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난중일기
아무리 잘 골라 깨를 볶으려 해도 부부가 오래 살다보면 서로 제 눈을 탓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숨어 있던 단점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처음엔 장점으로 생각했던 것이 단점으로 변하기까지 하니까요. 요즘엔 그런 고비를 못 넘겨 그만둬버리는 경우도 많지만 그 후에 재혼한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그럽니다. 어차피 이렇게 노력해야 살아지는 거였으면 굳이 첫 번째 사람과 이혼할 일도 아니었다고.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이몽룡과 성춘향’도 결혼해서 오래도록 함께 살았으면 별수 없었을 거예요. 영화 ‘타이타닉’만 해도 그래요. 젊은 남녀가 우연히 만나서 며칠 짜릿하게 끌린 감정을 추억으로 아름답게 포장한 거잖아요. 그때 사고 없이 배에서 고이 내려 결혼까지 했다면 그들도 역시나 마찬가지였겠죠.
웬 심술이냐고요? 그만큼 결혼이 서로를 속박하는 올가미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어디 저만 그랬겠어요? 남편은 대놓고 하소연도 못 한 채 혼자 꾹꾹 참았을 겁니다. 그래서 어떨 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더래요.’라는 동화책의 마지막 구절을 이렇게 고치고 싶기도 합니다. ‘오래오래 살며 잠깐잠깐 행복했더래요’로.
우리 부부도 신혼 며칠 만에 그 ‘오래오래’의 환상에서 깨어났습니다. 겨우 꽁치 한 마리 때문에요. 결혼 전에 제가 꿈꿨던 아름다운 결혼생활이란 아버지가 온전히 밥벌이하는 가정에서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에 둘러앉아 모두 하하호호 하는 장면이었어요. 결혼하면 전업주부로만 살리라 작정했습니다. 맞벌이 부모 밑에서 자란 저는 엄마의 빈자리가 늘 그리웠거든요. 사랑하는 남자와 신나게 웨딩마치를 울릴 때만 해도 그 조항만은 서로 의기투합이 되었죠. 이제 맛있는 밥상 앞에서 깔깔거릴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난데없이 꽁치 한 마리 때문에 단꿈이 순식간에 깨져 버렸습니다.
남편이 좋아하는 꽁치 한 마리를 구워 식탁에 올렸던 날이었지요. 이 남자가 젓가락을 쑥 들더니 혼자서 통통한 등 쪽 살만 신나게 발라먹는 겁니다.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기가 막혀서 왜 반대쪽은 안 먹고 남겨두느냐고 하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이래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앙칼진 제 목소리가 식탁 등을 흔들었습니다.
“원래애? 아니, 여기 우리 둘밖에 없는데 그럼 이 나머지 쓴 쪽은 나 먹으라는 거야, 쓰레기통에 버리라는 거야? 엉!!!”
남편이 특별히 잘못한 건 없어요. 그냥 여태 하던 대로 좋아하는 부분만 맛나게 먹었을 뿐이죠. 그런데 갑자기 아내가 도끼눈을 뜨고 소리를 질러대서 황당하기도 했을 거예요. 저는 그 순간에 비로소 막연하게 행복할 줄로만 알았던 결혼생활의 단꿈에서 깨어나 버렸답니다. 결혼이라는 추상적인 단어의 의미가 꽁치 한 마리와 함께 실감 나게 다가왔거든요.
예전엔 부모님이 알아서 해주시는 바람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우리 삶의 ‘나머지 부분’을 처음으로 목격한 것이죠. 모양만 달라졌을 뿐 비슷한 갈등이 번번이 반복될 때마다 제 머릿속에는 그날의 꽁치 한 마리가 떠오릅니다.
그렇게 아웅다웅 싸워가면서 어느덧 중년의 뒤안길로 들어서니 때론 그런 추억마저 소중해집니다. 수시로 진저리를 치며 살았건만, 철모르는 두 사람이 자기를 낳아준 부모보다 더 긴 세월을 함께 이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혼자서 감동 먹을 때가 있습니다. 속상할 때마다 뒤집었으면 열두 번도 더 결딴이 났을 사연들이 부부마다 얼마나 많을까요?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굽이굽이 산 넘고 물 건너는 삶의 여정을 그렇게나 오래 견뎌왔다는 사실이요.
아마도 제가 관련 장관이라면 결혼 40년 이상 된 분들에게는 무조건 인내심 표창장이라도 드렸을 겁니다. 이왕 말 난 김에 오늘 저녁엔 꽁치 한 마리나 구워서 식탁에 올려봐야겠습니다. 표창장보다 실용적이기까지 하네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