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속에 숨겨진 것들

by 온정

티브이 속 마스크를 하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 어딘가 어색하다고 느낄 정도로 마스크가 익숙해졌다.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세상은 이토록 변했다. 사실 나는 코로나 사태 전에도 종종 마스크를 끼곤 했었다. 화학 연구하는 일을 했기에, 침구 먼지에 비염이 심해져서, 비행기 안은 너무 건조하니까, 또 날이 갈수록 미세먼지가 심각 단계인 날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연구실에서, 여행지의 숙소에서, 기내에서, 또 가끔 바깥에서 마스크를 사용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유별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심지어 연구실에서조차도 마스크를 쓰는 사람은 손에 꼽았다. 난 꼬박꼬박 마스크를 챙겨쓰며 종종 민망하곤 했다. 그렇기에 갑자기 모든 사람이 당연하게 마스크를 쓰고 다니게 된 이 변화가 나에게는 더욱 와닿을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이 좀 더 맑고 깨끗해지면 좋겠지만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기엔 인간은 이미 페달을 너무 많이, 또 오랫동안 밟아왔다. 그러니 코로나 사태가 지나간 후에도 아마 마스크 문화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조금이나마 마스크와 미리 가까웠던 사람으로서 나는 단점뿐 아니라 장점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한다. 일단 마스크를 쓰고 있는 동안에는 기관지가 보호받는 느낌이 든다. 먼지가 콧 속을 침투할 일이 적어지니 그를 방어하기 위해 콧물이 고개를 내미는 일도 줄어든다. 마스크 안에 얼굴을 꼭꼭 숨긴 채 화장을 안 하게 된 것도 처음에는 창피하기 그지없었으나 갈수록 편하기만 하다. 겨울철이라 건조한 와중에 마스크는 얼굴의 습도를 어느 정도 유지하는 데에도 한몫을 한다.
하지만 마스크를 쓴다는 건 콧 속에 바람 한줄기 집어넣기 쉽지 않은 일. 말을 많이 할 때면 나의 침 냄새를 맡아야만 하는 곤욕스러운 일. 사실 답답하고도 또 답답한 일이다. 그중에서도 마스크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상대의 표정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복도를 지나가다가 동료를 마주치면 말을 걸기도 애매하고 그냥 지나치기도 애매하니 보통은 눈인사를 건넨다. 이때 입 인사, 즉 입꼬리의 모양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마스크를 쓴 뒤에야 알았다. 요즘도 종종 복도에서 누굴 마주치면 눈인사를 건네곤 한다. 그 상황을 지나친 뒤 정신을 차려보면 과연 내 눈 모양의 변화가 상대방이 알아챌 수 있을 정도의 변화였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진다. 그래서 눈인사를 했던 그 표정과 얼굴 근육을 고대로 유지하며 거울 앞에 서본다. 내 입꼬리는 스윽 올라가서 팔자주름을 형성하고 내 광대는 한껏 올라와서는 마스크를 터치하고 있지만 상대는 알 수 없다. 그저 아주 살짝 반달 모양이 된 나의 눈만 볼 수 있을 뿐. 그러니 상대가 느끼기에는 그저 자신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지나갔겠거니,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럴 때면 왠지 억울하다. 다음에는 입과 광대보다 눈 근육에 열심히 힘을 줘봐야겠다고 생각한다.

무의식 중에도 일단 눈 근육부터 강렬히 움직이는 그 날이 오게 될까? 그렇게나 코와 입이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한 날이 오게 될까? 마스크에 꽤나 긍정적인 나지만 막상 그런 날이 온다면 조금 슬퍼질 것 같다. 어차피 앞으로도 마스크와 친하게 지내야 할 세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마스크가 필수는 아닌 생활을 되찾고 싶다. 누군가와 인사를 할 때만이라도, 상대방의 이야기에 한껏 웃어줄 때라도, 혹은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며 잔뜩 얼굴을 찌푸릴 때라도. 난 온 마음 다해서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요!라고, 나의 코입을 총 동원해서 답해주고 싶다.



커버 사진/ 필름 카메라 X-300으로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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