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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Sep 17. 202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이 있는 곳으로

아일랜드 더블린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

주룩주룩.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이렇게 축축한 날에는 집에서 그냥 뒹굴거리고만 싶어 진다. 따뜻한 방에 배 깔고 누워 맛있는 거 먹었다 재미있는 거 읽다 졸다를 무한 반복. 온몸에 도톰한 이불을 돌돌 말고 있다면 금상첨화일 테지. 아아, 상상만 해도 행복해.


하지만 그날만은 그럴 수가 없었다. 아니, 한시라도 빨리 바깥으로 나가고 싶었다. 홀몸으로 우산을 들고나가기에도 버거운 날씨에 굳이 어린 여행이를 눕힌 유모차에 방수커버까지 씌우는 요란을 떨어가며 거리로 나선 이유는 바로, 그날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을 보러 가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비가 내리고 바람이 몰아치는 더블린(Dublin)의 거리로 나섰다.


도시의 바람에게서 측은지심을 기대한 내가 어리석었다. 한 손으로는 유모차를 번갈아 끌고(나만 고생할 순 없다! 여보야, 이제 자기 차례야!) 다른 한 손으로는 우산을 들고 겨우겨우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바람은 어찌나 세게 불어대던지. 집을 나설 때부터 불안 불안하던 내 우산이 결국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집히고 말았다. 시쳇말로 쪽팔린 건 둘째치고 뒤집힌 우산으로는 내 머리통에 내려 꽂히는 빗방울을 막을 길이 없기에 나는 그것을 다시 제 모양으로 되돌려 보겠다고 고군분투했다. 꽃봉오리 모양으로 하늘을 향한 채 펼쳐진 우산을 들고 허둥거리는 내 모습은 꽤나 우스꽝스러웠으리라. 하지만 오늘이 어떤 날인가. 목적지 생각에 마냥 마음이 들뜬 나와 울 낭군은 비바람이 휘몰아쳐도 우산이 뒤집혀도 그저 재미있다고 신나게 깔깔깔 웃었다.

 


한 번 해보더니 맛이 들렸는지 자꾸만 다시 뒤집히려는 우산을 살살 달래 가며 얼마나 더 걸었을까. 자동차와 사람으로 북적이는 더블린 시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선 곳엔 바깥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더블린 지성의 상징,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 Dublin)였다. 겨우 문 하나를 경계로 이렇게나 다른 풍경이 숨어 있다니. 캠퍼스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차분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아일랜드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는 이 섬나라에서 가장 긴 역사를 지닌 대학교라고 한다. 1592년, 당시 영국과 아일랜드를 통치하던 엘리자베스 1세는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를 모델로 하여 교육기관을 설립한다. 이후 더블린에 기증되었다는 그 학교가 바로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다. 당시 아일랜드의 국교가 성공회였던 터라 설립 초기에는 성공회 교도들만이 이곳에서 수학할 수 있었지만 이후 1793년부터는 가톨릭 신자도 입학할 수 있게 되었고 1873년부터는 타 종교를 가진 이들의 입학도 허용하기 시작했다고. 우리에게는 『걸리버 여행기』로 친숙한 조너던 스위프트(Jonathan Swift),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를 비롯해 유명 시인이자 극작가인 윌리엄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등도 트리니티 칼리지 출신이다. 한 때는 청년이었을 그들이 밟았던 오래된 자갈길을 걸으며 그 길만큼의 역사를 품고 있는 건물이며 나무, 풀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있노라니 시공간이 뒤섞이는 것 같은 생각에 기분이 묘해진다.


사실 내가 다니는 학교도 아니고 아일랜드하고도 더블린에까지 날아가 남의 학교엘 굳이 방문한 이유는 이곳에 우리의 목적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트리니티 칼리지를 찾는 여행자 대부분이 같은 곳을 향하지 않을까? 우리 가족이 그곳을 방문한 날도 예외는 아니었는지 빗속에서도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Trinity College Library Dublin) 앞에는 길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은 아일랜드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도서관이며 이곳에는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를 포함한 무려 500만 점의 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소장품이자 우리 가족을 이곳으로 이끈 것은 다름 아닌 켈스의 서(Codex Cenannensis, The Book of Kells). 아일랜드 역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보물로 간주되는 책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서기 800년 경에 만들어진 이 아름다운 책은 라틴어로 작성된 복음서로 예수의 전기와 네 개의 복음을 담고 있다. 워낙에 오래된 책이기도 하지만 켈스의 서를 이토록 특별하게 만들어준 가장 큰 요소는 뭐니 뭐니 해도 거의 매 페이지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화려한 장식이란다. 기독교적인 문양과 켈트 특유의 패턴 등이 어우러져 글자가 그림인 듯 그림이 글자인 듯 황홀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안다. 화려하다고 다 아름답지는 않다는 것을. 하지만 그 어려운 것을 켈트의 서는 보란 듯이 해냈다. 이런 작업은 누가 시킨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닐 다. 모태 신앙에 가깝지만 아직도 연중행사로 종교 생활을 하는 난, 종교 관련 유물을 만날 때면 그것을 탄생시킨 이들이 갖고 있었을 강한 믿음이라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아일랜드의 국보를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켈스의 서를 보기 위해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을 찾는 방문객 수가 매년 50만 명에 이른단다. 이것이 바로, 작지만 강한, 책이라는 매체의 힘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닐까?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에서 방문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켈스의 서뿐이 아니었다. 도서관의 중심이 되는 롱 룸(The Long Room)이 선사하는 감동도 못지않았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롱 룸은 긴 회랑 형식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 길을 따라 양쪽으로는 마치 거인처럼 큰 키의 우아한 모양새의 서가가 줄지어 서 있는데 그곳에 빼곡하게 꽂혀 있는 책이 무려 20만 권이 넘는다 했다. 그 놀랍도록 아름다운 광경이란! 회랑이 눈에 들어온 순간 우와 소리를 내뱉은 것은 비단 우리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곳은 영화, 해리포터(Harry Porter)의 촬영지이기도 하기에. 헤르미온느가 책을 읽는 장면을 여기에서 촬영했단다. 로케이션 디렉터의 마음을 이해한다. 이런 멋진 도서관을 눈앞에 두고 그 누가 촬영 욕심을 내지 않을 수 있겠어.

그나저나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각양각색의 책을 바라보노라니 그것들을 다 읽은 것처럼 벌써부터 배가 불러온다. 수학의 정석을 사자마자 찾아오는, 이미 그 안의 문제를 다 푼 것 같은 든든한 느낌이랑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아, 홍성대 선생님께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수학의 정석이랑 비교하는 것은 아무래도 롱 룸에 미안한 일이려나?


아일랜드의 자존심과도 같은 도서관을 뒤로하고 나오는 길, 새벽 나절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창밖 풍경을 보며  오늘의 계획을 취소할까 라고 고민했던 잠시의 시간후회했다.  아침, 용감하게 집 문을 박차고 나온 우리를 우쭈쭈쭈 많이 많이 칭찬해.



INFORMATION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Trinity College Library Dublin)

주소: Old Library, College Green, South-East Inner City, Dublin 2, D02 VR66, Ireland

웹페이지: https://www.tcd.ie/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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