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신혼여행지에서 생긴 일

엄마난중일기

by 김정은

#아내가 쓴 결혼실록 제 1장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던가요? 신혼 여행지에서 생긴 에피소드가 우리들 결혼생활의 전주곡이었다는 걸 그때야 어찌 알았겠어요. ‘성실하고 다정한 남편’, ‘따뜻하고 아름다운 보금자리’, ‘사랑과 웃음이 흐르는 행복한 결혼생활’ 같은 말들이 얼마나 애매모호한 관념의 성찬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눈에 콩깍지가 쓰여 각자 야무진 꿈을 품고 웨딩마치를 울렸답니다. 제주도의 호텔은 멋졌고 바다는 파랬고 하늘은 맑았고 우리는 행복한 신혼부부였지요.


그 날, 신랑은 모처럼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는지 호텔 로비에서 호기롭게 ‘낚싯배 투어’를 예약했습니다. 낚시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 그때는 미처 몰랐어요. 그냥 신부를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낸 줄로만 알았지요. 작은 통통배 하나를 전세 내어 바다로 낚시하러 갔는데 선장님의 과잉 친절이 문제였습니다. 일생일대 허니문을 더욱 멋지게 만들어주고 싶으셨는지 배를 타고 나온 김에 근처의 예쁜 섬들을 일일이 돌아봐주더라고요. 정말 예뻤지요. 멋졌지요. 환호했지요. 그래서 많이 웃었지요.


신부의 하이톤 웃음소리에 더욱 힘을 받았는지 선장아저씨는 기꺼이 섬 몇 개를 더 돌아주셨습니다. 구경할 때는 몰랐는데 낚시를 하기 위해 배를 멈추고 나자 제 머리가 뱅뱅 돌았어요. 속이 메슥거렸습니다. 이제 막 신나게 낚시 장비를 펴는 신랑의 모습이 멀어졌다 가까워지더니 또 몽롱해져요. ‘우웩’ 하고 토했습니다. 또 토했습니다. 조금 있다가 또 한 번. 끝이 없었죠. 먹은 것도 없는데 쉴 새 없이 울렁거렸고, 참을 만하다가도 또 토악질이 났습니다.


“어이구~ 밑밥까지 뿌려 주시는구먼. 고기가 잘 잡히겠는데?”


그렇게 떠드는 신랑을 그때 ‘정리해고’ 해버렸어야 했습니다. 콩깍지가 덜 벗겨진 저는 재치 있는 유머로 들었지만 말입니다. 기다려 봐도 울렁증은 가라앉질 않았어요. 선장님이 낚싯줄을 내 손에 쥐여주시며 직접 해보라고 권했습니다. 낚시 재미에 빠지면 하던 멀미도 멈춘다나요? 하지만 매달려 올라온 생선이 뱃전에 허연 배를 드러내고 퍼덕거리는 꼴을 보자마자 겨우 진정되어 가던 토악질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왝~ 왝왝에엑”

결국 보다 못한 선장님이 낚시 삼매경에 빠진 남편에게 한마디 건넸습니다.

“낭군님, 이제 그만 접으시죠. 이러다 색시 죽이겠습니다.”


그런 말은 선장님이 먼저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신랑이 먼저 해야죠. 그런데 그가 쩝쩝 아쉬운 소리까지 내면서 뭉그적뭉그적 낚싯줄을 걷어 올리며 하는 말.

“아이~ 아까워. 진짜 고기 잘 잡히는데……. 오늘 하루 렌트비 내고 아직 한 시간 밖에 안 지났는데…….”

입 한 번 잘못 놀리면 일생이 피곤해집니다. 전 아직도 가끔 신혼여행씩이나 가서 색시가 뱃속의 노란 물까지 게워내는데도 마지막까지 낚싯줄을 못 놓던 남편을 기억합니다. 아내의 치부책은 이 날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평상시에는 너그럽게 넘어가곤 하지만 가끔 빈정 상하는 날엔 숨겨두었던 발톱이 불쑥 올라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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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쓴 결혼실록 제 1장


신혼여행을 떠나 치부책 목록에 첫 줄을 쓴 건 아내만도 아닙니다. 공평하신 하느님은 신랑인 저에게도 결혼 생활을 예고하는 서곡을 틀어주었습니다. 잊지 못할 해프닝으로 경고음을 보내셨습니다.


제주도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장에서였습니다. 한창 성수기였는지, 우리 항공사는 탑승 게이트를 배정받지 못해서 비행기가 서 있는 자리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이동식 층계를 통해 탑승해야 했습니다. 승객들이 설치된 계단으로 우르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문 앞에서 안내원이 일일이 좌석번호를 확인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우리 둘은 층계 중간에 앞뒤로 꽉 막힌 채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갑자기 그녀에게 맡긴 비행기 티켓이 걱정되었습니다. 늘 어머니가 하던 일을 신부에게 맡겼을 뿐인데 여행 내내 뒷덜미 잡을 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비행기 타는 절차가 익숙지 않아서 오는 동안 몇 번이나 티켓을 꺼냈다가 도로 집어넣었으니 혹시 그동안 어디에 떨어뜨린 건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곧 꺼내 보여야 할 텐데 비행기 입구에서 뒤적거리다간 길게 줄을 선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 게 뻔했습니다. 아내에게 작은 소리로 채근했습니다.


“비행기 표는 잘 갖고 있어? 어딨어? 금방 꺼내야 하는데 잘 챙겨놓은 거지? 확인 좀 해봐.”

그녀는 갑자기 제 말에 당황하며 가방 속을 더듬다 한참 만에 겨우 티켓을 찾아냈습니다. 그러고는 자신 있게 제 눈앞에 비행기 표 두 장을 흔들면서 큰 소리로 퉁박을 주기까지 했습니다.

“아이참, 걱정도 팔자네. 여기 있다, 여기 있어.”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건네받으려던 제 손이 가서 닿기도 전에, 비행기 표 두 장이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제주도 아닙니까. 바람이 갑자기 거세게 불어 그녀의 손에서 티켓을 채갔던 겁니다.


“엄마야~~~”

신부의 앙칼진 비명을 들으며 저는 자동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층계마다 줄을 선 사람을 비집고 ‘죄송합니다’를 외치면서 계단을 뛰어 내려갔습니다. 사실 죄송할 일도 없었습니다. 가뜩이나 천천히 줄어드는 줄 때문에 모두 지루해하던 참인데 구경거리 하나 나셨으니 말입니다. 바람은 약이라도 올리려는 듯 비행기 티켓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이리저리 끌고 다녔습니다. 사람들이 응원하는 가운데 혼자 비행장을 이리 뛰고 저리 뛰었습니다. 땀범벅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티켓을 거머쥐고 그녀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층계 위에서 구경꾼처럼 선선한 얼굴로 천연덕스럽게 저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머리가 몽롱해졌습니다. 앞으로 저런 여자와 일생을 살아내야 할 테니 말입니다.


비슷한 일을 수도 없이 겪었을 텐데 연애 시절엔 도통 그게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그건 오히려 그녀의 ‘너그러움’이라는 장점으로 분류되던 항목이었습니다. 그녀가 변한 게 아니라 제 착각이 문제였습니다. 더 큰 문제는 결혼식 이후에 제 눈이 금방 제자리를 찾아간 데 있습니다. 그녀의 풍성한 인심과 너그러움은 이제 대책 없음과 관리부족으로 자리가 바뀌어 꼼꼼한 저와 첨예한 갈등을 일으키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비행장에서 티켓을 주우러 다녔던 그 장면이 떠오릅니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뭐하겠습니까. 콩깍지가 문제였는데. 가끔씩 우리 둘은 아직도 신혼여행 에피소드를 하나씩 챙겨 들고 칼싸움을 합니다. “내가 말이야, 너 그때 다 알아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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