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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Apr 13. 2024

두바이의 무함마드, 당신의 꿈을 응원합니다

[기고]브릭스 매거진


함께 읽을거리



“내 꿈은 말이죠, 에미리트 항공사의 승무원이 되는 거예요.”


점검을 위해 맡겨두었던 자동차를 찾으러 정비소로 향하는 길, 나는 오랜만에 택시를 부르기 위해 핸드폰 앱을 열었다. 팬데믹을 기점으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도 온라인으로 누릴 수 있는 서비스의 폭이 훨씬 넓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처럼 생필품을 파는 곳들은 온라인으로 주문한 제품을 단순히 원하는 장소로 배달해 주는 것을 넘어 주문에서부터 배송까지 소요되는 시간마저도 획기적으로 줄여나갔는데 한 대형마트가 60분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자 곧이어 또 다른 곳에서는 15분 배송을 도입하는 등,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동안 없어도 잘만 살아왔지만 막상 생기니 이용하게 되는 혜택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었다. 뿐만 아니다. 택시와 같은 이동수단을 온라인으로 예약해 이용하는 것도 훨씬 수월해졌다. 타국의 여행지에서 종종 타곤 했던 우버가 두바이에도 존재하긴 하지만 이날 내가 택시를 부르는 데 사용했던 것은 카림(Careem)이라는 이름의 앱이었다. 지난 2012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탄생한 카림은 중동 지역 최초의 유니콘 기업*으로 현재, 아프리카의 모로코에서 서남아시아의 파키스탄에 이르는 총 10개국 70여 개의 도시에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카림은 두바이 도로교통국(RTA: Road and Transport Authority)과의 조인트벤처 형태로 설립한 할라 라이드(Hala Ride)를 통해 택시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으며 내가 이용한 것이 바로 이 서비스였다.


*유니콘 기업: 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창업 10년 이하 비상장 스타트 기업


일 년의 반 이상이 절절 끓는 기온을 자랑하는 탓에 바깥을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인데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은 서울만큼 촘촘하게 뻗어있지 않아 두바이에서는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갈 때도 살기 위해 운전대를 잡을 수밖에 없는 날들이 많았다. 며칠 동안의 불편함을 뒤로하고 몇 년 간 동고동락 해 온 나의 자동차를 다시 만나러 가는 길,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택시에 몸을 싣자마자 앞 좌석의 운전사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주 쾌활한 인상을 지닌 젊은 남자였다. 그는 내가 안전벨트를 미처 다 채우지도 않았는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기분은 어때, 두바이에는 놀러 온 것이냐 아니면 여기에서 아예 살고 있니, 무슨 용건으로 목적지에 가는 것이냐 등등. 한 번 열리니 닫힐 줄 모르는 그의 입 때문에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조금 귀찮기도 했다. 진 빠지는 아침을 보낸 터라 정비소에까지 가는 동안에는 그냥 입 다물고 조용히 앉아 소위 멍이나 때리며 이동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을 거는 이에게 대답을 아예 안 하는 것은 너무나도 미안한 일이라는 생각에 나는 한 마디, 두 마디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 둘은 그야말로 본격적으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무함마드. 파키스탄에서 왔다고 했다. 자기네 나라에서는 돈을 벌기가 힘들어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 넘어온 것인데 영어를 아예 못하면 이 도시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저임금 막노동밖에 없어서 고국을 떠나기 전 일 년 동안 영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단다. 공부는 어떻게 했냐고 묻자 학교나 학원에 다닐 돈은 없어서 유튜브를 보면서 했다고, 그렇게 해서 기초적인 영어를 배운 후에 두바이로 이주해 택시 기사 일자리를 얻었다고 말해주었다.


“내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미안합니다.”


한참 동안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던 그가 불쑥 말했다. 그런데 부족하긴 뭐가 부족합니까.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영어는 발음이며 문법까지도 꽤나 정확해서 의사소통을 하는 데 전혀 문제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훌륭했다. 외국인의 비율이 90%에 육박한다는 아랍에미리트는 온갖 나라에서 온 이들이 각자 자기네 나라의 악센트가 섞인 영어를 사용하며 살아가는 나라다. 게다가 이 나라에서도 가장 국제적인 도시인 두바이에서는 특히나 더 에미라티를 만나 아랍어로 소통할 일보다 타 국적의 사람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기에 이제는 나도 그 어떤 독특한 발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살아가던 참이었다. 하지만 정말이지 이 택시기사님의 영어는 그중에서도 꽤나 훌륭한 편에 속하는데 실력이 부족하긴 뭐가 부족하다는 말인가. “부족하긴요, 정말 영어 잘하시네요.”라고 나는 진심을 담아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는 느껴질 듯 말 듯 뿌듯함이 담긴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이제 2년이 되었어요. 파키스탄에서 공부를 시작하고 두바이로 넘어왔는데 택시기사가 된 후에는 일을 끝내고 나면 너무 힘들어서 공부를 하기 힘들더라고요.”


그의 말에 의하면, 회사에 속한 택시 한 대를 두 명의 기사가 번갈아 가며 운전을 한다 했다. 자신은 새벽부터 다음 날 오후까지 열두 시간가량을 운전하는데 일을 마치고 나서 영어 학원에 다녀볼까도 생각했었지만 피곤함 때문에 도저히 그렇게는 하기 힘들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학원에 가는 대신 그가 택한 방법이 바로 택시 운전을 하는 동안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고. 택시를 탄 손님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손님이 없는 동안에는 영어 라디오 방송을 켜두고 진행자가 하는 말을 따라 말하는 방식으로 연습을 해오고 있다는 이야기에 나는 쉬고 싶은 나에게 말을 거는 그를 잠시나마 귀찮다고 느꼈던 것을 후회했다.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고작 2년밖에 안 되었다고요? 저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공부를 한 줄 알았어요.”


이번에도 나는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건넸다. 가족도 오랜 친구도 없는 타국에서 아직은 넉넉한 생활을 할 수도 없고 원하는 공부마저 마음껏 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차선책을 찾아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그를 보니 부끄러워지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내가 그의 영어를 칭찬하며 나도 영어권 원어민이 아니라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이야기를 계속 나누자고 말하자 그는 기쁨을 담은 얼굴로 자신의 진짜 꿈을 이야기해 줘도 되겠냐고 물었다.


“내 꿈은 말이죠, 에미리트 항공사의 승무원이 되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우리가 타고 있던 택시가 에미리트 항공사의 비행기가 되어 하늘 위로 붕 날아오르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교통체증이 시작될 시간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어딘가에서 교통사고가 난 것인지 길은 밀리고 있었고 그런 상황이 평소 같았으면 못마땅했을 법도 한데 그 순간만은 길이 막혀 목적지에까지 도착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그리고 에미리트 항공이 두바이에서 서울까지도 직항 편을 운항하는데 언젠가는 당신이 근무하는 그 비행기를 타고 두바이에서 서울로든, 아니면 서울에서 두바이로든 여행을 해보고 싶다고, 그리고 당신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하겠노라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내가 자동차를 맡겼던 정비소에 가려면 좁은 골목을 몇십 미터쯤 걸어 들어가야 했지만 차를 되돌려 가는 길이 복잡할 것 같아 골목 입구에서 내리려고 했더니 그가 날도 더우니 정비소 앞까지 굳이 나를 태워다 주겠다는 거였다. 괜찮다고 해도 계속해서 데려다주고 싶다는 이야기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결국 정비소 문 앞까지 가서 택시에서 내렸다. 그 좁은 길에서 어렵사리 차를 돌려 나가는 택시를 향해, 그리고 그 안에 타고 있을 미래의 에미리트 항공 승무원을 향해 나는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날만은 택시를 불렀던 앱을 다시 열고 팁을 더 듬뿍 얹어주었다.


"무함마드, 그 꿈, 꼭 이룰 수 있을 거예요. 반드시 그렇게 되기를 기도할게요!"


수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두바이 곳곳에서 이 도시를 움직이고 있다. 그들이 흘린 땀으로 인해 깨끗하게 관리되는 거리 풍경
이주 노동자들의 수고 덕분에 늘 깨끗하게 유지되는 두바이의 쇼핑몰(좌)과 전통시장(우)
자칫 쉽게 더러워질 수 있는 해변마저도 휴지 조각 하나 없이 깨끗하다



[기고처]브릭스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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