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동환 Jul 18. 2023

친구의 도전

영원한 건 없지만-로이킴


함께 도시 고속도로를 통해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곳은 노래방. 사실, 노래방은 너무나도 가기 싫었다. 엠프를 사용해서 버스킹을 하면 목의 무리가 덜 갔지만, 노래방은 세팅값이 달라서 목을 많이 써서 빨리 지치기 때문이었다.

"광민아. 이제 너도 노래방만 주구장창 가지 말고 나랑 같이 버스킹 해볼 생각 없어?"

"나도 하고 싶지. 근데 할 수 있는 기회도 없고 자신감이 없다."

몇 달 동안 버스킹을 같이 하자고 꼬시는 중이지만, 그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나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는 두 딸을 가진 아버지였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정신적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을 꺼려했다.

"어릴 때는 학교 축제도 나가고 그러더니 왜 이렇게 숙맥이고? 그냥 한 번 하면 자신감 다시 차오른다."

나는 그를 유혹하기 위해 입에 발린 거짓말을 했다.

물론, 버스킹을 하게 되면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곡을 완벽하게 소화했을 때 이야기다. 삑사리가 나거나 박자를 놓치거나 큰 실수를 하면 자신감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근데.. 버스킹 하면 어떤 기분인데? 학교 축제 때는 전부 아는 얼굴들이니까 별 신경을 안 썼는데, 생판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부르면 좀 기분이 이상할 것 같다. 놀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데?"

언제나 나의 제안을 사양하던 그가 오늘따라 버스킹에 관련된 질문을 던지는 게 수상했다. 아마 녀석도 보컬의 욕구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절대 놀릴 일 없다. 네가 노래를 못 하는 사람도 아니고. 더군다나, 이거 하나는 확실해. 너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환호를 하고 박수를 쳐주면 피가 끓어오르고 아드레날린이 돌아서 기분이 엄청 좋아져. 그리고 우리 같은 30대들이 어디서 긍정적으로 에너지를 발산하고 또 에너지를 누군가로부터 받을 수 있겠냐? 스트레스 풀 수 있는 건 술 마시거나 담배 피우는 것밖에 없잖아."


나의 대답에 아무런 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운전을 하는 광민이에게 한 마디 더 쏘아붙였다.

"야 언제까지 찌질하게 노래방에서만 노래 부를래? 버스킹 한 번 하자."

그제야 그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기회 되면 그때는 꼭 하자."


30분 후, 우리는 자주 가는 노래방 근처의 고깃집으로 향했다. 아무리 노래방이라더라도 기름칠을 목에 해줘야 발성이 잘 되니까. 고기를 먹고 된장찌개를 시킬 무렵, 핸드폰의 벨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형님. 저 영준입니다. 오늘 대구 와서 버스킹 하실래요?"

나를 버스킹의 세계로 이끌어준 영준이의 전화였다. 이건 광민이를 대구로 버스킹 하러 같이 갈 충분한 명분이 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잠깐만. 광민아 지금 아는 동생이 대구에 버스킹 하러 오라는데. 니 기회 되면 갈 거라고 했지? 대구로 가자. 노래 부르러."

"알겠다." 광민이는 노릇노릇 구워진 삼겹살을 된장에 찍어 바르며 대답했다.

"진짜지? 가는 거 맞지? 말 바꾸면 안 된다?" 살짝 흥분된 톤으로 광민이한테 다시 되물었다.

"진짜로 가자. 나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급하게 우리는 대구행을 결정했고 수화기 너머의 영준이에게 알렸다.

"우리 지금 바로 출발할게. 동성로 대백백화점 앞으로 갈게."




대구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광민이가 입을 열었다.

"아 괜히 긴장된다. 입이라도 풀어야 하나?"

말을 뱉기 동시에 그는 "뿌르르르르르르르르" 입술소리를 내며 입과 목을 풀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귀엽게 느껴졌고 한편으로는 설레었다. 광민이가 결혼을 한 이후 이렇게 둘이 함께 멀리 어디론가 떠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진짜 오랜만에 멀리 가네. 예전에 건우 녀석, 군대훈련소 퇴소식할 때 마지막으로 대구 같이 갔잖아. 정말 오랜만이다. 우리 둘이서 이렇게 다른 도시를 가는 건."

"그러니까! 여행 가는 기분이다. 나도 애기들 데리고 가족여행 가는 것 이외에 친구랑 멀리 가는 건 정말 오랜만이야. 설렌다. 근데 노래 부를 생각하니까 또 괜히 오줌 마렵고 긴장된다."

살짝 격앙된 그의 목소리는 얼마나 긴장하고 또 설레고 있는지 바보처럼 온 세상에 알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장가를 가서 7년간 두 아이를 키운다고 자기 시간 제대로 없이 살아온 친구를 나는 그저 소리 없는 응원을 하고 있었다.


어느덧, 우리는 동성로에 도착을 했고 대백백화점 앞의 공연장에는 영준이와 그의 친구들이 장비를 세팅하고 있었다.

"전선 연결은 저기 떡볶이집 사장님한테 만 원주고 해결했어요."

만나자마자 영준이가 말했다. 버스킹은 3가지의 방법으로 가능하다. 첫 번째는 일반 건전지로. 두 번째는 파워뱅크 혹은 발전기. 마지막으로는 전력을 끌어올 수 있는 플러그를 찾는 것이다. 첫 번째는 출력 저하로 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2번째 파워뱅크는 가격이 문제다. 엠프 가격만큼 수십, 수백만 원을 호가하기 때문에 구매를 하기 쉽지 않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마지막 방법인 플러그를 찾는 것이다. 그렇기에 영준이는 만나자마자 버스킹에서 가장 중요한 플러그를 언급한 것이다. 그 후, 마이크 연결과 엠프 세팅을 순서대로 하며 우리는 노래를 부를 준비를 했다.


"광민아. 먼저 불러볼래?"

"아니. 나는 조금만 지켜보고 할게."

"알겠어. 목 풀면서 어떤 노래가 사람들이 좋아할지 생각해 봐."

처음 버스킹을 하는데 첫 곡을 담당하면 부담될 것이란 판단에 그의 의견에 따랐다. 하지만, 그 부담의 시간이 1시간 30분이나 갈 줄 몰랐다.




"야! 이제는 네가 좀 노래 불러라. 1시간 30분 동안 한 번을 노래 안 부르냐? 나머지 보컬들 지금 목 많이 상했으니까 진짜 이제는 네가 노래 불러라."

찌질하게 우물쭈물하면서 노래를 미루던 광민이에게 한 소리를 했다.

"예상 의외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서 긴장이 돼서.."

"아니.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다음 곡 네가 해라. 여기까지 와서 바보처럼 도전도 안 하고 다시 부산갈래?"

"알겠다. 근데 무슨 노래를 부를지 진짜 모르겠다."

그러한 부분도 충분히 이해는 갔다. 실수를 하지 말자고 쉬운 노래를 부르자니 임팩트가 없고, 그렇다고 무리해서 부르기 쉽지 않은 곡을 했다가 실수를 하면 망신을 당하기 때문에 곡선정에 대한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네가 제일 잘할 수 있는 노래로 하면 된다. 네 실력이면 사람들 전부 박수 쳐준다."

하지만, 광민이의 도전은 곧바로 이어지지 못했다.

늦은 시간이 되어, 사람들이 공연장에서 많이 빠진 후, 광민이는 대뜸 "이제, 내가 해볼게. 사람 없을 때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이 친구. 사람들이 떠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처음인데 사람이 있든 없든 큰 경험이 될 것이 분명했다.

"나. 로이킴의 '영원한 건 없지만' 부를게."

예상 의외는 선곡이지만, 그에게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그의 첫 버스킹을 제대로 보기 위해 무대에서 멀리 떨어졌다.





       

영원한 건 없지만 내 사람은 항상 아름답길

영원한 건 없지만 나 또한 누구에겐 소중하길

영원한 건 없지만 내 마음의 목소리는 영원하길

지금 곁에 없다 해도 다 지난 뒤에는 그늘 없는 이야기로

추억되길 영원하길 다 지난 뒤에는 사랑만이 가득하길

영원한 건 없지만 이 세상은 따뜻하게 변해가길

영원한 건 없지만 익숙함의 소중함을 잃진 않길

지금 곁에 없다 해도 다 지난 뒤에는 그늘 없는 이야기로

추억되길 영원하길 다 지난 뒤에는 사랑만이 가득하길


라라 라라 라라 다 지난 뒤에는 다 지난 뒤에는

라라 라라 라라 라라 다 지난 뒤에는 다 지난 뒤에는

영원한 건 없지만 영원한 건 없지만

영원한 건 없지만 다 지난 뒤에는

영원한 건 없지만 영원한 건 없지만

영원한 건 없지만 다 지난 뒤에는

영원한 건 없지만 영원한 건 없지만

영원한 건 없지만 다 지난 뒤에는



'짝짝 짝짝'

광민이가 노래를 끝낼 무렵은 다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몰여들었다.

광민이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처음 해보니까 어때?"

"아 긴장이 너무 돼서, 손 발이 저리더라. 그리고 눈 감고 1절 불렀는데, 눈 뜨니까 사람들이 모여있어서 당황했다. 그래도 기분은 진짜 좋더라."

긴장이 풀렸는지 환하게 웃으면서 말하는 광민이는 두 딸의 아버지가 아닌 잠시나마 노래를 좋아하는 10대 소년으로 돌아갔다.

"근데, 많고 많은 노래 중에서 그 노래 왜 선곡으로 뽑았어? 처음 듣는 노래였는데. 원래 그 노래 부른 적 있어?"

"처음 불렀지. 근데 버스킹을 해야겠다고 올라오면서, 그리고 너희 노래 들으면서 기다릴 때, 진짜 생각 많이 했거든. 근데 '영원한 건 없지만' 이 노래가 가장 사람들한테 필요한 노래일 것 같기도 하고 내 목 컨디션에 딱 맞는 노래라는 생각이 들어서 선곡으로 뽑았어."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그렇지. 가사가 진짜 좋더라. 세상에 영원한 건 없기 때문에 사랑이든 가족이든 친구든 취미든 뭐든 익숙함의 소중함을 잃지 말자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 같더라고."

"맞아. 선곡한 이유가 딱 그거야. 오늘 사람들 앞에서 14년 만에 노래 부를 기회를 줘서 고마워. 진짜 좋은 경험인 것 같아. 근데 나 한 곡 더 해도 될까?"

그렇게 시작된 광민이의 뒷북은 1시간이 지나도록 이어져갔다. 혼자서 말이다. 하지만, 가정을 우선시로 살아온 광민이가 부모로 써가 아닌 남광민으로써 마이크를 잡고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보여준 환한 미소는 돈으로 메길 수 없는 값어치 있는 찐행복이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나 역시 친구로서 행복함을 느낀 그런 2021년의 10월 어느 밤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