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애통하다 느끼는 순간들이 종종 있는데, 바로 달달한 케이크를 먹을 때나 업무 중 잠이 쏟아질 때이다. 그럴 때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찾지만 나는 카페인 취약 계층이다. 커피를 마시면 술을 마신 사람 마냥 거하게 취해버리거나, 밤에 잠을 못 자는 건 역시나 예삿일. 맥주도 IPA라는 쓰디쓴 맥주만 골라 먹고, 한약도 무려 맛있게 꿀떡꿀떡 넘기는 나로서는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날은 남편이 직장 동료에게 디카페인 커피를 선물로 받아왔다. 디카페인 커피의 존재를 알긴 했지만 직접 접해본 건 처음이었다. 그전엔 도전해보려다가도 그만 두곤 했다. 어려서부터 커피를 못 마신다고 세뇌를 해놓았더니 커피 향만 맡아도 괜스레 알딸딸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 그래도 그가 가져온 디카페인 커피는 임산부도 복용 가능하다고 하고, 보리 반 커피 반이라기에 바로 뜨거운 물을 끓여 티백을 올려보았다. 맑은 물속에서 물고기가 긴 꼬리를 흔들며 유영하듯 밤색의 커피가 스르륵 번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중력을 거슬러 콧속으로 날아오르는 쿰쿰한 향. 한 모금 머금고 나니 느껴지는 보리와 커피의 구수함. 파도가 밀려들어왔다 나간 듯 오늘 먹은 것들을 잊게 해주는 깔끔함. 아, 이 맛이로구나...!
서른둘이 될 때까지 커피를 두 모금 이상 마셔본 적이 없었다. 그날은 인생 처음으로 커피 한 잔을 모두 마셨다. 커피를 마실 줄 아는 남편은 커피보다는 보리차에 가까운 맛이라고 했다. 역시 카페인이 빠진 커피는 그저 밍숭맹숭할 수밖에 없는 걸까. 하루는 반갑고도 아쉬운 그 마음을 직장에서 뱉어내었다. 그랬더니 내 말을 들은 동료가 다정하게도 사무실에 인스턴트 디카페인 커피를 구비해주었다.
아메리카노를 제대로 타본 적이 없어서 촌스럽게도 우왕좌왕하며 커피를 탔다. 잠이 쏟아질 때쯤 한 모금 들이켰는데, 정말이지, 쓰읍, 쓰읍, 씁쓸했다. 우와. 이거, 진짜 커피맛이네? 동료가 디카페인 커피 맛이 궁금하다며 먹어보았는데 일반 아메리카노보다 오히려 더 쓴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 입에도, 나의 수면 요정의 입에도 꽤 잘 맞는 디-카페인 커피를 찾은 것이다. 커피 한 모금에 크크큭, 커피 두 모금에 으으음, 세 모금, 네 모금 아낌없이 들이키며 생각했다.
'나도 이제 커피 마실 수 있어!!'
다음에는 꼭 비스킷과 함께해야지. 커피에 콕하고 찍어먹어야지. 일상의 즐거움이 이렇게 하나 늘었다. 딱 한 가지 늘었지만 매일 반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꽤나 큰 변화인 셈. 스타벅스에 가도 시킬 음료가 없어 어물쩡거리던 나는 이제 당당하게 디카페인 라테를 시킬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그 사실이 감격스러워 입에 커피를 댈 때마다 국밥을 들이켜는 아저씨마냥 거나한 소리를 낸다.
내 나이 서른둘. 앞으로 몇 살까지 살게 될지는 모르겠다. 별 탈이 없다면 (조금 끔찍하지만) 아마 90살까지는 살지 않을까? 앞으로 두 배 남은 생을 살며 무수히 많은 종류의 경험들을 할 것이다.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다가도, 그것이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일일 때면,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소소하기에 각별한 일들이 나의 일상에 종종 등장해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