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부터 사람 좋은 식당

영도_간판없는 식당

by 권동환

부산 영도는 기암괴석과 해안 절벽으로 이루어진 태종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둘러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동네다. 푸른 바다가 보이는 골목길의 흰여울 문화마을은 낭만과 과거를 느끼기에 좋은 공간으로,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부산을 찾는 관광객들의 이야기다. 부산 사람들에게 영도가 지닌 이미지는 사뭇 다르다. 영도는 오랫동안 ‘타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살던 동네’로 인식되어 왔다. 제주도 역대 최대의 참사로 불리는 제주 4·3 사건 당시, 제주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산으로 이주해 섬 아닌 섬인 영도에 정착했다. 또한 6·25 한국전쟁 때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이 봉래산 꼭대기까지 빽빽하게 살아갔다고 한다. 그렇다고 영도를 부산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중심에는 1934년 11월 23일에 개통한 ‘영도대교’가 있기 때문이다. 부산 최초의 연륙교이자, 한국 최초의 일엽식 도개교 형식의 다리인 영도대교는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애환, 실향과 이산의 역사를 함께 품고 있는 다리다. 1990년생인 필자 역시 어린 시절부터 부산의 역사와 함께 영도대교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영도대교가 개통하던 당시에는 부산과 경남에서 무려 6만 명의 인파가 모였고, 다리가 하늘로 치솟는 장면은 진귀한 볼거리였다. 지금은 토요일 오후 2시, 단 15분 동안만 도개하는 모습이 재현된다.

영도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

피란민들의 애환이 서린 동시에 한때 ‘부산 제일의 명물’이라 불렸던 영도대교를 건너 오늘 찾아간 곳은 ‘간판 없는 식당’이다. 1980년대부터 운영되어 온 이곳은 이미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 입소문난 식당이다. 영도와 정반대편인 금정구에서 태어나 자란 필자 역시 친구의 추천으로 이곳을 찾았다. 친구 말에 따르면 그는 최소 20번 이상 다녀갔다고 한다. 이유를 묻자, “사장님의 마음씨가 너무 곱고 그 마음만큼 음식도 맛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녁 무렵 도착한 식당은 주차장이 없어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워야 했다. (단,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2시까지는 도로에 주차해도 단속하지 않는다고 한다.) 제한속도 30km 도로 건너편으로 ‘간판 없는 식당’이 보였는데, 잠시 혼란스러웠다. 파란색 건물과 베이지색 건물, 두 곳 모두 간판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찰나, 베이지 건물 쪽에서 한 중년 남성이 문을 열고 손짓하며 인사했다. 그 순간 이곳이 친구가 알려준 식당이 아님을 눈치챘고, 파란색 건물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쉬운 듯한 남성의 시선을 뒤로하고 다가가자, 유리창 너머에서 한 여성이 빼꼼히 내다보더니 문을 열며 “어서 오세요” 하고 반겨주었다. 한눈에 선한 인상임을 알아볼 수 있었고, 친구가 말한 바로 그 사장님임을 직감했다.

실내는 한국의 소박한 동네 밥집 그 자체였다. 업소용 스테인리스 조리대, 냉장 쇼케이스, 밥솥으로 가득한 주방이 손님이 앉는 홀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었고, 파란색 미닫이문은 별도의 좌석이 마련된 안쪽 방과 공간을 나누고 있었다. 오래된 가게답게 인테리어보다는 음식 조리와 손님 응대에 최적화된 구조와 배치가 눈에 띄었다. 파란 미닫이문을 넘어 안쪽 방으로 들어가니, 흰 벽에 걸린 벽시계가 6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메인 메뉴는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단 두 가지. 가격은 7,000원이었다. 요즘 세상에 보기 힘든 착한 가격이지만, 아직 맛을 확인하지 못한 이상 성급히 ‘착한 맛집’이라 할 수는 없었다. 사이드 메뉴로는 500원의 계란후라이, 4,000원의 라면, 2,000원의 라면사리, 1,000원의 공기밥이 있었다. 순간 공기밥은 별도로 주문해야 하나 싶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김치찌개가 나오면 알 수 있을 일이었다.

등 뒤에서는 직장인으로 보이는 어르신 세 분이 구수한 사투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는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간판 없는 식당’의 정감을 더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친구가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자주 갔던 게 2020년쯤이었을 기라. 그때 직장이 영도였거든. 그땐 김치찌개, 된장찌개 다 5,000원이었는데 지금은 조금 올랐을 기라. 그래도 싼 기라. 사장님이 김치나 나물 같은 반찬을 직접 다 만들어가 완즌히 건강식이다. 내는 자주 가서 그런지 계란후라이도 챙겨주시곤 했는데, 꼭 엄마가 챙겨주는 느낌이더라. 니도 가면 엄마 밥상 같은 느낌 받을 끼다. 암튼 사장님 진짜 사람 좋다. 꼭 가봐라.”


친구의 말만 들어도 호기심이 생길 만했다. 사람 좋고, 맛 좋고, 가격까지 착한 식당은 요즘 세상에 흔치 않기 때문이다.


“수저 좀 치워주세요.”

사장님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상 위가 음식으로 채워졌다. 김치찌개, 나물 반찬 모둠, 계란후라이. 전형적인 가정식 차림이었다.

김치찌개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도 잘 끓인다”고 말할 만큼 흔한 음식이다. 하지만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맛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린다. 김치찌개가 맛있으려면 돼지고기, 참치, 어묵, 소시지 같은 부재료보다 김치 자체가 중요하다. 또한 사람마다 묵은지의 산미를 선호하는 이도 있고, 쉰 김치 특유의 강한 신맛을 좋아하는 이도 있다.


‘간판 없는 식당’의 김치찌개는 과연 어떤 맛일까. 사장님이 손수 담근 김치로 끓인 찌개를 향해 수저를 들었다. 첫 국물과 김치를 입에 넣는 순간, 배추의 숨이 남아 아삭한 식감이 느껴졌고, 깊게 숙성된 신맛이 국물에 스며들어 묵직한 감칠맛을 냈다. 두부와 돼지고기는 그 맛을 부드럽게 감싸주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개운했다. 뜨거운 국물을 떠먹을 때마다 신김치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져 쌀밥과 어우러지니 숟가락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나 김치찌개와 흰쌀밥만으로는 끝낼 수 없었다. 나물 반찬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밥을 비벼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장님이 직접 무친 나물은 각각의 맛이 뚜렷했다. 특히 열무는 젓갈 맛과 아삭함이 일품이었고, 매실로 단맛을 더한 오이무침도 인상 깊었다. 다른 나물들 역시 빈틈이 없었다. 조물조물 무친 나물에 고추장 한 숟가락을 넣어 비벼 먹으니, 각자의 맛이 충돌 없이 어우러져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었다.


식사 도중 사장님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밥이 부족하면 말씀하세요. 서비스로 한 그릇 더 드릴게요.”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이곳의 장사 철학은 돈보다 ‘정’이었다. 손님이 푸짐하게 먹는 것이 우선이었고, 그것이 곧 이 식당의 힘이었다.


식사를 마친 뒤 나는 물었다.

“이 가격에 음식을 팔면 남는 게 있나요?”


사장님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남으니까 장사하죠. 많은 사람들이 푸짐하게 식사를 즐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오랜 세월 장사하다 보니, 적어도 남기는 남아요.”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이곳을 이렇게 부르고 싶었다.

‘간판 없는 식당’은 곧 ‘사람 좋은 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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