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여행]
동양의 라스베이거스.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으며 동서양의 문화가 묘하게 교차하는 기착지. 마카오를 수식하는 말은 화려하고 다채롭다. 코타이 스트립(Cotai Strip)의 밤은 낮보다 밝고, 거대한 메가 리조트들은 각기 다른 세계의 랜드마크를 축소하고 복제하여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그중에서도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통째로 옮겨놓은 듯한 '베네시안 마카오(The Venetian Macao)'는 단순한 숙박 시설을 넘어 그 자체로 거대한 환상의 세계다.
운하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곤돌라, 그리고 영원히 지지 않는 인공 하늘 아래를 걷다 보면 문득 한 가지 인문학적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는 이 완벽하게 통제된 가짜의 세계 속에서, 어떤 '진짜'를 찾아 헤매는가?" 화려한 조명과 슬롯머신이 쏟아내는 기계음 속에서, 인간의 가장 본초적이고 원초적인 행위인 '식사'야말로 환상 속에서 현실의 감각을 일깨우는 유일한 닻이 되어준다. 나는 이 거대한 미로 속에서 헛헛한 배를 채우고 영혼을 위로해 줄 진짜의 맛을 찾기로 했다. 세계적인 미식 가이드 미슐랭 가이드에서 '빕 구르망(Bib Gourmand)'을 수상하며 그 가치를 증명한 곳, 중국 북방 요리의 정수를 보여주는 '북방관(North, 北方館)'으로 향하는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베네시안 호텔은 친절한 안내자이자 거대한 미궁이다. 수천 개의 객실과 끝없이 이어지는 카지노, 럭셔리 상점들은 끊임없이 사람들의 방향 감각을 상실하게 만든다. 구글 지도조차 무용지물이 되는 이 거대한 실내 공간에서 북방관을 찾아가는 길은,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아 나서는 구도자의 순례길과도 같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거대한 혼천의가 놓인 로비(Great Hall)에서 출발하여, 카지노 구역으로 빠져들지 않기 위해 경계를 타듯 서쪽 로비(West Lobby)를 향해 걷는다.
화려한 자본의 유혹을 물리치고 벽면을 따라 묵묵히 걷다 보면, 익숙한 초록색 인어 로고의 스타벅스가 이정표처럼 등장한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안쪽으로, '과연 이 길이 맞나' 싶은 깊은 의구심이 들 때쯤 상점 번호 1015호라는 작은 숫자와 함께 강렬한 붉은색과 황금색이 교차하는 문턱이 나타난다. 아이를 동반한 여행자라면 카지노를 가로지를 수 없어 쇼핑몰 라인을 따라 크게 빙 돌아가야 하는 수고로움이 따르지만, 이조차도 진정한 미식을 영접하기 위해 기꺼이 치러야 할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느껴진다.
문을 열고 들어선 북방관의 내부는 밖의 세계와는 완벽히 단절된 또 다른 시공간이다. 베이징의 전통 가옥 구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인테리어는 붉은색의 관능과 황금색의 풍요로 가득 채워져 있다. 천장을 수놓은 수많은 등불은 마치 고대 중국 황실의 연회장에 초대받은 듯한 웅장함을 선사한다. 밖의 카지노가 뿜어내는 인공적이고 차가운 조명과는 결이 다른, 따뜻하고 생동감 넘치는 빛이다. 식당 한가운데 자리 잡은 오픈 키친에서는 셰프들이 리드미컬한 움직임으로 밀가루 반죽을 치대고 면을 뽑아낸다. 이 역동적인 수타 퍼포먼스는 단순한 시각적 볼거리를 넘어,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 온 대륙의 노동과 땀방울이 예술로 승화되는 과정을 현장에서 목도하는 것이다.
사실 이곳을 찾기 전, 한국에서 예약 전쟁에 참패했을 때만 해도 내심 짙은 아쉬움과 패배감이 남았었다. 전 세계 미식가들과 여행객들이 모여드는 곳이기에 예약 없이는 발을 들이기조차 어렵다는 악명 높은 소문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행은 늘 계획된 궤도를 이탈할 때 더욱 찬란한 법이다. 오후 5시. 저녁 식사라기엔 다소 이른, 이른바 '골든 아워(Golden Hour)'를 공략한 워크인(Walk-in) 시도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텅 빈 테이블과 여유로운 공기 속에서 원하는 자리에 앉는 행운을 누린 것이다. 불과 한 시간 뒤인 6시 무렵, 식당을 나설 때 입구에 길게 늘어선 대기 줄을 보며 나는 시간이라는 자원을 현명하게 통제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여행의 묘미를 만끽했다.
자리에 앉아 북방 요리의 철학이 담긴 메뉴들을 주문했다. 광활한 대륙의 북쪽, 척박한 환경과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야 했던 북방 사람들에게 음식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자 하루를 위로하는 따뜻한 포옹이었다. 그 치열한 삶의 흔적이 북방관의 접시 위에서 가장 화려한 형태로 만개한다.
가장 먼저 식탁에 오른 것은 이곳의 시그니처, '북경식 가지튀김(Crispy Eggplant)'이다. 한국인에게 가지는 특유의 물컹한 식감 탓에 종종 외면받는 식재료지만, 북방관의 가지튀김은 그 오랜 편견을 단숨에 산산조각 낸다. 얇게 저민 가지 겉면에 설탕 코팅을 입혀 튀겨낸 이 요리는,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경쾌한 파열음과 함께 마법 같은 질감을 선사한다. 겉은 정교한 유리 공예품처럼 '파삭'하게 부서지고, 속은 크림처럼 부드럽게 혀끝에서 녹아내린다. 달콤함과 짭조름한 감칠맛이 폭발하는 캐러멜 라이징 소스는 단순하고 소박한 채소를 가장 완벽한 형태의 미식으로 끌어올린다. 겉과 속이 완벽하게 대비되는 이 입체적인 식감은,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으면서도 부드러운 내면을 간직해 온 북방 사람들의 기질을 고스란히 닮아있다.
이어 등장한 요리는 '사천식 탄탄면(Dan Dan Noodles)'이다. 본래 탄탄면은 쓰촨성(사천성) 지역에서 가난한 짐꾼들이 긴 장대(탄탄) 양끝에 국수통과 화로를 매달고 다니며 팔던 길거리 음식에서 유래했다. 부두 노동자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그 투박한 국수가, 화려한 마카오의 5성급 호텔에서 오픈 키친의 셰프가 직접 뽑아낸 예술적인 수타면으로 재탄생했다. 국물이 자작하게 깔린 비빔 형태의 탄탄면은, 기계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수타면 특유의 불규칙하고 역동적인 쫄깃함을 자랑한다. 묵직하고 고소한 땅콩 소스가 입안을 포근하게 감쌀 때쯤, 고추기름(라유)의 알싸하고 강렬한 매콤함이 날카롭게 치고 올라온다.
마지막을 장식한 '꿔바로우(Dongbei Style Sweet and Sour Pork)'는 중국 동북 지방 요리의 묵직한 정수를 보여준다.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을 이겨내기 위해 고열량의 식사와 보존성이 필요했던 동북 사람들은, 두툼한 돼지고기에 찹쌀(타피오카) 전분을 입혀 바삭하게 튀겨내고 강한 산미의 소스를 더했다. 북방관의 꿔바로우는 새콤달콤한 소스가 흠뻑 부어져 나옴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한 조각을 다 베어 물 때까지 결코 눅눅해지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한국의 중식당에서 맛보던 것보다 혀를 찌르는 산미가 조금 더 강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고기의 기름진 맛을 완벽하게 통제하며 젓가락을 멈출 수 없게 만든다.
세 접시의 요리가 완전히 비워졌을 때, 우리 가족은 낯선 여행지에서 느꼈던 묘한 긴장감과 피로가 온전한 포만감과 깊은 행복으로 치환되었음을 깨달았다. 마카오의 베네시안 호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가짜 하늘 아래서,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중국 북방의 광활하고 거친 대륙의 숨결을 그 어느 때보다 깊게 들이마셨다.
미슐랭 빕 구르망이라는 화려한 미식계의 타이틀이나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가성비의 논리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북방관에서의 식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짧고 강렬한 인문학 여행이었다. 음식은 결국 그 땅을 딛고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와 기후, 그리고 생존을 위한 지혜가 겹겹이 농축된 가장 위대한 문화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여행이란, 일상이라는 안전하고 익숙한 궤도를 이탈하여 낯선 미로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는 용기인지도 모른다. 베네시안의 복잡하고 화려한 카지노를 가로질러, 예약을 하지 못한 불안감을 안고 숨바꼭질하듯 찾아간 구석진 식당에서 맛본 완벽한 한 끼. 아이의 환한 웃음과 만족스러운 가족들의 표정 속에서, 나는 여행을 기획한 도슨트로서 이 여정이 이미 성공적인 궤도에 올랐음을 직감했다.
장소에 깃든 거창한 서사를 읽어내는 일도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겠지만, 여행의 진정한 본질은 결국 낯선 곳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마주 앉아 밥을 나누며 느끼는 따뜻한 온기, 그 자체일 테니까. 마카오를 찾는다면, 화려한 카지노의 베팅 테이블 대신 북방관의 붉은 문을 조용히 열어보길 권한다. 그곳에는 인공의 도시가 줄 수 없는 진짜의 맛, 혀끝으로 읽어 내리는 대륙의 오랜 서사가 당신의 방문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 여행의 허기를 가장 찬란하게 채워줄, 잊지 못할 붉은 방으로의 초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