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으로도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조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인이 된 후로 누군가가 고등학생 때가 그립다고 말할 때면, 나는 학을 떼면서 그 시절은 생각도 하기 싫다고 대답하곤 했다. 그 시절을 잊으려고 20대 때 그렇게나 술을 많이 마셨나 싶기도 하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이 흐릿해진 고등학생 시절을 이제는 다시 들여다볼 용기가 생겼다. 선생님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나의 장래 희망은 무엇이었을까. 나이스 대국민 서비스라는 사이트에 들어가서 생활기록부를 발급받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나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다. 그러다 2학년, 3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성적이 수직 하락했다. 잘했다는 건 기억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이 정도로 잘했는지는 몰랐다. 생활기록부를 보고 재밌다며 웃긴 했지만 마냥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점수는 아니었다. 몇 주일 동안 하루에 세 시간씩 자며 공부했고, 스트레스로 잘 때마다 가위에 눌렸다. 시험이 코 앞으로 다가오면 시험을 망칠까 봐 너무 두려웠다. 그러다 공황 발작을 일으키거나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며 울기도 했다. 고작 중간고사가 보기 싫어서 당장 죽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거나 종종 속이 쓰렸다. 밥을 먹으면 소화가 안돼서 하루에도 초콜릿을 몇 개씩 까먹으며 끼니를 때웠다. 매 시험 기간마다 내가 겪었던 일련의 과정들은 나의 육체를, 정신을 빠른 속도로 혹사시켰다. 그러니 학년이 올라가며 성적이 떨어졌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는 한 번 감기에 걸리면 몇 달 동안 약을 먹어도 낫지 않을 정도로 몸이 약해졌다. 감기약을 먹고 야자 시간에 헤롱 대던 기억이 선명한 걸 보면 거의 1년 내내 그렇게 지냈던 것 같다. 그래도 수능날까지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수능날의 기적 같은 건 없었고, 쭉쭉 떨어져 온 모의고사 점수보다도 수능 점수가 더 낮았다. 내 점수로 갈 수 있는 수도권의 대학들을 지원했고 다행히 합격했다. 내가 쏟은 노력에 비하면 아쉬운 결과였으나 그래도 만족했다. 그 상태로 재수를 할 용기는 전혀 없었기에 어디라도 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부모님은 내가 수도권의 대학을 간다는 걸 나보다 더 아쉬워하셨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딸의 대학 이야기를 할 때면 꼭 부연 설명을 붙이시곤 했다. “온정이가 1학년 때만 해도 연세대니, 한양대니 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는데.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다가 몸이 약해져서 그만....”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한참 동안 부모님은 말씀하시곤 했다. 넌 재수했으면 훨씬 좋은 대학 갔었을 텐데,라고. 그저 흘려들으려 노력했지만 나는 종종 울분이 터져서는 부모님께 화를 냈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시면서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냐고, 그렇게 지친 몸과 마음으로 재수까지 했다면 난 정말 못살았을 거라고 말이다. 나는 오히려 대학생이 된 뒤로 더더욱 나의 학교에 만족하며 다녔다. 딱 나의 그릇에 맞는 학교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시험 스트레스에 괴로워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공부하면 괜찮은 학점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만일 더 좋은 대학교에 갔다면 고등학생 시절 못지않게 힘들게 공부를 했을 것이다. 내가 만족하며 다니니 부모님도 해가 갈수록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들 마음속에 아쉬움이라는 자리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냥 왠지, 알 것 같았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서른 즈음에 나의 정신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었다. 그 정도로 심각한 건 고등학생 때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이상했던 것은 나의 우울이나 불안이 정점을 찍을 때마다 고등학생 때의 고통이 물밀려 오듯 떠올랐다는 점이다. 시험을 앞두고 소리를 지르던 기억, 두통을 참기 위해 침대에서 이불을 뜯던 기억들... 잊고 살았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기억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럴 때면 그때의 나 자신이 너무 불쌍해서, 폭우가 쏟아지는 날 창문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내 볼 위에도 눈물이 주륵주륵 흘렀다. 현재가 힘들어서 울다가 과거가 떠올라서 울다가를 반복했다.
그렇게 나의 정신적 아픔은 꽤 오래도록 지속되어 어느 날은 엄마와 그 이야기를 나누기에 이르렀다. 내 말을 듣던 엄마는, 그렇게 오래된 일인데 왜 아직도 너를 힘들게 하는 거냐며 처음에는 잘 이해를 하지 못하셨다.
“엄마. 나도 내가 다 잊고 살았다고 생각했어요. 아니, 실제로 잊고 살아왔지. 그런데 지금 불안증까지 찾아온 상황이 그때랑 겹치면서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것 같아요. 근데... 어제 일처럼 너무 생생하게 떠올라. 그래서 괴로워.” 대화를 하면 할수록 엄마는 나를 이해했고 결국에는 눈물을 보이셨다. 그렇게 힘들었던 너를 보듬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엄마가 많이 부족했다고.
사실 그 당시 엄마와 아빠는 나에게 할 수 있는 만큼 충분히 하셨다. 매일 극도로 예민한 나의 눈치를 보느라 고생하셨고, 나를 걱정하느라 잠도 못 주무시는 날이 허다했다. 그렇게까지 힘들게 공부하지 말라고 나를 말리신 적도 많았다. 내가 아팠던 시절을 그나마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의 사랑 덕분이었다. 다만 딸이 공부를 잘하길 바라는 부모님의 속마음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부모님에게서 은밀하게 흘러나오는 ‘기대’라는 콧바람을 종종 느꼈다. 그것은 나 자신의 욕심과 맞닿아 아주 큰 바람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번에 발급받은 생활기록부를 휴대폰에 저장해두었다가 친정집에 간 날 엄마에게 보여드렸다. “엄마, 나 1학년 때 공부 엄청 잘했지?”라며 깔깔거리며 웃었다. 내가 예상한 엄마의 반응은 역시 “맞아, 너 공부 진짜 잘했었지. 이때 점수면 훨씬 좋은 대학 갔었을 텐데.”였다. 이제는 그런 말을 들어도 그저 웃어넘길 만큼의 여유가 있었기에 엄마에게 보여드렸던 것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내 점수를 한참 동안 쳐다보시더니 다소 퉁명스럽게 답하셨다.
“에휴, 이렇게나 공부를 잘했었네. 이게 사람이야?”
예상치 못한 엄마의 낮은 목소리에 나는 조금 당황하여 내가 생각했던 엄마의 멘트를 대신하기에 이르렀다.
“그치, 엄마. 내가 이 점수 그대로 3학년까지 갔으면 내가 훨씬 더......”
“이놈의 점수가 뭐라고. 너 이것 때문에 그렇게 힘들고 아팠었잖아.”
“어...? 어, 그랬죠. 그때 많이 힘들긴 했지. 하하하”
엄마의 눈이 다소 슬퍼 보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엄마의 표정을 떠올리며 나는 눈물을 훔쳤다. 감격과 감사함과 죄송함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감정이었다. 부모님은 항상 그 무엇보다도 나의 행복을 바라왔지만, 그 한켠에는 어쩔 수 없는 욕심을 지니고 계셨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시진 않았지만 나는 언제나 그걸 느꼈더랬다. 하지만 이제는 점수보다도 그 안에 담긴 나의 사연을 먼저 읽게 된 엄마를 보며 생각했다. 이건 순도 100%라고. 정말이지, 오롯이 나의 행복만을 바라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나는 보았다. 그 속에 엄마는 일말의 욕심도 숨겨두지 않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