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하나 그렸을 뿐인데, 인생 역전!”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 베티는 미술시간에 그림을 못 그리는 열등감 있는 아이로 나온다. 그래서 항상 미술시간마다 빈 도화지다. 선생님은 베티에게 다가가 한마디를 던진다.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한번 시작해 보렴.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
선생님의 이 한마디를 듣고 베티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빈 도화지에 점 하나를 찍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 점이 찍힌 도화지에 이름을 적으라고 한다. 이름정도는 쓸 수 있다며 호기롭게 적었던 베티. 이 점 하나가 어떠한 일을 가져올지는 생각지 못했겠지?
일주일 후 미술시간, 베티는 선생님 책상 위에 걸린 금테액자에 있는 그림을 보고 놀랐다. 바로 베티의 이름과 점이 찍힌 도화지가 걸려있던 게 아닌가?
이를 본 베티는 점을 더 잘 찍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도 찍어보고, 저렇게도 찍어봤다. 색깔도 만들어보고, 점을 따로 그리지 않고도 큰 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렇게 점을 다양하게 그려냈다.
미술전시회가 있었고, 베티의 점들도 전시가 되었다. 그동안 그려낸 점들, 노력의 결과물, 베티의 열정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를 본 한 동생이 베티에게 다가와 말한다.
“누나가 부러운데, 누나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
베티는 선생님이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말한다.
“일단 그려봐.”
구불구불한 선 그림이 있는 스케치북을 본 베티는 말한다. “너의 이름을 여기에 적으렴.”
이 책을 보면서 나의 어린 시절과 지금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떠올랐다. 나도 어렸을 적 베티처럼 미술시간에 딴짓을 하고 빈 도화지였던 날들이 많았다. 미술에 열등감이 많은 아이. 이런 내게 베티의 선생님 같은 분이 있었다면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좀 더 일찍 시작할 수 있었을까?
몇 년 전 한 책방 SNS에 못 그려도 괜찮은 그림모임을 모집하고 있었다. 못 그려도 괜찮다는 말에 혹해서 시작을 했다. 반전(?)이었던 건 분명 못 그려도 괜찮다고 했는데 참여자들은 다들 그림실력이 출중한 분들이었다. 약간 배신감이 느껴져서 한마디 던졌다.
“여기 못 그려도 괜찮은 그림모임 아니었나요? 다들 잘 그리시는데......”
”진짜 못 그리는 사람은 여기 모임에 오지 않아요. “
듣고 보니 그랬다. 나도 어렸을 적 그림 그리기에 열등감이 있었을 땐 스케치북을 펴 볼 생각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내 그림을 조심스럽게 펼쳐 보였더니 그림모임에 있던 분들이 다들 하나같이 나만의 스타일이 있다며 베티의 선생님처럼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응원과 격려를 받고 재밌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 그림모임 갈 때마다 발걸음이 가벼웠고, 그림모임에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는 잡생각을 하지 않고 오롯이 그림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지금 틈틈이 그리고 있는 일상 만화도, 그림책을 만들어보겠다는 결심도 다 이때 힘을 얻고 시작하게 된 일들이었다.
그림모임 하고 1년이 되던 날 작게나마 각자의 그림으로 전시회도 열어주셨다. 그때 그림으로 전시회를 했던 내가 놀랍고, 뿌듯했었다. 지금은 비록 없어지게 되었지만, 그때 기적을 만들어주었던 책방지기님과 그림모임멤버들에게 고맙다. 이 점 그림책을 보면 함께 마치 사랑방과도 같았던 책방에 둘러앉아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때가 생각이 난다. 서로의 그림에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그때.
비록 점 하나였지만, 그 점 하나를 잘 그려내기 위해 수많은 노력과 누군가의 의미 있는 타자가 되기까지 베티의 눈부신 성장이 멋졌던 그림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