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요트 위에서

엄마난중일기

by 김정은


바다 위로 유유히 지나가는 요트를 보면서 사람들은 생각해요. ‘와! 멋지다. 저거 한번 타보면 기분이 정말 날아가겠다.’고요. 저도 그랬어요. 요트를 보며 상상했지요. 영화에서처럼 잘생긴 남녀가 뜨거운 태양 아래 선탠을 즐기며 한껏 즐거워하는 그런 장면. 언젠가는 나도 그런 배를 타고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 아래서 하늘 위로 청아한 웃음소리를 날려 주리라 다짐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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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막상 배에 오르니 현실은 영화와는 한참 달라요. 해가 쨍쨍 내리쬐서 기미 생길까 봐 걱정이지, 파도는 출렁거려 속은 메슥거리지, 바람은 이리저리 불어 기껏 만져 놓은 머리카락이 산발입니다. 폭풍 올까 봐 날씨도 걱정이고 어디서 새는지도 모르게 발밑에는 물이 철벅거려 바가지로 퍼내기도 바빠요.


배에 타기 전 부풀어 오르던 설렘을 기억하면서 행복감을 찾아보려고 애를 쓰지만, 사실은 아까부터 본전 생각이 나서 마음이 쓰라린 중입니다. ‘여기까지 힘들여 오지 말고 차라리 여유롭게 차나 한 잔 즐기며 지나가는 요트나 감상하는 게 훨씬 더 나았을 걸’ 하는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드니까요.


인생 오십 고개를 넘어가는 기분이 꼭 그렇더군요. 남들 부러움을 사는 자리까지 헉헉거리고 올라와 정작 그 자리에 당도해놓고도 행복하지 못한 자신이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할 일이 없어서, 너무 여유로워서 생기는 증세라고 할까 봐 섣불리 고백하기도 어려웠지요. 이런 고민을 들으면 주변에서 두말없이 진단해주는 병명이 하나 있습니다. ‘너 그게 바로 갱년기 우울증이야.’ 개뿔! 참말 간단명료하기도 합니다. 굽이굽이 쌓인 응어리가 얼마인데 그걸 제대로 풀어내기도 전에 그렇게 한마디로 규정해버리다니요. 이거 정말 너무들 하는 거 아닙니까?




현모양처 전업주부로 살아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면서 강남댁으로 살았던 삼십 년 동안, 저 역시 좋든 싫든 그렇게 답답해진 아줌마들 모임에 수시로 초대되었습니다. 무면허 상담사 노릇도 많이 했어요. 엄마들은 이런 자리에서 남편이나 가족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쏟아냅니다. 모여서 이 얘기 저 얘기, 대화의 빈틈을 뚫고 맥락도 없이 자기만의 울화 보따리를 한껏 풀어놓습니다. 울음이든 웃음이든 나올 건 나와 줘야 속이 편해지니까요.


그렇게 들은 이야기가 하나둘 마음에 고여 터질 만큼 가득합니다. 저의 뱃속에서 네 이야기인지 내 이야기인지도 애매하게 곰삭아 정신을 어지럽히기도 합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라도 실컷 지르고 나면 속이라도 개운해질 것 같아요. 한 남자와 만나 서로 다른 꿈을 꾸며 엇박자로 춤추던 그 시절 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