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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Dec 13. 2021

두바이 스케일 문구점 구경 가실 분?

없는 것 빼고 다 파는데 없는 게 거의 없어요

어렸을 적엔 학교 앞 문방구에 가는  그렇게 좋았다. 돈을 쥐고 든든한 마음으로 가게엘 들어서던 날보다 주머니엔 비록 땡전 한 푼 없다 해도 오늘은 또 어떤 재미난 물건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를 궁금해하며 수많은 아이들이 드나들어 닳을 대로 닳아버린 문턱을 넘었던 날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언젠가 용돈을 타면 구매자가 될 수도 있는 잠재력을 가졌으나 지금 당장의 구매력은 없는 이는 나 혼자만이 아니어서 딱 봐도 특별한 목적 없이 그냥 구경만 하러 문구점을 찾은 꼬마로 넓지 않은 공간은 늘 북적이곤 했었다. 그래서였을까. 하교 후 문방구에서 어슬렁거리는 시간 나에게는 늘, 축제처럼 느껴졌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생활 반경이 조금 더 넓어진 이후로는 우리 학교 교문 앞 조그만 문방구 외에도 선택지가 많아졌다. 어른 같던 언니와 오빠들이 교복을 멋지게 차려 입고 오가던 집 근처 고등학교 정문 앞길이 특히나 매력적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 길엔 내가 다니던 학교 앞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온갖 화려한 물품으로 가득 찬 크고 멋진 문방구가 두 곳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쭈뼛쭈뼛, 그러나 며칠이 지나지 않아 당당하게 바뀐 발걸음으로 나는 그 환하고 크고 아름다운 공간엘 드나들기 시작했다. 일주일도 넘게 구경하고 고민을 하다가 결국 셈을 치르고 들고 나오는 것은 공책 한 권, 지우개 한 개, 또는 샤프펜 하나에 불과했지만 그 작은 이벤트는 어린 나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두바이에서 시작할 여행이의 학창생활을 준비하며 한국을 떠나기 전 나는 각종 문구류를 주문했다. 오래전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노트부터 시작해 연필과 샤프펜, 혹시 필요할 날 있을까 싶어 고른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자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선택한 스케치북 한 뭉텅이, 알록달록한 색연필, 그리고 물감까지. 안 그래도 많은 이삿짐에 라면 박스 하나 크기의 상자 한두 개 추가된대도 대세에 지장은 없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나는 이것저것 알차게 골라 담았다.

그런데 아뿔싸! 두바이에 오자마자 나의 즐거운 문구 쇼핑이 사실은 의미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여행이의 학교는 대부분의 학습 활동을 아이패드 등을 이용해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터라 일단 들고 다닐 교과서가 없고 공책과 필기구를 비롯한 문구류 일체는 학교가 제공하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등교 첫날에는 필통에 색깔별로 필기구를 얌전히 줄 맞춰 넣고 한 번도 쓰지 않아 뽀얗게 예쁜 지우개와 자까지 챙겨 넣어 보냈다. 그런데 필통을 한번 열어본 기색조차 없길래 이후로는 커다란 가방 안에 간식통이랑 도시락만 챙겨 보내고 있는데 나는 그게 왜 그리도 서운한지 모르겠다. 그래, 매년 내는 학비가 얼만데 문구용품 값이라도 학교에서 대신 내주면 나야 고맙지 싶다가도 차라리 다른 걸 제공해주고 나에게 문구류 쇼핑의 즐거움을 돌리도~~라고 외치고픈 마음이 마치 부메랑처럼 자꾸자꾸만 나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두바이로 이사 온 날로부터 꽉 채워 10개월을 넘긴 지난주의 어느 날, 나는 두바이에서 가장 문구점 중 한 곳에 다녀왔다. 이 도시로 건너오기 전부터 꼭 한번 다녀오겠다고 마음먹었던 곳이다. 크리에이티브 마인즈(Creative Minds)라는 이름을 가진 이 가게는 두바이의 알 바샤(Al Barsha)와 알 와슬(Al Wasl)에 자리한 두 개 오프라인 매장과 더불어 온라인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없는 것 빼고 다 파는데 없는 것은 거의 없는 곳으로 단순히 문구점이라고 부르기엔 미안한 가게라 하겠다.

일단 매장 사이즈가 두바이 스타일로 몹시 크고 판매하는 물품의 종류도 엄청나다. 문구류와 미술용품류는 물론이거니와 셀프 인테리어와 가드닝에 필요한 온갖 제품들과 책, 장난감과 파티용품, 여기에 각종 코스튬류, 그리고 심지어는 가구까지 파는 그곳에서 놀랍게도 나는 두 시간도 넘게  머물렀다. 마침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 초라 그랬는지 매장 안에는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와 각종 오너먼트들까지 반짝이고 있었고 그들이 발산하는 에너지에 넘어간 나는 파티용 접시세트와 크리스마스 오너먼트 몇 개, 그리고 어디에 써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물건들까지 몇 개 집어 들고 말았다. 꼭 도매점처럼 생겨가지고 가격은 전혀 저렴하지 않은 소매점 가격이었고 사실 그날 내가 필요했던 것은 펠트지 딱 두 장이었는데...


부족한 것보다는 남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넉넉하게 쟁여와서 그런지 아직도 우리 집엔 한국에서부터 사온 문구류가 한 박스 가득 남아 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여행이가 하루가 멀다 하고 그림을 그려제꼈는데도 아직도 남아 있으니 이건 화수분이야 뭐야. 여하튼 사둔 건 다 쓰고 나서 새것을 사도 사자고 굳게 마음을 먹었지만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에 다녀오고 나니 마음이 흔들린다. 어린 시절에 즐겨 찾던 문방구 생각도 나고... 자, 그러면 다른 데서 조금 아끼고 가끔, 아주 가끔 가서 구경이나 해볼까? 아, 이 생각에까지 이르다니, 망했네, 망했어.


진짜 진짜 별걸 다 파는 이곳은,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알 와슬점. 매장이 두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으니 둘 다 구경해보시길.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에서 산 펠트지랑 집에서 돌아다니던 인형으로 만든 크리스마스 모자. 여행이가 신나게 쓰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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