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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금미 Aug 06. 2020

내게 허락된 유일한 바다, 취향

나다운 것을 묻거든 고개를 들어 취향을 보라

고향이 바닷가 근처라고 하면 대부분 내가 수영을 잘할 거라고 생각한다. "따로 수영 배울 필요 없었겠네."라는 말을 들으면 한껏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나 수영 못 하는데?"라고 답한다. 그러면 상대는 더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바닷가 근처에 살면서 수영도 못 하냐고. 그럴 때면 다급하게 튜브와 구명조끼만 있으면 수영 못 해도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고 변명을 시도한다. 


글쓰기, 말하기, 춤 추기와 같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잘하고 싶은 욕구가 솟아오르는 게 있는가 하면 노래 부르기, 화장하기처럼 꾸준히 못하는 상태에 머물러도 괜찮은 게 있다. 내게는 수영도 그중 하나다. 바닷가 근처에 살고 물놀이를 좋아하지만, 수영은 배우고 싶지 않은 이상한 마음을 달고 살던 중 <아무튼, 여름>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 


그러나 나는 올해도 여름의 7할 만을 즐길 것이고, 또 한 번 안타까워할 것이고,
그럼에도 수영을 배우지 않을 것이다. 대신 물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편법을
독학하고, 각종 물놀이 도구를 사 모으며, 물속에서 머무는 시간을 미세하게
늘려갈 것이다. 

-p.54 


물에 있는 걸 좋아해도 헤엄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나와 같이 여름을 좋아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물은 좋아하지만, 수영은 배우기 싫다는 것까지 같다니. 좋고 싫은 게 같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을 이렇게까지 반가워할 수가 있구나, 느낀 독서였다. 오죽하면 저번 글에도 언급했으면서 또 같은 책 이야기를 하고 있겠는가. 


요즘 매일 청계천을 걷는다. 물과 걷기를 좋아하는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장소다. 한 달 전엔 걷는 게 좋았는데, 이제는 다리 밑에 앉아서 책을 읽는 시간이 더 좋다. 책을 읽다가 문득 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이렇게 물을 좋아하면서 그 안에서 헤엄치지 못하는 내 상태가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피식 웃음이 난다. 물은 좋아하지만, 수영은 싫은 사람. 이게 곧 나인 것 같아서. 


이런 나에게도 수심이 얼마나 깊든 앞뒤 안 가리고 맘껏 뛰어들 수 있는 바다가 있다. 그 바다라면 끝에서 끝까지 쉬지 않고 헤엄칠 수 있다. 그 바다는 바로 취향의 바다이다. 


나는 원래 호불호가 불확실하고 뭐든 다 좋은 사람이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걸려 무엇이든 다 괜찮다고 말하는 게 습관이 된 탓이었다. 나에게 싫다고 말할 권리는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뭐든 다 만족하는 사람으로 자라던 중 집에서 밥을 먹다가 엄마가 건넨 말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새우 많이 먹어. 너 새우 좋아하잖아."


그 말을 듣기 전까지 나는 내가 새우를 좋아하는 줄도 몰랐다.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대로 먹기만 했다고 생각했는데, 무의식적으로 새우를 더 많이 찾았나 보다. 엄마의 말에 따라 입에 넣은 새우는 너무나 맛있었다. 그날 이후로 음식에서 새우를 발견하면 나보다 더 먼저 내 취향을 발견해 준 엄마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엄마의 말 한마디 덕분에  나는 자신 있게 새우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십 년도 더 전에 겪은 일이지만, 아직도 그때 그 뭉클함이 생생하다. 엄마의 한 마디가 내게 그렇게까지 깊은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건 그 시절 나는 아무도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관심 없는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외로운 사람이라고 믿고 살았다. 그랬던 내게 엄마가 친히 알려준 것이다. 네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신경 쓰는 사람이 있다고. 


새우 하나에 감동받은 아이는 자라서 고등학교를 거쳐 험난한 도시에 홀로 사는 어른이가 되었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기숙학교였는데, 삼백 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평일 내내 눈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똑같이 생활해야 했다. 그런 곳에서 '취향'은 사치였다. 모르던 취향을 꺼내 주긴커녕 있는 취향도 억압당하는 기분이었다. 내게 허락된 유일한 식사인 급식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이제 내게 나도 몰랐던 취향을 발견해주는 사람은 없겠구나.  


아니었다. 여전히 내 곁엔 내 취향을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우울의 파도에서 허우적대던 시기에 Lauv의 'Modern Loneliness'를 듣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이 노래가 내게 뜻깊은 의미를 지닌다는 걸 말하고 싶은데 평소처럼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면 '그냥 듣기 좋은 노래' 정도로 받아들여질까 봐 일부러 소수의 친한 친구 리스트를 만들어 노래의 특별함을 알렸다. 스토리를 올리자 친한 친구로부터 디엠이 왔다. 


"가사는 외로운데 down down 할 때 이상하게 희망적이라 좋아. 추락하는 것에서 아름다움이 느껴져."


https://youtu.be/Kb5n6q3TyTg


친구가 말한 곳은 이 부분이었다. 


Modern loneliness

We love to get high, but we don't know how to come down

down, down, down, down


현대의 외로움

취하는 건 좋지만, 어떻게 깨어나야 할지 모르겠어 


노래는 마지막 'down'이 반복되는 부분에서 갑자기 여러 명이 합창한다. 나는 그 부분이 영화 <매그놀리아>에서 모두가 'Wise up'을 합창하는 부분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Wise up'에서 느꼈던, 'Modern loneliness'에서 느꼈던 왠지 모를 뭉클함이 친구의 메시지로 설명되었다. 메시지를 받고 나는 신나서 답장했다. 


"오 맞아. 나 슬픈데 희망적인 거 엄청 좋아해! 내가 왜 이렇게 이 노래를 좋아하는지 이유를 또 알게 되었다."


그러자 취향 소나무라며 넌 참 한결같다는 답장이 돌아왔다. 슬픈데 희망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그 친구는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당시 내가 느꼈던 전율을 모를 것이다. 그 말 한마디가 지금도 나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어린 시절 내내 나 자신에게 '외롭고 불행한 아이'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기분 좋은 순간들이야 많았지만, 그건 잠깐일 뿐 내 인생이 행복해질 수는 없다고 믿었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책과 영화를 만나고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기 시작한 때였다. 


내가 접했던 작품들에는 마냥 행복하기만 한 주인공이 없었다. 모두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수준의 고통을 지녔고 누구는 극복했지만, 누구는 이겨내지 못하고 끝을 맞이했다. 예술에서 고통은 빠질 수 없는 소재이며, 지금 내 고통도 예술로 승화될 만큼의 가치를 지닐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안겨준 작품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나도 이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가 생기자 무미건조했던 삶이 풍요로워졌다. 


행복을 찾은 지점이 고통이었으니 이후에 형성된 취향도 모두 그런 방향이었다. 책, 영화, 음악 모두 좋아하지만, 어릴 때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나는 행복만 가득한 작품에 위화감을 느낀다. 그렇다고 밑도 끝도 없이 침울한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행복하면서 불행한 것, 불행하면서 행복한 것. 인물들의 상황은 냉혹해도 창작자의 시선은 따뜻한 것. 나는 이런 작품을 좋아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내게 취향만큼 재미있는 건 없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무언가를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사람의 정체성이 드러나다니.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한국 사회에 성장했으면서 열심히 자신만의 취향을 개발한 우리가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새우를 좋아하고 밝은 작품을 싫어한다. 물론 더 이상 좋아하지 않거나, 싫었는데 비로소 좋아하게 된 것들도 많다. 그건 취향의 수심이 얕아서가 아닌 나란 사람이 항상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전에 좋아했던 걸 다시 접하면 그 시절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순식간에 생각난다. 


많은 이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취향을 공유한다. 나는 할 줄 아는 게 글 말고는 없어서 여기저기에 글로써 취향을 드러낸다. 그게 내가 이 광활한 우주에 먼지 같은 내 존재를 새기는 방법이다. 


당신이 찾은 내 브런치는 내 끝없는 취향의 바다 일부다. 수영은커녕 뜨는 것도 겨우 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나는 이 바다에서 나올 생각이 없다. 심심하다면 당신도 내 취향의 바다에 발이라도 담가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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