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정님, 실례지만...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그럼요. 뭐든 편안하게 물어보세요.”
“온정님 학점도 좋고, 영어 점수도 좋고, 일도 잘하시잖아요. 더 좋은 곳으로 가실 수 있을 텐데... 그쪽으로 이직하시는 이유가 따로 있나요?”
지금껏 종종 들어온 패턴의 질문이다. 실례일 게 아니라 사실 은근히 기분 좋아질 때가 더 많다. 열정을 쏟으며 살았지만 결국 네임 밸류로 빛을 보진 못했으니까. 어느 그룹에서든 ‘너는 더 가치 있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듣는 게 나에게는 심장 뛰는 일이 되어버렸다. 바닥 언저리에서 참방 거리던 자존감이 살짝이나마 차오르는 기분이었달까.
동료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한 데에는 사실 특정한 이유가 있었다. 이번에 갑작스레 이직을 하게 되면서 경력이 틀어졌기 때문. 석사 겸 연구실 3년, 회사 연구직 2년, 화학 분석 계약직 2년, 1년 공백, 다시 화학 분석 계약직 6개월.... 여기까지가 나의 경력이다. 뒤죽박죽이지만 나름의 일관성은 있다. 그러나 다음 행선지는 사무직. 채용자는 설명했다. 단순 업무의 연속이며 일하기 편할 거라고. 이직하는 순간 나의 연구 경력들은 갈 곳을 잃는다. 많은 이들이 걱정했다. 아쉽지 않겠냐고. 너라면 더 좋은 데 갈 수 있을 거라고. 너 연구하는 거 좋아하지 않냐고...
2년 전만 하더라도, 그래, 아까웠다. 이런 대접받으려고 내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했나 생각했다. 더 근사한 일을 하면서 돈도 많이 주고 복지도 보장된 직장에 가고 싶었다. 혹시 나도 저곳에 가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초장에 높은 장벽을 넘는 게 나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이는 체육 시간에 높이 쌓인 뜀틀을 앞에 두고 느꼈던 감정과도 같았다. 넘고픈 열정은 굴뚝같지만, 뜀틀 위에 손바닥을 짚는 순간 두려움에 힘이 풀려버리는. 어찌 보면 내 삶은 언제나 이런 형태의 연속이었던 듯하다. 일단 낮은 장벽을 넘은 뒤 나를 모두 쏟아버리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높은 곳을 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려는 사람처럼.
이제껏 지나온 학교, 직장에서 인정받은 이유도 그 덕분이었을 것이다. 한 곳에 오래 소속되어본 적이 없음에도 언제나 번아웃 상태로 그곳들을 떠났다. 졸업을 할 때도, 퇴사를 할 때도. 내 모든 체력과 감정을 끌어 모아 겨우 2년 정도를 채우고 나면 한 줌의 재로 남았다. 그럴 때면 인정과 함께 안타까움이 내 뒤를 쫓아오곤 했다. 어쩌면 그것들이 그나마 나를 버티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좀 더 괜찮은 사람일지도 몰라, 생각하면서.
혹시라는 희망들이 오히려 나를 가두고 있는 게 아닐까, 천천히 깨닫는 중이다. 이제는 좀 더 현실에 살아보려 한다. 어떻게 하면 2년짜리 불꽃으로 살지 않을지 고민하는 것. 잡히지 않는 허공만 휘젓는 일은 그만두는 것. 연구원으로서의 가치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지만, 나 자신의 가치는 오랜 시간 천천히 올릴 수 있도록 말이다.
“저도 제가 더 잘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생각만큼 녹록지가 않더라고요. 더 좋은 데 갈 수 있지 않을까? 상상만 하는 데 이제 지쳐버렸어요. 그래서 좀 놓아보려구요. 하다 보면, 또 길이 보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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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들에 부끄럼은 없다.
최선을 다했지만 높은 곳엔 가닿지 못했다.
암벽을 타다 보면 자꾸만 미끄러졌다.
위를 바라보고 있자면
열등이 먹구름처럼 몰려왔다.
은연중에 이런 결말을 종종 생각했다.
결국 내려놓는 것.
평지에 앉아 편히 경치를 감상하는 일.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나는 또 이따금씩 하늘을 갈망할 것이다.
하지만 평지에서도 나만의 텃밭을 잘 일구어갈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믿어본다.
아슬아슬 매달려 고개를 타던 이 시절을
훗날 되돌아보았을 때,
그저 웃기를.
너무 미화해서 보지도,
너무 안타깝게 보지도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