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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Apr 0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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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님, 바다 배꼽이 떨어졌어요. 축하드려요!"


어제 아침, 둘째의 배에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던 배꼽이 떨어졌다. 기저귀를 갈아입히면서 배꼽은 언제쯤 떨어지더라? 내가 실수로 잘못 건드려 설익은 그것을 억지로 떼내 버리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조심스러웠던 게 바로 그 전날의 일이다. 그랬던 것이 그 걱정을 한 지 하루 만에 똑하고 말끔하게 떨어져 준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둘째, 바다가 태어난 날로부터 주가 된다. 첫째 때는 하루도 넘게 자연분만을 시도하다가 제왕절개로 급선회하게 되었지만 둘째는 임신 사실을 순간부터 고민할 것도 없이 제왕절개를 생각이었다. 일반적으로 제왕절개 수술은 출산 예정일보다 주일쯤 앞당겨 진행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진통이 언제 시작될지 몰라서, 혹은 진통이 시작되었는데도 내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되지도 않았고 같은 목적으로 수술대에 오르는 것이 번째이니 어떤 과정을 얼마 동안 거쳐 나의 몸이 회복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어 출산할 날을 기다리면서도 큰 두려움은 없었다. 예상외의 복병은 소위, 서울의 빅 5 병원 중 한 곳에서 제왕절개를 하기로 한 것이었다. 노산인 데다 첫째를 낳던 날 수술 중에 혈압이 너무나도 심하게 떨어졌던 기억 때문에 내 마음, 가족 마음 편하자고 내린 결정이었건만 예상치 못했던 사태로 인해 정말로 그곳에서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 더 늦기 전에 다른 병원 몇 군데를 더 예약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끝까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가 부모님이며 동생, 친구들까지 함께 걱정해 준 덕분이었을까? 다행히 날짜만 하루 뒤로 미뤄진 3월 말의 어느 날, 예약했던 병원, 같은 교수님의 도움으로 나는 둘째 아이를 이 세상에 내어놓을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나의 자궁과 배를 갈라 아이를 꺼낸 터라 수술 후 며칠 동안은 혼자서 몸을 조금도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진통제의 힘을 빌어 통증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힐 수 있다는 사실을, 몇 주가 지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랜 세월 동안 쉽게 해 오던 너무나도 간단한 동작을 하루아침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전혀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무력감이 들어 눈물이 터지기도 했다. 게다가 그럴 리가 없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침을 해도 웃음이 나와도 수술 부위가 도로 터질까 봐 두려운 것도 사실이었다(그래도 많이 발전했다. 첫째, 여행이를 낳은 후에는 푸하하 웃다가 수술한 곳이 터질까 봐 무서워서 난데없이 엉엉 울기까지 했으니까. 울다가 웃다가... 곁에서 지켜보던 남편은 웃을 수도 없고 따라서 울 수도 없고 얼마나 심란했을까!).


뒤돌아 보면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참으로 빠르게도 흐르고 일은 조금씩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수술 직후, 혼자서는 고개를 들지도 몸을 옆으로 돌리지도 못한 채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던 내가 그다음 날에는 몸을 반쯤 일으켜 앉을 수 있게 되었고 하루가 더 지나서는 소변줄을 떼고 침대 아래로 내려와 수액이 달린 지지대를 잡고 걷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하루가 더 지나서는 수액과 진통제를 떼고 며칠 동안 나의 팔에 박혀 있던 주사 바늘을 빼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퇴원을 했다. 첫째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려고 마음먹었다가 친구들의 강력한 설득에 힘입어 바로 조리원으로 들어온 이후에는 회복이 더욱 빨라졌다. 나를 미쉐린 타이어 캐릭터럼 만들어 버렸던 산후 부종도 거의 다 사라져 움직임이 훨씬 편해졌고 도움 없이는 모션베드에서도 혼자 내려올 수 없었던 내가 이제는 일반 침대에서도 혼자서도 단숨에 내려오게 되었다. 수술 부위 감염 때문에 금지되었던 샤워를 이제는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도, 보글보글 샴푸 거품 내어 머리를 깨끗하게 감을 수 있다는 사실도, 오랜만에 다시 해보는 수유도 며칠 사이에 익숙해져 이제는 편안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도 모두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 중 하나.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나 혼자서 해낸 것일까? 홀로 침대에 누운 조리원에서의 밤,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아니다. 나 혼자서 이루어낸 것이 절대 아니었다. 아마도 나 혼자서는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수술 후 3박 4일 동안 휴가를 내고 나와 같은 병실에 머물며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오로를 당연히 해야 할 일처럼 깨끗하게 닦아 주고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내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 주고 수유를 해야 할 때면 밤중에라도 벌떡 일어나 아이를 내 품으로 데려와 주고 함께 자세를 잡아 준 사람. 아이가 똥, 오줌을 쌀 때면 귀찮은 기색 없이 언제라도 깨끗한 기저귀로 갈아준 나의 남편이 없었더라면 입원 기간 내내 모자 동실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게 분명하다. 우리 부부의 첫째 아이, 여행이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도 잊을 수 없다. 병원에서도 조리원에서도 성인 한 명만 보호자로 지정해 그 이외의 가족은 면회가 불가능한 까닭에 단짝처럼 붙어 지내던 나와 여행이는 며칠 째 서로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하고 있다. 내가 그러하듯 여행이도 엄마가 보고 싶은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그리고 실내에만 있느라 봄이 온 것을 모르고 지나가는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다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사진을 찍어 보낸다. 아이의 등하굣길을 가득 메운 흐드러지게 핀 벚꽃, 눈처럼 휘날리는 게 너무 아름답다면서 보내온 벚꽃잎들, 오늘은 새털구름이 너무 예뻐서 찍었다는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이 어우러진 사진... 여행이 생각만 하면 감성적이 되어버리는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나려고 하지만 그래도 외동에서 이제는 첫째가 된 나의 여행이가 보내오는 메시지와 사진을 보며 매일매일 힘을 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제 막 세상에 발을 디딘 우리의 둘째, 바다가 있다. 사실, 지금 상황에서 바다에서 바라는 것은 그저 건강하게 잘 자라달라는 것뿐.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만져야 할지 모를 정도로 조그맣게 태어난 그 아이는 고맙게도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가며 매일 조금씩 통통해지고 점점 우렁찬 목소리로 울면서 무럭무럭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다. 그리고 나는 바다의 성장을 바라보며 더 이상 바라는 게 없을 정도로 감사한 나날을 보낸다.


셋으로 완성된 줄로만 알았던 우리 가족에게 둘째 아이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 작은 생명체가 이제는 남편과 나, 그리고 여행이의 곁에 손에 잡히는 하나의 존재로서 도착해 있다. 4인 가족이라는 단어가 아직도 낯설기는 하다. 그렇지만 우리 넷, 그래, 우리 넷은 곧 다시 만나 한집에 모여 살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요즘의 나는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2014년의 여행이와 2024년의 바다. 이제 우리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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