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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Dec 23. 2023

미션! 두바이에서의 크리스마스, 동심을 지켜라!

[기고]브릭스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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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첫째 딸이 완전 사춘기 여중생 같아졌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았던 아이가 요즘엔 표정마저 어둡다는 거였다. 열 살 아이의 얼굴이 어두워진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인즉슨, 동생의 지인이 자신의 아이가 산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 사건을 카톡으로 적어 보냈고 조카가 우연히 그 메시지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란다. 유독 해맑은 데다 분명 작년까지만 해도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며 정성스레 손 편지를 쓰던 아이였는데 올해는 편지는커녕 우울한 기운을 내뿜고 있을 것을 상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동심을 잃는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사실, 동심을 잃을 기로에 선 것은 나의 첫째 조카뿐만이 아니다. 제 사촌 누나보다 한 살 어린 아홉 살 우리 아이도 요즘, 산타의 존재를 진지하게 의심하고 있다.


산타는 정말로 있나요?


산타는 정말로 있나요?

연말로 접어들면서 우리 집 꼬마는 같은 반 친구들과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던 것 같다. 국제학교인지라 학생들의 국적은 다양하고 그중에는 이슬람교를 믿는 아이들도 상당수 섞여 있다. 하지만 자국민보다 외국인의 비율이 현저히 높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있는 학교라서 그런지 기독교 신자가 아닌 아이들에게도 크리스마스는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주제인듯하다. 겨울 방학이 시작된 이래 시간이 남아도는 우리 아이와 함께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의 친구네 집으로 놀러 다니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종교불문, 어느 집이든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와 화려한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로 반짝이고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크다. 요즘 우리는, 귀국 이삿짐을 줄여보겠다고 한국에서 가져온 큼지막한 트리며 장식들까지 빠르게 처분해 버린 탓에 썰렁해진 우리 집보다 알라에게 기도를 올리는 친구네 집이 더 성탄 분위기로 가득한 아이러니 속에서 두바이에서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있다.


짐작해 보건대, 아이들이 나누던 이야기의 팔 할 이상은 크리스마스 선물에 관한 것이었을 게 분명하다. 작년에 너는 무얼 받았니, 올해는 어떤 걸 받고 싶니, 뭐 그런 주제들. 그러다가 형이나 누나가 있는 친구들이 산타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했을 것이고 그 이야기를 듣던 우리 아이는 어라? 혹시? 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결정타는 두바이에서 만난 친한 형아가 날렸다. 작년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아빠의 핸드폰을 보다가 본인이 산타에게 요청했던 레고랑 똑같은 장난감의 배송이 시작되었다는 아마존 쇼핑몰의 메시지를 우연히 발견했다는 것이다. 여하튼 이래저래 핸드폰이 문제야. 그 이후, 제 부모가 아마존이라는 글자가 선명한 쇼핑몰 박스, 그것도 자기가 원했던 레고가 들어가면 딱 알맞을 만한 크기의 박스를 몰래 내다 버리는 장면까지 목격하게 된 그 애는 산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하게 되었고 그 일을 우리 집 꼬마에게까지 전해준 것이었다.


“엄마, 산타 할아버지 진짜 있어? 엄마랑 아빠가 크리스마스 선물 사주는 거 아냐?”


더 늦기 전에 오늘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문해야지라고 생각하던 참이어서 그랬나? 내 앞에 불쑥 던져진 질문에 흠칫 놀랐다. 이런 날이 언젠가 올 것이라 예상하기는 했지만 막상 의심에 찬 얼굴을 맞닥뜨리고 나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흔들리는 마음을 숨기기 위해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나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산타는 당연히 있고 엄마랑 아빠가 며칠 전에도 산타 할아버지랑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가끔은 다 큰 형님처럼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하지만 그래도 아직 어린지라 엄마의 거짓말에 금세 행복한 표정이 된 아이는 신이 나서 제 방으로 달려들어갔다. 오늘도 무사히, 후유~


아이가 우리 집 거실 한편에 만들어 놓은 산타를 위한 공간


산타 할아버지께




산타 할아버지께,


올해도 저는 정말 착한 아이였어요.

제가 받고 싶은 선물은 이거예요. 아래 중에서   아무거나 다 괜찮아요.


- ○○레고랑 ○○○레고

- □□레고랑 □□□레고

- △△레고랑 △△△레고


그런데 제가 크리스마스 때 아부다비로 여행을 다녀올 거거든요? 26일에 돌아올 건데 선물은 두바이 집으로 배달해 주세요. 집에   와서 열어볼게요. 감사합니다!




제 방에서 한참을 사부작 거리던 꼬마가 얼마 후 Dear. Santa로 시작하는 편지 한 장을 들고 나왔다. 그러고는 온 집안을 뒤져 찾아낸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한데 모아 거실 한편에 산타 할아버지를 위한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올해는 우리 집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없어서 할아버지가 선물을 배달하러 왔다가 서운할 것 같다면서 곱게 써내려 간 편지 한 장과 빨간 산타 모자, 그리고 성탄 분위기 물씬 풍기는 크고 작은 소품들을 이리저리 전시해 놓은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다행이야. 조금만 천천히 자랐으면 싶었는데, 아직 산타를 믿는구나. 그런데 다음 순간, 내 귓가에 울려 퍼지는 한 마디가 나를 바짝 긴장하게 만들 줄이야!


“정말로 산타 할아버지가 있는 건지 확인해 볼 거야. 이번 크리스마스 때 우리 가족은 아부다비에 있을 거잖아? 그런데 만약에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부다비 호텔로 배달된다면 그건 엄마, 아빠가 산타라는 의미겠지? 하지만 만약, 선물이 두바이 집에 도착해 있다면 엄마, 아빠가 몰래 아부다비에서 두바이까지 왔다 갈 수는 없을 테니까 진짜로 산타가 있다는 거고.”


미션! 동심을 지켜라!

큰일 났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날 밤, 아이가 잠든 후 마주 앉은 우리 부부는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한 작전을 세웠다.

 

하나. 일단 더 늦기 전에 크리스마스 선물부터 주문한다. 단, 두바이 스타일로 통이 커진 아이가 비싼 레고를 한꺼번에 여러 개나 받고 싶어 하지만 원하는 것을 그렇게 쉽게 얻어내다 보면 버릇이 나빠질 수도 있으니 한 개만 주문할 것. 배송지는 집이 아닌 아빠의 사무실.

 

둘. 사무실로 도착한 선물을 자동차 트렁크에 숨겨 두었다가 여행 떠나기 전날 밤, 아이가 잠들었을 때 몰래 집으로 가지고 돌아와 아이가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긴다.

 

셋.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아부다비로 떠나는 날, 다 함께 짐을 챙겨 주차장으로 내려갔다가 엄마나 아빠 둘 중 하나가 집에 무언가를 깜빡하고 놓고 왔다면서 혼자서 되돌아간다. 그리고는 숨겨 두었던 선물을 꺼내 산타할아버지를 위한 공간에 올려둔다. 이때 아이가 산타할아버지께 드리겠다고 챙겨둔 선물(외국 동전)은 꼭 치울 것.

 

넷(에필로그). 올해도 무사히 동심을 지켜낸다! 움하하하하하핫!!!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두바이의 풍경


크리스마스의 마법

크리스마스가 정말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두바이를 떠날 날이 일 년 정도 남았을 때는 하루하루가 아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 들이마시는 공기, 지금 내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이 너무나 귀하고 아련하게 다가왔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한 달 앞으로 성큼 다가온 지금, 우리는 두바이를 향한 마음을 곱게 접어 추억의 상자 속에 하나하나 정리해 넣고 있다.


이 도시에서 지내는 동안 우리 가족에게는 좋은 일들이 참 많이도 찾아왔었다. 그리고 그 사이, 여섯 살이었던 아이는 아홉 살이 되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주는 것이 고맙고 대견하지만 난 아직도 가끔, 조금만 더 지금의 모습 그대로 머물러 주렴, 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를 바라본다. 산타 할아버지를 믿는 우리 아이가 두바이에서 보내는 마지막 계절에도 그 믿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믿음에서 솟아난 크리스마스의 마법이 다시 시작할 한국에서의 새로운 삶에 힘을 보태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기고처]브릭스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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