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샘암? 그런 암도 있어요?”
술친구 D의 동생이 침샘암 수술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거의 한 달에 한 번 항암 치료를 하는 엄마의 보호자로 병원을 들락 거린 지 1년이 넘었는데도 처음 들어보는 병명이었다. 40대의 경우 암 진행이 빠르다는 말은 주워들은 터라 D의 동생이 어서 수술을 잘 받았으면 하고 마음이 쓰였다. 방사선 치료도 무사히 잘 받기를 바랐다.
그날 이후 침샘암이라는 병명이 뇌리에 콕 박혀 떠나지 않았다. 침샘암 수술의 부작용은 더더욱 잊히지 않았다. 수술 중 신경을 잘못 건드리면 입이 한 6개월쯤 돌아갈 수도 있다고. 수술 후 걱정이 돼 연락을 했을 D는 동생이 암이지만 입이 돌아가지 않았다는 소식과, 같은 병실 환자는 침샘 종양 제거 수술 중 신경을 잘못 건드려서 평생 콧구멍을 벌름거릴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부작용에 웃으면 안 되는데 생각하면서도 피식 웃고 말았다. 돌이켜 보니 복선이었다. 복선은 소설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선생님 입이 돌아갈 확률이 진짜 높아요?”
불과 몇 달 후 아이콘택트도 하지 않고 수술 부작용에 대해 설명을 술술 이어가는 의사에게 내가 이 질문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입이 돌아간 채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다니거나, 암이 아니라고 해도 수술 후 입이 돌아간 채 몇 개월을 살아갈 남편을 생각하면 아찔했다.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얘기고요. 지금까지 제가 수술한 환자 중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의사 선생님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이 의사는 몇 달 전 D의 동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바로 명의가 아닌가. 내가 안도하는 사이, 남편은 이비인후과 환자용 의자에 직각으로 앉아 눈만 껌뻑껌뻑하고 있었다. 짧은 침묵이 찾아오자 의사는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 그만 나가보세요.”
진료실 밖을 나서서야 생각했다. 아, 콧구멍을 벌름벌름 못하게 될 수도 있는지를 못 물어봤구나. 그래도 8월에 하루 비는 날이 있다고 한 달 뒤로 날짜를 잡아 준 게 어딘가 싶었다. 조직 검사 결과가 양성이라는 것 또한 얼마나 다행인가. 양성이라도 종양을 떼어내 검사해 보면 암인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해서 마음을 단단히 먹기로 했다. 암 투병 중인 엄마의 보호자 경력을 살려 프로 보호자가 되리라고.
마음은 프로 보호자인데 장롱 면허인 나는 수술 전날 나는 곧 수술할 환자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병원에 갔다. 운 좋게도 쾌적한 2인실로 배정을 받았다. 간호사는 다인실에 자리가 나면 병실을 옮겨주겠다고 했지만, 입원 전 날까지 동생과 교대로 병원에서 엄마의 간병을 하다 온 나의 컨디션을 위해서라도 2인실에 쭉 있기로 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남편과 보호자 목걸이를 건 나는 탐사 차원에서 병원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휴게실은 쾌적하고, 푸드코트는 드넓었다. 가는 곳마다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시설이 좋았는데 그중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은 곳은 편의점이었다. 널찍한 편의점엔 각종 도시락, 샌드위치에 소포장 과일은 물론 치킨, 군고구마까지 없는 게 없어 보였다.
“와 리조트 편의점보다 좋아.”라고 남편은 감탄했지만, 내 눈에는 없는 게 보였다. 캔 맥주. 아무리 세계 각국의 맥주 4캔을 단돈 1만 원에 파는 편의점 체인이라고 해도 병원에 입점하는 순간 빼버리는 것이 맥주 코너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병원 편의점에는 맥주도 소주도 막걸리도 없다. 내가 맥주파이다 보니 맥주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뿐이다. 그렇다고 병원에서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말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환자가 잠든 늦은 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갈 때 가방 안에 맥주 4캔 묵직하게 담아가면 좋으련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보호자에게도 맥주 한 캔 정도의 위로는 필요하니까.
다음 날 남편의 수술 시간이 오전에서 오후로 계속 미뤄졌다. 나이가 젊을수록, 건장할수록 미뤄진다는 게 병원의 방침이라니 불평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간호사 선생님에게 물어보고 또 물어봐도 기다리라는 말만 돌아왔다. 에이, 수술할 때 되면 부르겠지 하며 체념하려던 찰나, 호출이 왔다. 남편이 수술실행 침대에 눕자 덜컥 겁이 났다. 이 수술 잘 되겠지. 금식을 오래 했는데 괜찮을까. 내 맘을 알 턱이 없는 엘리베이터는 속절없이 빨랐고, 수술실 문은 매정하게 확 닫혔다. 애꿎은 수술실 문을 노려보는 내게 간호사가 말했다.
“보호자님은 병실에 가서 기다리세요.”
혼자 병실에 올라온 지 시간이 꽤 지나고 나서야 수술을 시작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아무 소식이 없으니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우두커니 앉아 드라마 속에서나 보았던 수술실 풍경을 떠올려 보았다. 상상할수록 불안해졌다. 생각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생각이 멈춰지지 않았다. 그때 누가 나를 불렀다. “지경씨!” 돌아보니 D였다. D는 나 홀로 있는 병실에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에코백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가방에서는 일주일 동안 먹어도 다 못 먹을 것 같은 양의 빵이 줄줄이 나왔다. 겪어보니 수술실에 들여보내고 기다릴 때가 제일 힘들었다며, 누구라도 같이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불쑥 왔다는 말에 울컥했다. 빵 다음으로 내게 건네는 위로품을 본 순간 눈에 맺히려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D의 손에 들린 건 맥주 두 캔이 아닌가.
“여기 병원인데요.”
“그러니까, 빨리 마셔야죠. 한 캔 마시고 나면 긴장이 풀릴 거예요.”
마침 옆 병상은 비어 있었다. 아무도 없을 때 얼른 마시고 흔적을 없애면 완전 범죄(?)가 될 것 같았다. 마음이 급해졌다. 조심조심 캔을 땄는데, 거품이 화산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아뿔싸. 들고 오는 동안 흔들린 모양이었다. 놀라서 화장실 휴지를 들고 와 바닥을 막 닦다가 웃음이 낫다. 지금 내가 웃고 있을 때가 아닌데 라고 생각하며 남은 맥주를 비우는데 또 웃음이 났다. 그 와중에 맥주가 달았다. 불안하고 초초하다고 술맛까지 달아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굳어 있던 몸과 마음의 근육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남편이 병실에 돌아오자 D는 수술 잘된 것 봤으니 됐다며, 황급히 퇴장했다. 남편은 마취가 덜 풀린 목소리로 츠·펑(마작 용어) 해야지, 어디를 가시냐고 농담을 했다. 농담을 하는 남편의 입이 멀쩡했다. 나는 입도 콧구멍도 멀쩡한 남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고생했어! 어서 퇴원해서 마작 파티해야지!”
어서 퇴원은 못 했지만, 남편은 내가 사다 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마시고 귀 아래 호스를 꽂은 채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마작 게임도 했다. 나는 병실에서 원고 마감도 하고 틈틈이 마작 족보도 들여다보았다. 혹시나 남편이 암이면 어떻게 하나 걱정은 됐지만, 걱정을 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는 게 아니니 걱정은 그만하고 싶었다. 대신 D의 집에 모여 마작 파티를 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솜씨 좋은 D는 어떤 음식을 준비할까. 나는 어떤 와인을 사 갈까. 축배를 들려면 스파클링이 좋겠지. 암, 축배를 들어야지. 암이 아니라서 한 잔. 같이 마작을 치게 돼서 또 한 잔.
돌이켜 보면 긴 터널 같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이 터널을 빠져나가면 언제든 마작 파티를 하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그 시간을 통과하게 도와준 것 같다. 터널 밖으로 나가 밝아지리라는 희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