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왔는데, 바다 한번 보고 갈래
친구와 뉴욕 여행을 하던 마지막 날 밤이었다. 한국에서 뉴욕으로 여름휴가를 왔던 친구는 처음으로 미국에 왔는데 미국의 바다를 꼭 보고 가고 싶다며 비행기를 타러 가기 전, 아침 일찍 서둘러서 바다를 보고 가면 안 되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결심하고, 자기 전에 우린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갈 수 있는 바다를 검색했다. 그곳은 바로 코니아일랜드. 브루클린 남부에 있어 차가 없던 우리도 쉽게 메트로를 타고 갈 수 있었다. 비싼 택시를 이용하기엔 부담스러웠던 우리에게는 최적의 장소였다. 행여나 비행기 시간에 늦을까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눈물 젖은 핫도그가 아닌 빗물 젖은 핫도그
뉴욕에서의 마지막 날은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비가 오더라도 미국에서 바다를 보고 가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던 친구는 나만 괜찮다면 강행하자고 했다. 우리는 결국 메트로를 타고 출발했고, 행운의 여신이 우리 편을 들어주시는지 비가 그치는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았다. 우린 참 단순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좋았고, 비가 그치면 비가 그치는 대로 좋았다. 비가 그친 하늘은 흐리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비가 안 오는 게 어디야. 드디어 코니아일랜드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다시 세차게 비가 내렸다. 비로 흠뻑 젖었어도 목적은 달성해서 즐거웠던 우리. 급하게 나오느라 아침도 먹지 못하고 출발했던 탓에 출출해진 우리는 근처 핫도그 가게에서 칠리 핫도그를 하나 사서 나누어먹었다. 이 핫도그는 눈물 젖은 핫도그라는 말 대신 빗물 젖은 핫도그라고 부르고 싶었다.
고생 아닌 고생은 추억이 되고
잠시 비가 그쳤다. 부랴부랴 채비를 하고, 조금이라도 바닷가 근처에 가서 걸어보기 위해 나섰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바닷가만 보고 핫도그 하나 입에 물고 부랴부랴 왔어야 했던 우리. 잠깐 머물렀던 곳이지만, 매일 밤마다 갔던 타임스퀘어 같은 유명 관광명소만큼이나 이곳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뇌리에 박혀있다. 아마 저 비로 인해 고생 아닌 고생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은 좋았던 순간보다 고생스러웠던 순간, 힘들었던 순간들을 더 추억하곤 한다던데. 그 말이 딱 맞는 듯싶다. 나는 미국 이모집으로 돌아갈 때 2번의 비행기 경유를 해야 했는데, 저 비로 인해 첫 번째 비행기가 연착되었고, 그로 인해 두 번째 비행기를 놓쳤다. 근처에 머무를 호텔비 조차 없었던 나는 공항 노숙을 해야 했고, 다음 날 첫 비행기로 가야 했고, 도착해서 이모에게 혼이 나기도 했었다.
고생 아닌 고생을 했던 나. 그래서인지 더욱더 이 여행이 기억에 남는다. 내 머릿속에는 몇 년이 흐른 아직도 뉴욕 하면 이 날의 코니아일랜드가 생경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이때의 해맑았던 우리도 남아있다. 그 친구와 지금도 만나면 말한다. 우리의 뉴욕 여행은 참 잊지 못할 여행이었다고. 지금 그 친구에게 다시 그때처럼 여행할 수 있겠냐고 물으면 자신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지금도 나이가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돌도 씹어먹을 수 있을 것 같았던 20대 초반의 그때가 더욱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