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그림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나의 아가에게
자동차 그리는 것을 가장 좋아하던 28개월 무렵의 너
여행아, 엄마야.
학교에서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과 즐거운 시간 보내고 있니?
오늘 네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엄마가 무얼 했는지 알려줄까? 엄마는 네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그린 그림들을 사진으로 찍어서 정리했단다. 시간 순서대로, 그리고 주제별로 차곡차곡.
너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아주 많이 좋아했어. 태어난 지 7개월쯤 되었을 때부터 그 조그맣고 통통한 손으로 크레파스를 야무지게 쥐고는 그림을 그렸지. 처음에는 하얀 종이에 점 하나 찍고 줄을 긋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형태가 또렷한 작품들까지 그릴 수 있게 되었단다. 하얀 종이에 서툴게 자리한 점 하나도 네가 그린 것이라는 이유로 엄마 눈에는 너무나도 특별해 보였어. 그래서 단 한 장도 버릴 수가 없어서 너의 그림을 모두 모아두었지. 아빠가 엄마에게, 이러다가 네가 똥을 싼 기저귀까지 보관할 기세라고 농담을 던질 정도였단다.
너는 하루도 빠짐없이 크레파스를 잡았고 한 자리에 앉으면 몇 장씩이나 그림을 그려냈어. 그런데 그러다 보니 고민이 생기지 뭐야? 시간이 지날수록 쌓여가는 그 모든 종이들을 어디에 보관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 말이야. 그래서 엄마는 원본을 모두 보관하는 대신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남기기로 했어. 네가 그린 그림과 함께 그즈음 네가 한 행동이나 했던 말을 함께 적어두었지.
아쉽게도 네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린 모든 그림이 남아있지는 않아. 네가 지금보다 어렸을 때에는 고개만 들어도 옹알이만 해도 종이에 줄 하나만 그어도 초보 엄마인 나에겐 모든 것이 신비였어. 그래서 네가 잠든 밤이면 하루의 기억을 글과 사진으로 남기곤 했지만 네가 커가면서 엄마가 너의 성장을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 같아. 매일 남기던 기록이 하루 건너 하루가 되고 이어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그러다가 몇 달에 한 번이 되고 말았지.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흘렀어. 그리고 며칠 전 엄마는 문득 깨달았지. 네가 꽉 채운 8살이 된 지금까지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네가 이 편지의 존재를 언제쯤 알게 될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언젠가 어른이 된 네가 여유롭게 인생을 되돌아볼 날이 되었을 때, 어린 네가 그린 그림들과 조금 더 젊은 엄마가 쓴 편지들을 보며 과거를 추억하면 좋겠다. 너에게 보낼 편지를 쓰면서 엄마도, 그동안 네가 그린, 그리고 앞으로 네가 그릴 그림들을 천천히 다시 한번 즐겨볼게.
2023년 3월 21일(화)
너와 너의 그림을 사랑하는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