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마작을 배울 때인가

오래 즐길 취미를 찾아서

by 우지경

"취미가 뭐예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참신하고 근사한 취미를 줄줄이 읊고 싶었던 적이 있다. 이를테면 스킨스쿠버(오픈 워터 자격증은 있지만, 취미는 아니다.)와 테니스(두 달 배우다 말았다.). 혹은 포슬린아트(석 달은 배웠나?)와 드로잉(클래스는 참 즐거웠는데, 혼자서는 안 그리게 된다.). 한마디로 나에게는 여행과 독서 말고는 쭉 이어온 취미가 없었다.


여행 작가가 되고 난 후, 내 취미 지분의 50%를 차지하던 여행조차 ‘일’이 되고 나니 내 취미는 독서가 전부였다. 그리하여 나는 누군가 취미를 물으면 독서라고 단답형으로 말하는 사람이 되고 말었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굳이 세분화하자면 아침나절의 커피 독서 이거나 한밤의 음주 독서이거나 여행 중 길 위의 독서 정도가 되겠다. 나도 독서 말고 오래 즐길 수 있는 취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하긴 했다. 그 생각조차 잊고 살던 2019년 여름 나의 다정한 술친구 D가 카톡을 보냈다.


“지경 씨랑 같이 배우고 싶은 게 있어요.”

그 메시지 아래엔 알 수 없는 링크가 있었다. 링크를 열자 이런 문구가 툭 튀어나왔다.


<화양연화>, <색계>, <밀회>에 나오는 은밀한 혹은 고급스러운 사교 클럽을 기억하시나요? 아름다운 패를 주고받으며 다정한 대화를 나누는 궁극의 소셜 게임, 한 번 배우면 빠져나올 수 없는 보드게임의 지존, 마작을 배우고 함께 놀아요.


마작을 같이 배우자는 얘기였다. 한국에 이런 데가 있었냐며 호들갑을 떨다가 문득 3주간 주말마다 과연 갈 수 있을까 망설여졌다. 그때 나의 술친구가 짧고 굵은 한 방을 날렸다.


“마작은 오래 즐길 수 있는 취미가 될 거예요.”

어차피 술 마실 건데, 마작을 치며 마시면 얼마나 더 좋겠냐고도 했다. D는 우리가 사랑하는 ‘술’을 미끼 삼아 오래오래 함께 놀자고 나 마음을 향해 낚싯대를 드리웠다. 술 취향이 맞는 친구와 마작이라니 나는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들처럼 아주 익숙한 동작으로 마작을 즐기는 나와 D의 모습을 떠올렸다. 상상 속 친구들과 집에 모여서 술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밤늦도록 마작을 즐기는 풍경은 꽤 근사했다. 매달 뿌염(뿌리 염색)으로 숨기는 나의 새치가 검은 머리를 앞지른다고 해도 제법 어울리는 취미가 될 것 같았다.


당장 등록해야지! 정동 마작 교실 신청 양식에 신청자 이름을 쓰다가 멈칫했다. 내가 지금 마작을 배울 때인가.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않나. 남편은 대학 병원에서 의사에게 딱 봐도 모양이 악성(암)이라는 말을 듣고 조직검사를 받았는데 돈을 내고 도박 아니, 마작을 배우러 가겠다고 해도 될까. 안 그래도 암을 얻고 직장을 잃었다고 낙담한 남편인데 지금은 남편을 챙겨줘야 할 때가 아닐까. 2년째 항암 치료 중인 엄마는 차도가 없는데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고. 엄마는 퇴원 후 다시 입원할 때까지 컨디션 회복하느라 힘든데 장녀인 나는 팔자 좋게 마작을 배우러 다녀도 되나.


하. 숨 좀 쉬고 살자. 나에게도 일과 보호자 생활 말고 취미 생활이 필요한 게 아닐까. 원고 마감과 병원의 나날들 말고 다른 삶의 단면이 필요해. 약 냄새 짙게 밴 병원 공기 말고 다른 세상 공기를 맡고 싶어. 내 마음이 배틀을 했다. 잘 봐, 언니 속마음 싸움이다. 하고. 아차차, 배틀에는 저지가 있어야지. 남편을 심판으로 섭외해 물었다.


“마작? 나도 같이 배울래!”

남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정 배우고 싶으면 가서 배우라고 등을 떠밀어 주거나, 다음에 배우라고 브레이크를 걸 줄 알았는데, 종양 제거 수술을 앞두고 같이 배우겠다고 나설 줄은 몰랐다. 얼마 전 자기가 암 진단을 받으면 보험료로 1억 6천만원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만큼이나 명랑하게 말했다. (암 투병 중인 장모님의 상황이 나빠질 때 마다 암 보험을 하나씩 들었더니 암 보험만 5개가 된 덕에 받을 수 있는 암 진단금이 불어난 것이다.) 남편도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마작을 볼 때마다 어떻게 하는 게임인지 궁금했다고. 서서 하는 것 중에 제일 재미있는 것이 골프이고 앉아서 하는 것 중에 제일 재미있는 것이 마작이라는데, 얼마나 재미있는지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고도 했다. 어쩌면 실패로 돌아간 ‘위드 스킨스쿠버 프로젝트(?)’ 이후 우리 부부의 취미가 마작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머릿속을 스쳤다.


잽싸게 정동 마작 교실 등록을 마쳤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때를 기다리다간 영영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지금 마작을 배워도 괜찮다고. 무슨 일이 생기면 한 주 빠지면 된다고. 어차피 마작은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될 때까지 즐길 취미니까. 바로 그날, 나는 마작이라는 세계에 손가락 하나를 살포시 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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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2년 후 나는 매주 마작을 즐기는 작사(마작 치는 사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