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선배 가고, 최고의 선배를 만났다.

by 방구석여행자

최악의 선배와 프로젝트를 마친 나는 더 이상 그 선배와 일하고 싶지 않았다. 그 선배는 내게 본인의 팀으로 와서 앞으로도 함께 일할 것을 제안했었지만, 함께 일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팀장님께 이야기하여 거절을 했었다. 최악의 선배와 갈라선 나는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다른 동기들은 승승장구하는데 나만 도태되는 것 같아서 다른 일을 해야 하는지 생각이 많아졌었다. 그러나 1년 동안 영문매뉴얼을 본답시고 모니터를 보며 멍 때렸던 날들, 최악의 선배를 만나 CTI와 관련 없는 일을 하며 허비했던 시간들이 아까웠었다. 이대로 퇴사하기에는 아쉬웠던 찰나에 팀장님은 내게 다시 CTI를 정식으로 배워보라며 다른 선배를 사수로 배정해주셨다.


'그래, 한번 제대로 일 배워서 일 내보자!'


이 선배는 8년의 경력 동안 내가 만났던 선배들 중 가장 최고의 선배다. 첫 회사의 입사 동기 한 명의 사수였는데 입사했을 때 CTI에 대해 전반적인 교육도 해주셨었고, 나와 동기들에게 많은 응원과 격려도 해주셨었으며, 무엇보다도 음료수나 간식을 많이 사주셨던 분이셨다. 실제로 이 선배와 함께 일을 배웠던 그 동기는 선배의 조곤조곤한 말투와 친절한 설명 덕분에 동기였지만 나보다 훨씬 더 빨리 안정감 있게 일처리를 잘 수행할 수 있었다. 본인들의

사이트를 하나씩 척척 맡아 관리를 했던 동기들이 부러웠었다. 그런데 이 선배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고, 팀장님은 나에게 한번 잘 배워보라며 함께 배정해주셨다. 나도 이제 동기들처럼 일을 체계적으로 잘 배워서 담당 사이트가 하나 생기는 건지 기대됐었다.


이 선배는 지난번에 함께 프로젝트를 했던 그 최악의 선배보다 경력이 더 오래됐었다. 하물며 그렇겠지. 직급이 더 높았으니까. 그래서인지 일처리를 함에 있어 연륜이 묻어났었고, 내 적정 수준에 맞는 일을 내게 맡겼으며 모르더라도 들어두는 것이 경험이라는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시며 회의 참석도 함께 하자고 제안하셨었다. 덕분에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 프로세스들에 대해 개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또한 일을 처리할 때 본인이 무조건 맞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자세를 낮추시면서 내 의견도 함께 들어주셨었다. 일을 진행하면서 자연스레 첫 프로젝트에서 악연이었던 최악의 선배와 비교를 할 수밖에 없었다. 책임질 일은 본인이 다 책임지시고, 나는 뒤로 물러서게 하시면서 내가 마음껏 내 능력 안에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셨다. 덕분에 나도 조금씩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이 선배를 만나고 함께 프로젝트를 완료하면서 CTI엔지니어로서의 초석을 다졌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선배와 함께 프로젝트를 완료한 이후 이 프로젝트에서 배웠던 지식과 매뉴얼 보는 법을 터득한 후 다른 여러 사이트들의 담당자가 되어 관리하곤 했었으니까 말이다. 이 선배와 프로젝트를 하기 전에는 컴퓨터 모니터로 영문 매뉴얼을 띄워놓고 읽으려고 하면 당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더욱더 읽고 싶지 않았었다. 다른 선배들이 매뉴얼을 보라고 조언을 할 때마다 본인들도 정말 신입사원일 때 영문매뉴얼을 열심히 읽었는가에 대해 묻고 싶었다. 너무 몰랐기에 질문조차 어떻게 하는지 몰랐던 나날들이 계속되었었다. 이 선배와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려니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매뉴얼이 일을 하면서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만 찾아서 읽고, 이해가 안 가면 선배에게 질문하면서 필요한 부분만 보니 이해도 쏙쏙 되고 잘 읽어졌었다. 어느덧 업무 처리하다가 모르는 게 생겼을 땐 일단 매뉴얼부터 찾아서 보게 되었다. 매뉴얼을 읽는 게 재밌어졌고, 요령도 터득하게 됐었다. 매뉴얼을 읽으면서 몰랐던 일들을 처리하고, 지식도 생기면서 일이 수월해졌고 재밌어졌었다.


이 선배와 프로젝트를 끝낸 후 나는 CTI엔지니어로서 한 뼘 성장해 있었다. 이 선배를 만나기 전 허비했던 시간들을 보상받은 기분이었고, 선배를 도와 프로젝트를 완료했다는 것이 뿌듯했었다. 선배와 프로젝트를 끝낸 후 나는 실력을 인정받아 다른 선배의 그늘 밑이 아닌 한 사이트를 담당하여 유지보수 관리하게 됐었다. 과연 이 선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진작에 다른 일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내게 CTI엔지니어로서의 맛을 알려준 이 선배가 아직도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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