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는 길 위의 여행, 길 위의 여행은 연애

사랑과 여행의 여덟 단계를 읽고

by 우지경

어느 여행에서든 기대한다는 것은 중요한 단계다.

곧 삶이 달라지고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원하는 것을

여행에 대해서도 똑같이 원한다.

비비안 스위프트, 『사랑과 여행의 여덟 단계』 (참 좋은 날, 2017)





『사랑과 여행의 여덟 단계』라는 책을 좋아한다. 여행 작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비비안 스위프트가 48세에 새 남편과 프랑스로 떠난 허니문에 대한 책인데, ‘연애는 길 위의 여행과 같으며, 길 위의 여행은 연애와 같다’는 여행 철학과 아름다운 삽화에 반해 여러 번 읽고, 보고, 어루만졌다.


무엇보다 비비안이 말하는 여행과 사랑의 8단계가 공감이 간다. ‘기대-열병-현실 확인-허니문 기-어려운 때가 닥쳐오다-안락지대-길의 끝-다시 제자리로’의 단계별로 펼쳐지는 그녀의 허니문 에세이를 읽으며 내 지난 여행의 우여곡절을 반추하고 추억을 소환했다.


비비안 부부의 여행기의 시작은 근사하다. 파리에서 점심 소풍을 즐기고, 공원에서 낮잠을 자고, 그린 아워에 카페에 앉아 풍경을 즐기고, 블루 아워엔 생루이 섬에서 그림자를 넘나들며 방랑하다 저녁 식사를 하러 떠난다.

그날 오후 그들은 시테 섬의 카페에 앉아 레드와인을 축배를 들며 이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지금까진 훌륭해."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어요."


다음날, 그들이 파리에서 바이외로 가는 여정은 엄청나게 짜증스러운 현실의 확인이었다.

매표원이 시간표도 보지 않고 기차가 없다고 했는데, 혹시나 하고 확인했더니 8분 후 출발하는 열차가 있어 역을 질주해서 탑승. 기차에서 내려 지베르니행 버스를 갈아탔더니 버스는 움직이는 사우나였고, 모네의 정원에 도착해 바퀴 달린 가방을 맡기려다 거절당해 여행 가방을 질질 끌고 관람에 나선다. 그나마 모네의 정원 관람 후 시간이 남아 카페에서 차 한 잔 하는 여유를 누렸는데 정거장으로 돌아오니 기분이 엉망이 된다. 시간표를 잘못 읽는 바람에 열차를 놓쳐버린 것. 완행 열차가 올 때까지 멍하니 기다리며 비비안은 남편에게 기차를 놓치지 않았더라면 카페에서 말도 안 되게 잘생긴 프랑스 소년을 보며 차를 마실 일은 절대 었었을 것이라 말한다. 그러자 제임스가 대꾸한다.

"좋아요. 새로운 규칙 하나. 잘못 탄 기차란 없다."

기억하시길, 제임스는 철학 학위 소지자다.


나 역시 여행에선 일생일대의 모험을 즐기리라 품었던 환상이 사소한 현실과 정면충돌하는 순간 깨졌으며, 그때부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여행이 시작된다는 걸 떠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행에 대한 기대를 버릴 수가 없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원하는 것을 여행에 대해서도 똑같이 원한다. 인생을 바꿀 만한 운명적인 만남. 거기에 환상적인 풍경까지 더하여∙∙∙∙∙∙”이라는 비비안의 말처럼 여행에서 가장 달콤한 단계는 기대다.


기대. 낯선 세상에 발을 발을 내딛는 순간 새로운 존재로 발을 내딛을 거라는 기대. 그게 내가 바라는 내 모습이든.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이든 간에 이 기대로 한껏 부푼 마음 느끼는 즐거움은 크고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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