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청춘

by 온정

서른둘, 새해를 알리는 구정이 지나고 난 뒤 나의 첫 에세이가 세상에 나왔다. 소식을 들은 많은 이들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축하의 말만큼이나 많이 들은 이야기가 '대단하다'는 말이었다. 그 말에 나는 종종 "에이, 너만큼 대단하겠어?"라고 답했다. 이는 빈말이 아니었다. 내 주변을 돌아보니 하고 싶은 일을 쫓아서 무언가 성취해내고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친구 H는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쯤 케이블 티비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왔다. 더 보이스 코리아라는 프로였는데, 티비에 나오는 그녀를 보며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그녀는 남다른 음색을 가졌고 노래 역시 눈에 띄게 잘했다.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은 나지만 H가 교실 커튼 뒤에서 노래를 불러주던 기억은 선명하다.

그때부터 난 그녀가 티비에 나올 만큼 유명한 가수가 되는 상상을 종종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분야로 대학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속으로 많이 아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음악 하는 길이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오디션 프로에 나왔을 때는 "아직 음악의 끈을 놓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에 너무나도 반가웠다. 자주 연락을 하는 사이도 아니었지만 나의 SNS에 부지런히 공유하고 주변에 알렸다. 내 친구라고. 이 친구 정말 노래 잘한다고 말이다. 아는 사람이 티비에 나왔으니 자랑하고 싶은, 그저 그 정도에 국한된 마음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이 친구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충분한 재능을 가졌음에도 그 길로 가는 데에 머뭇거려야 하는 우리 사회와 현실이 싫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녀의 능력을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지금 H는 꽤 든든한 팬층을 확보한 어엿한 가수로 살고 있다. 그녀가 인디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왠지 희망과도 같았다. 스무 살이 넘어서도 무언가 도전해볼 수 있다고. 오히려 그때가 시작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난 그녀의 앨범이 나올 때마다 마치 나의 일처럼 기뻐하고, 그녀의 공연에 가서는 "팬이에요!!", "너무 좋아요!!" 따위의 소리를 지르다가 친구들에게 창피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친구가 아니었어도 분명 나는 그녀의 팬이 되었을 것이다. H의 노래를 들을 때 소프트렌즈만치의 콩깍지도 없다고, 난 자부한다. 이렇게 좋은 노래를 선사하며 많은 이들을 위로하는 그녀가 만일 노래하는 일을 그만두었더라면, 그 얼마나 큰 손실인가.



또 다른 친구 D는 소위 말하는 '이대 나온 여자'다. 그녀는 학창 시절 때부터 의류 디자인에 관련된 일을 하길 원했다. 그래서 재수까지 하여 좋은 대학의 원하는 학과를 나온 뒤 대기업에 취직했다. 전형적인 성공 노선이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못 가고, 대기업에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이 항상 있었던 나에게 D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일찍부터 진로를 정하여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학과가 학과인지라 D는 대학생 시절부터 무척이나 바빴다. 모임에도 종종 불참했던 그녀는 디자인을 하고 옷을 만드느라 종종 밤을 새운다는 푸념을 던지곤 했다. 그럼에도 D의 눈빛은 반짝거렸다. 아마 하고 싶은 일에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정이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직 후에도 매번 야근을 하느라 얼굴을 비추지 못하던 그녀가 술자리에 나타나 함께 거하게 술을 마셨던 날. 그녀의 입에서 나온 고민거리는 다소 평범해 보였지만 그 깊이는 남달랐다. 아무리 야근을 많이 하더라도 D는 견딜 만하다고 했다. 하지만 디자이너임에도 불구하고 진짜 내가 원하는 옷을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은 자꾸만 다른 생각을 품게 한다고 말했다. 여성복을 디자인하고 싶어 하는 그녀는 기능성 아웃도어를 만드는 스포츠 브랜드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D는 결국 스포츠 브랜드의 디자이너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기능성 아웃도어는 말 그대로 기능성은 좋겠지만 예쁘기까지는 쉽지 않다. '그럼, 기능성 소재를 사용해서 예쁜 옷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것이 그녀의 브랜드 창업 아이디어였다. 그녀는 이제 패셔너블하면서도 아웃도어처럼 편안한 여성복을 만든다. 가령 커피를 흘려도 톡톡 털어내면 그만인 블라우스라든지, 가벼우면서도 무려 물세탁이 가능한 가죽 재킷 같은 것들 말이다.


대기업이라는 단단하고도 안정적인 이글루를 제 손으로 깨고 나온 그녀는 종종 장난처럼 이야기한다.

"얘들아. 월급쟁이가 최고야!!"

하지만 그녀가 힘들어도 다시 월급쟁이로 돌아가고 있지 않는 이유는 하고 싶은 일을 놓치기 싫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한번 부모님 집에서 독립하면 다시 들어가기 싫듯, 이미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맛을 깨우친 사람이 입시 미술을 하러 돌아가기 어렵듯 말이다.


글이 너무 길어질까 두 친구만을 예로 들었지만 여전히 내 주변에는 무언가를 새롭게 도전해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과 출신의 뮤지컬 배우, 제약회사 출신의 방송댄스 강사, 평범한 직장인이자 와인바 사장, 그리고 화학 연구원이자 작가인 나까지.


우리는 모두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까? 그 끝은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무언가에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일 것이다. 도전이란 다소 불편한 일이다. 시작은 창대할 수 있으나 그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는 것은 더더욱 녹록지 않다. 하지만 나는 지금이, 우리의 청춘이 분수처럼 하늘로 뿜어져 나가기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한다.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잘 모른 채 10대, 20대를 지나온 내가 지금 30대가 되어 꿈을 찾았다. 찬란하게 빛나는 우리의 청춘이 포기를 모르길. 깨지고 아파도 천천히 원하는 것들을 찾아가길 바라본다.



커버 사진/ 필름 카메라 X-300으로 찍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행복과 욕심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