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내 사랑 지니와 팔방미인 강박증

엄마난중일기

by 김정은

‘내 사랑 지니’를 아세요?


아신다면 당신은 아마도 꽤 나이 드신 분일 거예요. 1965년에 시작되었던 이 미국드라마는 우주비행사가 어느 행성에서 이상하게 생긴 호리병을 하나를 주우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 호리병 속에는 어여쁜 요술쟁이 지니가 살았습니다. 부를 때마다 분홍빛 연기와 함께 나타나서 어떤 문제든지 요술을 부려 척척 해결해준답니다. 날씬하고, 예쁘고, 말도 잘 듣지요. 심심할 때 부르면 나와서 같이 놀아주다가, 필요 없을 때는 호리병 안으로 쏙 들어가는 그녀를 뭇 남성들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제 남편은 막연히 그런 지니를 꿈꾸며 결혼했나 봐요. 하지만 저는 요술도 못 부리고 그녀처럼 예쁘지도 않을 뿐더러 필요 없을 때마다 호리병 속으로 사라지지도 못하는 걸요.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늙어가고, 유지 비용도 많이 들고, 잔소리까지 할 줄 아는 그냥 여자 사람이란 말입니다. 좋아한다고 해서 결혼했더니만 이 남자의 착각이 중증이었나 봅니다. 꿈에 그리던 지니가 아니라서 그이도 괴로웠겠지만 잘못 불려 나온 제 속상함은 또 어땠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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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꽃이 되어 특별하게 살아갈 줄만 알았는데 흔하디흔한 아줌마로 전락한 꼴이라니. 결혼한 아가씨가 제일 억울한 일은 모르는 사람에게 ‘아줌마’라고 함부로 불릴 때도 딱히 뭐라고 반박할 수가 없다는 것이에요. 그만큼 그 이름에 얹힌 이미지가 별로라는 얘기죠. 억척스럽고 무신경하고 남부끄러운 줄 모르는 모습으로 자기 가족만 챙기는 그런 여자가 연상되어 저도 모르게 불쾌해집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겁니다.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때나 남에게 ‘아줌마’라고 불릴 때의 그 참담한 심정을.


세월이 변하면서 그런 아줌마 이미지는 개선되는 게 아니라 점점 더 고약하게 진화되는 것 같아요. 사는 고생이 희미해지면서부터는 존재가치마저 의심받는 애매한 처지가 되어 갑니다. 게으르고 무식하고 뻔뻔하고 치사한 데다 놀면서 고객님 행세까지 하는 부류로 남에게 손가락질 받는 기분. 저만 느끼는 걸까요? 아무튼 그 모든 게 뒤섞여 머릿속에 떠오르면 공연히 마음이 오그라붙었습니다. 그럼에도 전업주부로만 살겠다고 결심해버린 저는 묵묵히 그 이름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달리 불릴 멋진 직함은 이미 개나 줘버렸으니까요.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아줌마 이미지를 변화시켜서 위상을 좀 높여보자고 마음먹기도 했죠. 헌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집에 있단 사실만으로 기쁘다는 건 없어본 사람들만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은 평생 가정주부로만 지낸 어머니가 키운 아들이고, 우리 애들은 날 때부터 제가 온전히 집에 있었는데 무슨 감동이 있겠어요? 차라리 엄마가 없을 때 해방감이나 느끼겠지요. 쩝.


이렇게 엄마의 존재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앞에서 저 혼자만 스스로를 감탄하는 우스꽝스러운 자화자찬 원맨쇼가 시작되었습니다. 날마다 “이건 나만 되는 겨~쓕쓕! 니들은 행복한 줄이나 알어~”라는 일인 시위가 집을 무대로 집요하게 펼쳐졌어요. 없는 존재감을 살려보려고 팔방미인 강박증까지 생겨났습니다. 요리도 폼 나게 뿅뿅, 집안 구석구석도 반짝반짝, 아이들 공부 코칭도 똘똘, 인간관계 동글동글, 가계관리 알뜰살뜰, 그리고 또 그리고……. 해도 해도 끝이 없더라고요. 더구나 온 세상이 시어머니라도 된 것처럼 결혼한 여자에게 웬 놈의 훈수를 끝도 없이 해대는지 원.


저는 그냥 존재 그 자체로 사랑받을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입니까. 게다가 가족들은 모두 자기 일이 너무나 바쁘고 피곤하대요.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처럼 세상이 볶아친다나요?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쉬고만 싶대요.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해 달랍니다. 주부의 역할이라는 게 옛날부터 워낙 그런 거 아니냐면서.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힘이 세다나 뭐라나? 결혼해서 ‘내 사랑 지니’가 되지 못했던 저는 어느덧 버스보다 빨리 뛰는 대한민국 아줌마가 되어갔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말입니다. 너~어~무 힘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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