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혀두니 다시 차오르는 것

나의 애착 패딩

by 온정

7년 전 딱 이맘때쯤이었다. 단풍잎들은 바닥에 떨어져 바삭거리고, 한기가 목울대를 지나 가슴까지 파고들어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들던 계절. 당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나는 연구를 위해 미국 중북부에 위치한 미시간에 잠시 동안 가게 되었다. 11월, 1월, 2월. 시간은 딱 세 달 밖에 없는데 나는 마치 피자 한 판 중에 한 조각 밖에 먹지 못하는 불운한 사람처럼, 미시간의 가을이나 봄의 살랑거리는 치마 끝자락 조차 구경하지 못한 채 겨울, 딱 겨울밖에 보지 못한 채 돌아와야 하는 운명이었다.

분주하게 미국 갈 준비를 할 무렵 내가 여러 사람에게 미시간에 대해 들은 정보들은 거의 하나로 수렴했다. 춥다, 춥다, 춥다..... 혹독하게도 춥단다. 게다가 눈이 억수로 많이 온단다. 미시간은 캐나다와 꽤 가까운 위치에 있었기에 여러 매체에서 접해본 캐나다의 겨울을 상상하다 보면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하지만 그때 내 나이 20대 중반. 아직은 불편함보다는 멋이 더욱 중요했던 때였기에 겨울 짐을 싸면서도 내 고민의 무게 중심은 ‘멋’으로 기울었다. 최소한의 짐으로, 예쁘면서도, 동시에 따듯한. 아니, 사실 예쁘면서 따듯하기까지 하기엔 쉽지 않았기에 적어도 얼어 죽지 않을 만큼의 옷들을 캐리어에 챙겼다.
그렇게 바삐 준비하는 사이 출국 날짜는 성큼 다가왔고 그럴수록 엄마는 얼음 동네의 날씨를 심히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혼자 급히 아웃렛에 가셔서는 아주 보통의 롱 패딩을 사 오셨다. 보통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표준 규격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무난한 패딩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많이들 입는 스포츠 브랜드의 패딩은 아니었지만 어떤 여성복 브랜드에 가도 찾을 수 있는 스타일의 검은색 롱 패딩이었다. 나름 포슬한 갈색 털이 달린 모자와 허리끈도 있었다. 감사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와중에 엄마는 오히려 그 추운 곳에 가는데 더 따뜻한 옷을 사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엄마, 지금 엄마가 사주신 패딩이 내 목숨을 살려줄지도 모를 일이에요. 난 원래 코트만 가져갈 생각이었는걸.”

결국 나는 미시간에서 3개월 내내 그 패딩만 입고 다녔다. 이 옷이 없었다면 그곳에서 당장 뭐라도 사서 입었어야 했을 만큼 추웠다. 그 명성이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정말이지 추웠다. 유독 추운 날에는 살색이 조금이라도 삐져나온 부분에 동상이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그 정도로 미시간은 추웠다. 엄마가 나를 살려주신 게 분명해졌다.

그렇게 내게 그 패딩은 보통의 패딩을 넘어서게 되었다. 좋은 브랜드의 비싼 패딩은 아니지만 미시간의 강력한 추위를 견디게 해 준 대단한 옷이라는, 왠지 모를 자부심도 생겼다.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애착 인형처럼 매일같이 입고 다니는 애착 겉옷이 되어 나의 몸을 지켜주었다. 뭐, 사실 꼭 애착을 가지려다가 그렇게 된 것은 아니기도 했다. 내 옷장에는 마땅히 따듯한 옷이 없었다. 그때쯤부터 학생들에게도 노스페이스 패딩이 유행하며 ‘등골 브레이커’라는 표현까지 생겼지만 나에게는 옷으로 부모님, 혹은 나의 등골을 브레이크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매년 겨울마다 새로운 패딩을 장만해야겠다는 다짐만 여러 번. 애착 인형은 너덜너덜해져야 제맛이듯 여러 번의 겨울을 쓸쓸하게 이겨낸 애착 패딩 역시 점점 낡아져만 갔다.




어느 겨울이 지날 때쯤 패딩을 세탁소에 맡길 시기가 되었는데, 이제 그렇게까지 관리할 시기는 지나지 않았나 싶어 과감히 세탁기에 돌려버렸다. 그러자 드럼 세탁기 안에서 빙빙 돌며 그 원심력과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받아낸 패딩은 한껏 수척해진 모습으로 밖에 나왔다. 세탁을 한 뒤에 방망이로 열심히 때리면 솜이 살아난다나 뭐라나...래서 심폐소생술 하듯 방망이 대신 나의 손과 페트병을 동원하여 열심히 솜을 부풀려보았으나 역부족이었다. 솜에 숨이 죽어버린 패딩은 볼품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어차피 얘는 수명을 다했어.”

결국 검정 롱 패딩은 내 옷장 구석 자리에 모셔지게 되었다. 세 번 정도 더 입긴 했지만 코트보다도 얇아져버린 패딩은 더 이상 그 역할을 다 하지 못했다. 게다가 결혼을 준비하던 중에 마침 시부모님께서 도톰하고 따닷한 새 패딩을 선물해주셨다. 그 덕에 오랫동안 함께 해온 롱 패딩을 놓아주었다, 고 마침표를 찍어야 자연스러울 것 같지만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옷 정리를 할 때마다 버릴 옷이 수두룩 차곡차곡 쌓였는데도 왠지 나는 그 옷을 버리지 못했다. 새로 생긴 패딩과는 다른 스타일이라서 그랬다고 생각하지만, 그저 정든 패딩에 미련이 남아서였는지도 모른다.

올해도 역시나 겨울은 찾아왔다. 장롱 속 롱 패딩은 여전히 나의 옷가지들 사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안입는 옷들을 버리다 말고 내일은 오랜만에 저 패딩을 입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만 입어보고 정말 아니다 싶으면 이번에는 꼭 버릴 심산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길에 패딩을 입고 집을 나서는데, 포근했다. 혈압을 잴 때면 팔에 피가 힘겹게 통하듯 패딩 하나로도 뭔가 갑갑하게 껴입은 느낌이 물씬 들었다.
‘어라? 이 패딩 엄청 얇아졌었는데.... 언제 다시 톡톡해졌지?’

우다다다 방망이질을 했을 때는 분명 효과가 없었다. 그런데 장롱에서 오랫동안 묵으며 솜이 제 숨을 찾기라도 한 걸까. 너무 낡아서 입기 창피하다고 느꼈던 것도 같은데 막상 차분히 살펴보니 패딩은 멀쩡하기만 했다. 바느질도, 허리끈도, 모자에 달린 갈색 털도. 올 겨울이 본격적으로 찾아오기 전 나는 또 습관처럼 새로운 패딩을 장만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이번에도 나는 패딩을 사지 않을 듯 하다. 나의 애착 패딩 속 솜들이 다시금 따듯하게 숨을 불어넣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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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그만둔 지 1년 만에 다시 직장으로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1년 전 나의 마음은 쪼그라들어 볼품이 없었기에 그 모습으로 오랜만에 다시 일을 하려니 잔뜩 겁을 먹어버렸다. 하지만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마음에도 포근한 숨이 많이 차오른 듯 하다. 마음의 테두리에 에어백이라도 장착한 것처럼 한층 단단하고도 유해진 나의 모습을 보며 종종 놀라곤 한다.


오늘도 왠지 나를 닮은 롱 패딩을 입은 채 출근길에 오른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그저 든든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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