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취미와 사랑에 빠졌을 때
검색하고 또 검색한다. 색깔별로 비교해 본다. 그중 마음에 드는 색의 장비를 과감하게 산다. 이것은 분명 하트 시그널이다. 내가 새로운 취미와 사랑에 빠졌다는 신호. 연애를 시작하자마자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처럼 나는 새로운 취미를 시작할 때마다 운명의 취미를 만난 것처럼 기뻐했다. 환희의 순간 지름신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나는 지름신의 메시지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스노보드를 시작할 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시원하게 질렀고, 플라멩코를 배울 때도 블랙 & 레드의 화려한 치마부터 맞췄고, 테니스를 시작할 때도 설탕처럼 하얀 테니스화, 테니스복 장만에 열을 올렸다. (나는 화이트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좋아하는 화이코 패스다.) 기능은 따지지 않아도, 디자인과 색을 매의 눈으로 따져보고 샀다. 어떤 장비든 예쁜 것을 사야 입거나 쓰고 싶고, 자주 입고 써야 취미를 즐기게 된다는 게 나름의 이유였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보드복도 플라멩코 치마도 테니스화도 옷장과 신발장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다. 매번 그 시작은 창대했으니 끝은 미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작을 시작하며 정해진 식순처럼 검색, 비교, 지름을 성실하게 이행했다. 쿠팡에서 마작을 검색하고,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서 마작을 검색한 후 어떤 색 마작을 살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여기서 마작의 색 마작패 뒷면 색을 말한다. 마작에 따라서 숫자패(만수패, 통수패, 죽수패)의 앞면 색도 약간씩 달라지기도 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정도의 디테일은 생각지도 못했다. 4 각형으로 마장 성을 쌓고 게임을 진행할 뒷면의 색을 보게 되므로 마작의 ‘ㅁ'자를 알게 된 나에겐 오직 뒷면 색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초록은 어쩐지 마음에 안 들고, 카멜은 잘못 사면 칙칙할 것 같고, 노랑은 눈이 피곤할 것 같기도 하고 블랙은 안 질리고 괜찮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은은한 하늘색 마작을 발견했다. 크기도 미니 마작보다 큰 것이 그립감이 괜찮아 보였다. 메이드 인 차이나 마작이었다. 주문을 누르고 설레는 마음으로 배송을 기다렸다.
“혹시 마작 말고 벽돌을 넣어 보낸 거 아냐?”
묵직한 택배 박스를 받아 들고 혼잣말을 했다. 박스를 개봉해보니 벽돌이 아니라 내가 벽돌처럼 무거운 마작을 산 것이었다. 게다가 촌스러운 마작 케이스는 강아지가 물어뜯은 듯 뜯겨 있고, 그 안에는 묵직한 마작과 소인국에서 쓰는 듯한 주사위가 들어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으니까. 홍콩 여행에서 사 온 기화병가 쿠키 틴에 마작을 옮겨 담으니 그럴싸해 보였다. 주사위가 새끼 손가락 손톱만 하다는 것 말고는 다 괜찮아 보였다. 마작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음식과 술을 차려놓고 마작을 할 생각을 하니, 귓가에 차르륵 차르륵 마작패 섞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차르륵 차르륵 마작패 부딪히는 소리가 내 귓가에 올린 것은 그로부터 무려 1년 8개월 뒤 내 집에서 첫 마작 파티를 열었을 때였다. 그동안 나의 하늘색 마작은 내 서재에서 긴 잠을 잤다. 잠에서 깨어난 마작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다. 고무나무 식탁 위에서 바로 마작을 하려면 소리가 시끄러워서 담요를 깔아야 했는데 집에 담요가 한장도 없어 담요를 협찬 받았다. 담요를 깔고 신나게 마장 성을 쌓아보니 크기가 커서 자리를 많이 차지했으며, 작은 마작보다 커서 13개의 패를 한 번에 뒤집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내가 꿈꿔온 마작파티는 술과 음식과 함께하는 마작 자리 였기에 패 크기가 큰 만큼 자리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성북동 마작 선생님(어떻게 마작의 고수와 함께 마작을 치게 됐는지는 곧 썰을 풀 예정이다.) 댁에 가서 오래되고 아름다운 벨벳 박스에 담긴 마작패를 만져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선생님의 마작은 뒷면을 대나무로 만든 마작패였는데, 소리고 만지는 감촉도 달랐다. 귀와 손이 행복해지는 마작이랄까. 꼭 뒷면이 대나무 패는 아니어도 마작은 가볍고 손에 쏙 들어오며 들고 다니기 좋은 것이 유용하다는 것도. 그리고 마작에 점수 봉이 있어야 점수 계산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그날부터 나와 남편은 새로운 마작을 찾아 검색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숨을 참고 저 깊은 바다에서 전복 같은 마작을 건져 내겠다는 해녀의 심정으로 뒤지고 또 뒤졌다. 뿔소라 같은 마작은 이미 있으니 우리에겐 전복 같은 마작이 필요했다. 그렇게 찾아낸 것이 정크 매트 마작이다. 정크 매트 마작은 정사각형의 마작 매트와 마작패를 휴대용 가방에 담에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아이디어 상품이다. 식탁에 담요를 깔 필요도 없고, 점수봉을 놓을 칸도 있어서 점수 계산을 하기도 좋다. 마작패 색은 노란색인데 녹색 매트와 잘 어울린다. 정크 매트를 장만한 이후 마작 파티를 할 때마다 나는 매트를 들고 마작 친구 집에 간다. 이 매트 위에 성북동 마작 선생님의 대나무 마작패를 올렸을 때 내가 바라던 아름다운 마작 파티의 꿈을 이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뿔소라 같은 마작패에는 작별인사를 고하고 당근 마켓에 팔았다. 지금은 우리의 정크트에 잘 어울리는 주사위를 물색 중이다. 마작을 할 때 같은 주사위 2개를 던져 선도 정하고, 게임을 진행하기에 주사위는 꽤 중요한 장비다. 얼마전 성수동 포인트 오브 뷰에서 예쁜 주사위를 몇 개 찜 해두었는데 아무래도 그 중 하나를 빠른시일 내에 데려와야겠다.
나도 마작 한번 배워볼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작을 할 땐 마작 패도 중요하지만 매트가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매트를 넘어 마작 테이블이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하지만 몇백만 원 하는 마작 테이블부터 지르지는 말라고 권하고 싶다. 일단, 가볍고 손에 쏙 잡히는 마작패와 점수 봉이 들어있는 마작을 장만해 보시길. 주사위도 어느 정도 크기인지 꼭 체크 하시고. 게임을 원활하게 플레이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크 매트 역시 추천한다. 지금까지 나의 경험으로는 정크매트에 빈티지 대나무 마작 그리고 스와로브스키 주사위(친구 소장품)이 최고의 조합이다.
아무튼 이것만은 분명하다. 아름다운 마작이 아름다운 마작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그러니, 살까 말까 할 땐 사자. 이왕이면 내 취향에 잘 맞는 마작패와 매트와 주사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