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엄마의 휴대폰을 빌려 친구들과 문자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엄마는 버튼에서 파란색 불빛이 나는 하얀색 폴더폰을 가지고 계셨는데, 나는 호시탐탐 엄마의 휴대폰을 탐냈다. 그때의 휴대폰은 스마트폰이 아니었기에 엄마는 통화할 일이 없는 밤이면 휴대폰을 아무 곳에나 방치해두시곤 했다. 그럴 때면 몰래 내 방으로 들고 가서는, 밤늦게까지 그 파란 불빛을 쥐고 열심히 버튼을 두드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는 안경을 쓰고 싶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던 터라 눈이 시려와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6학년이 되었고 나에게도 처음 휴대폰이라는 것이 생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화면을 보지 않고도 완벽하게 문자를 쓸 줄 아는 학생이 되었다. 나무 책상 아래에 휴대폰과 손을 집어넣고는 손가락만 움직여가며 문자를 전송할 수 있었다. 문자 고수가 따로 없었다. 학창 시절의 나는 다소 활발하고 왈가닥인 면도 있었지만 항상 그 안에는 소심한 본성을 품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쪽지를 주고받는 것을 참 좋아했다. 대개 ‘말’이란 튀어나오고 나면 끝이기 때문에 나는 충동적으로 말하는 것이 두려울 때가 많았다. 게다가 상대방에게 뭔가 이야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굳어서 도저히 움직이지 않을 때면, 나는 마치 돌파구처럼 글자들을 찾아 내 마음을 표현하곤 했다. 듣는 입장일 때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친구에게 갑작스럽게 무슨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줄곧 얼어버리곤 했다.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 한몫했고, 우유부단하여 무슨 결정이든 오래 걸린다는 사실이 두 몫 했다. 그런 저런 이런 이유로 나는 항상 문자의 형태로 의사소통하는 것을 선호했다. 대학교 1학년이 끝날 때쯤이었나. 한국에도 스마트폰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나는 20년 동안 살아오며 선구자 스타일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으나 어쩌다 보니 스마트폰에서 만큼은 얼리어답터가 되었다. 새로 나온 아이폰 기종을 손에 넣은 뒤 카카오톡이라는 앱을 깔았는데, 신세계였다....! 고 말하기엔, 친구 목록에 뜬 친구가 3명뿐이었다. 내 연락처 목록에는 400명이 넘는 친구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하여간 그만큼 나는 일찍 스마트폰을 접했고 무제한 메시지의 맛을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버렸다. 카톡 친구 목록에 한 명씩 추가될 때마다 나의 대화 상대는 늘어났다. 정신 차려보니 하루 일과에 친구와 카톡을 주고받는 일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문자와 주욱 함께해온 인생이기에 평생 동안 전화를 쓸 일이 거의 없었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야 내가 전화를 두려워하기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학과 집행부 활동을 했기에 가끔 통화를 해야 할 일이 생겼는데, 연락처에 이름을 검색한 뒤 통화 버튼을 누르려 할 때면, 엄지 손가락이 휴대폰 디스플레이 위에 닿기 전에 뻣뻣하게 굳어버리곤 했다. ‘전화가 별거냐.’라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전화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 다가올 때면 왠지 심호흡이 필요해졌다.
두려움은 깨닫기 전보다 깨달은 뒤에 더욱 강력해지게 마련이다. 나 자신이 통화를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나는 더더욱 전화를 피하기 시작했다. 웬만한 일은 문자로 해결하려 들었다. 그러다 보니 전화를 할 일이 더 없어졌다. 그러다 보니 전화가 더 두려워졌다. 그러다 보니, 그러다 보니, 그러다 보니, 의 굴레가 계속되었다. 결국 나는 정말 가까운 사람들 이외에는 전화를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럴듯한 플랜 B가 있다는 것은 이토록 사람을 잘 회피하게 만든다.
하지만 어찌 계속 이러고 살겠는가. 문자인으로 무럭무럭 자라서 나는 사회생활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어찌어찌 적응해나가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하필 나는 화학 연구원이었다. 팀 내에서의 소통은 가장 중요하지만 막상 외부 사람들과는 소통할 일이 없는 연구원. 특히 사원급의 경우 모르는 사람과 전화할 일은 거의 없었다. 조금 뜬금없는 예시이긴 하지만 강아지의 분리불안 훈련도 처음에는 5초 떨어져 있기, 그다음엔 10초, 그다음엔 30초, 이런 식으로 점차 늘려나가야 효과가 있는 법인데 연구원의 삶이란 한 달 내내 전화통화를 하지 않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하루에 열 번씩 통화를 해야 하는 방식으로 흘러갔다. 나의 분리 불안, 아니 전화 불안은 좀처럼 나아지기 어려웠다.
그 후 분석직으로 이직을 하고 나서야 드디어 정기적으로, 하루에 여러 번 전화를 받게 되었다. 직접 의뢰를 받아서 분석을 하고 결과를 보내주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자를 선호하던 그동안의 습관이 어디 가지는 않았다. 여전히 통화는 ‘용건만 간단히’ 스타일이었으며 중요한 이야기들은 이메일로 정리하여 보내곤 했다. 전화가 너무나도 쉽고 익숙했던 나의 상사는, 내가 이메일 창을 열고 논리 정연하게 분석 결과를 적고 있을 때면 꼭 뒤에서 핀잔을 주곤 했다. “연애편지 써요?”
오늘은 고객 센터에 전화할 일이 생겼다. 자동차 보험 만기가 다가와서 1년 동안 몇 킬로를 주행했는지 모바일로 사진을 전송했는데, 아무래도 주행거리 입력이 잘못된 모양이다. 겨우 7,000km가량을 주행했는데 237,000km를 주행했다고 카톡이 왔다. 연간 주행 거리에 따라 보험료를 환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사항이었다. 모바일로 해결할 수 있어서 참 편했는데 굳이 또 전화를 해야 한다니. 나는 여느 때와 같이 메모장을 펼쳤다. 작년 18,330km/ 올해 25,551km/ 7,000km/ 환급 등을 꼼꼼하게 메모해놓고서야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무려 준비까지 해놓고 거는 전화는 언제나 부자연스럽다. 업무용 전화마냥 ‘다름이 아니라’라는 말까지 덧붙이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오늘 전화도 무사히 마쳤다. 고객 센터와의 통화를 무사히 마쳤다고 표현하는 것도 조금 웃기긴 하다만, 나에겐 그 정도 무게가 있는 일이다.
이렇듯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나는 문자를 선호한다. 이는 문자 메시지를 선호한다는 말이지만, 누가 뭐래도 말보다는 문자 형태가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전히 모르는 번호로 울리는 전화가 두렵다. 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일이 막막할 때가 종종 있다. 전화 대신 메일로 업무를 해결하는 것이 즐겁다. 카톡과 메신저가 발달한 이 세상에서 비단 나만 겪고 있는 문제만은 아닐 거라고, 조심스레 합리화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