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에 콤플렉스가 있었다. 열 손가락 모두 짜리몽땅해서 학창 시절에는 개구쟁이 친구가 새우깡이라며 놀리기도 했더랬다. 액세서리 중에서도 반지는 끼고 다닌 적이 없다. 이 손을 꾸미는 건, 딱 호박에 줄 긋는 격이라 생각했으니까.
결혼을 하며 결혼반지라는 걸 맞추었으니 이 못난 손에도 작게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장착하게 되었다.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는 그 순간까지도, 과연 내가 이 반지를 끼고 다닐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그러나 무부녀가 유부녀의 인생에 적응해가는 동안 자연스레 반지 생활에도 적응해갔다.
뭐든 시작이 가장 어렵다 하지 않았나. 반지를 낀 뒤로는 친구들의 예쁜 손톱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결혼식 때 네일 아트를 받아보니 기분이 꽤 좋아지던데... 네일 아트라는 게 워낙 비싸기도 했지만 사실 나는 손톱을 꾸밀 수 없는 운명이었다. 연구원으로 살며 손이 성할 일이 없었기 때문. 어느 2년 동안은 온갖 거칠기의 사포를 동원하여 시료를 가공하는 일을 매일같이 해야만 했다. 마이크로미터 단위까지 맞춰가며 사포를 갈다보면 나의 손톱은 투명한 부분까지도 함께 갈려버리기 일쑤였다. 내 손에 무언가 있다는 건 마냥 거추장스러운 일. 누군가의 반짝거리는 손톱을 발견하면 괜스레 한 번 만져보고는 예쁘다고 말했다. 부러움의 감정이 들 새도 없었다. 그냥 나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 먼 이야기가 가까운 이야기가 된 건 업무가 바뀌면서였다. 비슷한 분야이긴 하지만 주로 현미경 측정하는 일을 하게 되면서 손을 험하게 쓸 일이 없어졌다. 바로 옆 사무실에는 동료가 한 명 있는데, 네일 아트가 취미인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손톱 디자인을 바꾼다. 그녀의 맨 손톱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언제나 그래 왔듯 그녀의 손톱을 보며 예쁘다고 이야기하다가, 이제는 나도 네일 아트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인터넷 광고는 가끔 소름 돋도록 나의 생각을 잘 읽어서 인스타그램을 켤 때마다 네일 스티커 광고가 떴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길래 냉큼 결제를 했다. 스티커 형태의 네일을 내 손톱 위에 붙이고, 크기에 맞게 다듬어주고, UV램프로 경화시켜주면 끝. 완성시킨 나의 손톱은 서툰 모양새였지만 나름 괜찮아 보였다. 밍숭맹숭했던 내 손톱에도 색채라는 게 생기다니. 괜스레 손가락을 쭉쭉 펼쳐두고 감상하는 일이 잦아졌다.
못생긴 손가락이 예뻐 보일 지경에 이르자 생각했다. 호박에 줄을 긋는 격이면 뭐 어때. 무엇이든 결국 자신이 만족하면 그만일 일이다. 학창 시절 콤플렉스가 지겹도록 많았다. 손이 못생기고, 다리가 두껍고, 피부가 안 좋고, 가슴이 작아서 억울했다. 20대 때는 '컨버스 하이'나 발목을 덮는 워커를 간절히 원했지만 두꺼운 종아리가 부각될까 두려워 시도조차 못했다. 작은 가슴을 감춰보겠다고 억지로 통통한 브라를 입기도 했다. 그때의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이라도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음에 다행일 따름이다. 내가 단점이라고 치부했기 때문에 단점이 되어버린 것들. 이제는 단점도, 장점도 아닌 그저 ‘나’ 일뿐임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