는 경계를 유영하다 보면, 몸에 쌓인 긴장과 피로는 물론이고 일상의 틈바구니에 끈적하게 엉겨 붙어 있던 삶의 찌꺼기들마저 강물을 따라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소후렌 총본점.jpg 소후렌 총본점의 야키소바

이 유서 깊은 고장의 문화를 입체적으로 소화하기 위해 선택한 저녁 만찬은 히타 야키소바의 원조라 불리는 '소후렌(想夫恋)' 총본점이었다. 이곳의 야키소바는 일반적인 철판 볶음면처럼 재료를 대충 버무려내는 얄팍한 타협을 단호히 거부한다. 뜨거운 철판 위에 면을 꾹꾹 눌러 '굽듯이' 익혀내는 파격적인 조리 방식. 덕분에 겉면은 혀가 베일 듯 날카롭고 바삭하게 누룽지처럼 굳어지지만, 그 안에는 면발의 쫄깃한 심지가 기적처럼 살아 숨 쉰다. 불판 위에서 뜨겁게 숨을 죽인 숙주나물의 아삭한 리듬감과, 오랜 세월 숙성된 특제 소스의 묵직한 변주가 혀끝에서 폭발하듯 춤을 춘다. 한 그릇의 투박한 요리 앞에서도 절대 타협하지 않는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 '모노즈쿠리(物作り)'의 숭고한 철학이 이 까만 철판 위에서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시원하게 들이킨 생맥주 한 모금에 깃든 쌉싸름한 쾌감은, 과거 텐료 시대를 주름잡던 거상들이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며 나누었을 왁자지껄한 밤의 공기와 맞닿아 우리를 기분 좋게 취하게 만들었다.



3. 야생의 숨결과 완벽한 미식의 교차로, 벳부(別府)


이튿날 아침, 미쿠마 강변에 피어오른 몽환적인 물안개를 뒤로하고 우리는 온천 용출량 일본 1위를 자랑하는 벳부 방향으로 굽이치는 산길을 올랐다. 우리의 목적지는 인공적인 도시의 경계를 완벽하게 벗어나 대자연의 거친 호흡을 느낄 수 있는 '규슈 아프리카 사파리'. 이곳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 관찰자와 피관찰자의 권력 구도를 철저히 전복시키는 철학적인 공간이다. 철창에 갇힌 것은 드넓은 초원을 거니는 야생동물이 아니라, 강철과 유리로 단단히 덮인 자동차라는 이름의 '우리' 안에 스스로를 가둔 인간이다.

아프리카사파리.jpg 대자연의 거친 호흡을 느낄 수 있었던, 아프리카사파리

렌터카를 몰고 흙먼지가 흩날리는 광활한 야생의 구역으로 들어서는 순간, 일상에서 견고하게 쌓아 올렸던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얄팍한 오만함은 유쾌하게 무너져 내린다. 차창 바로 눈앞에서 묵직한 발걸음을 옮기며 생고기를 뜯는 사자의 형형한 눈빛, 먹이를 구걸하기 위해 창문 틈으로 긴 혀를 쑥 들이미는 기린의 기괴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자태. 문명의 안락함에 철저히 길들여진 어른들에게도 충격적인 이 날것의 생명력 앞에서, 아이는 두려움과 환희가 뒤섞인 복잡다단한 감정의 파도를 배웠을 것이다. 거대한 야생이라는 압도적인 대서사시 앞에 우리 인간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한낱 미약한 방문객일 뿐임을, 그렇게 동물의 거친 숨결을 한 뼘 거리에서 느끼며 겸손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체득한다.


생경한 야생의 숨결을 가슴 벅차게 품고 다시 문명의 세계로 돌아와 찾아간 곳은, 미슐랭 가이드 빕구르망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린 돈카츠 전문점 '돈카츠 야마모토'였다. 돼지고기의 로스(등심) 부위가 가진 미식적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이 집의 돈카츠는 이른바 '겉바속촉'이라는 진부한 수식어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다. 황금빛으로 튀겨진 튀김옷은 크리스피하게 부서지지만, 그 안의 연한 속살은 잇몸만으로도 부드럽게 씹힐 만큼 자애롭고 연하다. 지방과 살코기가 완벽한 황금비율로 층을 이룬 고기 한 점을 씹을 때 입안 가득 터져 나오는 육즙의 풍미는, 마치 늙은 대장장이가 수만 번의 메질과 담금질로 벼려낸 명검의 예리함을 맛보는 듯했다. 완벽하게 통제된 불과 기름의 예술, 그 고결한 한 끼의 식사는 낯선 길 위를 떠도는 여행자의 메마른 영혼을 얼마나 윤택하게 어루만져 주는가.



4. 텐진의 화려한 네온사인, 그리고 실패라는 이름의 교훈


자연의 웅장한 품을 떠난 렌터카는 어느새 다시 규슈 최대의 번화가, 후쿠오카의 심장 텐진(天神)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정들었던 렌터카를 무사히 반납하고 '호텔 몬토레 라스루 후쿠오카'에 짐을 풀며 다시 온전한 도시 여행자의 신분으로 돌아왔다. 일본 비즈니스호텔 특유의 턱없이 협소한 방의 크기는, 모든 것을 압축하고 생략하는 그들만의 지독한 실용주의적 사고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비록 바닥에 캐리어 하나를 시원하게 펼치기조차 버거운 갑갑한 넓이였지만, 공간의 한계를 덮어버리는 앤틱한 유럽풍 인테리어와 포근한 침구는 나름의 안락한 위안을 제공했다. 창밖으로는 텐진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자본주의 도시의 잠들지 않는 욕망을 대변하듯 현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나카스 강변을 수놓은 화려한 인공의 불빛들은 전날 밤 고요히 달빛을 품었던 히타의 미쿠마 강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뜨겁고 세속적인 낭만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여행의 묘미는 종종 '예측 불가능한 실패와 변수'에서 기인한다. 연말의 들뜬 공기 속에서 화려하고 맛있는 저녁을 기대하며 밖으로 나섰지만, 이름난 유명 식당들은 이미 1시간 이상의 혹독한 대기 줄로 견고한 진입 장벽을 치고 있었다. 허기와 피로에 지쳐 타협하듯 들어간 곳은 스마트폰 검색으로 급하게 찾은 '단보 라멘(Danbo)'. 하지만 기대했던 맛집 탐방의 결과는 참담한 불협화음이었다. 장인의 혼이 담긴 라멘 한 그릇을 기대했던 식탁에는 이자카야의 어수선한 소음과 평범하기 그지없는 국물이 우리를 비웃듯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 조용히 식사를 음미하기에는 너무나도 소란스럽고 탁한 공기 속에서, '유명세'와 '온라인 리뷰'라는 얄팍한 허상에 쫓겨 급하게 내린 선택의 대가를 우리는 톡톡히 치러야 했다.


하지만 이 쓰라린 실패조차 여행이 우리 인생에 던지는 귀중한 은유이자 교훈의 일부다. 완벽하게 통제되고 계획된 시간표란 애초에 여행자의 오만한 환상에 불과하며, 때로는 낯선 골목길 편의점에서 무심하게 고른 차가운 도시락 하나가 번잡하고 불친절한 맛집의 산해진미보다 영혼에 더 큰 위로를 줄 수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말이다. 만약 누군가 이 글을 읽고 후쿠오카의 거리를 걷는다면, 그럴싸한 간판과 후기에 속지 말고 차라리 묵묵히 기다림의 미학을 실천하여 '멘야 카네토라'의 묵직하고 웅장한 츠케멘을 맛보시라 권하고 싶다. 실패를 통해 얻어낸, 상처 입은 도슨트의 진심 어린 조언이다.



여행이 남긴 영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규슈의 대지와 바다, 그리고 빌딩 숲을 종횡무진 넘나든 3박 4일의 렌터카 여정은 짧지만 강렬한 한 편의 가족 성장 소설과도 같았다. 후쿠오카 공항의 낯선 공기를 시작으로, 우동 한 그릇에 담긴 수백 년의 짭조름한 역사, 히타의 에도 시대 골목길에 멈춰 선 시간, 벳부의 맹렬한 야생의 생명력을 거쳐 다시 텐진의 인공적인 불빛으로 돌아온 완벽한 원형(圓形)의 서사. 그 굽이치는 길 위에서 우리는 때로는 경이로운 풍경에 소리 내어 감탄했고, 때로는 뜻밖의 난관과 실패에 실망했으며, 또다시 맛있는 음식에 기대어 서로의 지친 어깨를 위로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마음 한구석에 품었던 무거운 질문, '아이를 위한 즐거움'과 '어른을 위한 휴식'은 결국 분리된 평행선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아이가 수족관의 돌고래와 사파리의 사자를 보며 경이로움에 눈을 반짝일 때, 어른은 그 맑고 티 없는 동공에서 세상 가장 순수한 기쁨의 반사광을 얻었다. 반대로 어른이 역사 깊은 온천의 따뜻한 물결 속에서 잃어버렸던 자아의 여유를 되찾을 때, 아이는 한결 부드럽고 편안해진 부모의 얼굴을 보며 평온한 미소를 지었다. 여행이란 결국 낯선 공간이 주는 긴장감을 빌려, 일상의 무딘 관성 속에 파묻혀 있던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깊이 의지하고 사랑하고 있는지를 재확인하는 정교하고도 아름다운 의식이 아닐까.


규슈의 굽이치는 도로를 달리며 창밖으로 하염없이 흘려보냈던 수많은 풍경들은 이제 허공으로 휘발되지 않고, 우리 가족의 기억이라는 견고한 서랍 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잉크로 차곡차곡 기록되었다. 다시 치열하고 반복되는 일상의 궤도로 돌아온 지금, 가끔은 소후렌의 바삭하게 타들어 가던 야키소바 냄새가, 때로는 미쿠마 강변의 서늘하고 맑은 밤공기가 불현듯 코끝을 스치고 지나갈 것이다. 그 찰나의 사소하지만 찬란한 기억의 조각들이, 훗날 우리가 또다시 낡은 캐리어를 꺼내어 기꺼이 먼지를 털고 미지의 길 위로 나서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장소에 깃든 숨은 이야기를 읽어내고, 평범한 여정 속에서 삶의 묵직한 서사를 발견해 내는 트래블 도슨트의 발걸음은, 그렇게 길 위에서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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