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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Nov 17. 2021

내리사랑의 역사

친정엄마의 생신 즈음에

매년 친정 엄마의 생신 즈음이면 나는 늘 같은 장면을 떠올린. 그날이 엄마의 생신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이제는 희미한 옛일이 되어버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그날 외할머니댁 안방에는 외할머니와 외숙모, 이모들과 작은 외삼촌이 다 함께 동그랗게 둘러앉아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삼십 년 전쯤의 이야기니 그 자리에서 오갔던 대화의 대부분을 잊어버린 건 당연지사. 하지만 딱 한 문장만은 지금껏 내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나도 이제 마흔이야."


나도 이제 나이가 먹을 만큼 먹었다고, 나도 이제 마흔이라고, 내 기억 속 참으로 젊고 예뻤던 나의 엄마는 말씀하셨다. 그 말의 의미가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 그때는 몰랐고 그 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러는 사이 내가 그 '마흔' 고개를 넘어버렸고 그날 그 이야기를 했던 내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늠해 가 살아가고 있다.


며칠 전은 친정 엄마의 생신이었다. 엄마는 음력으로 생일는 터라 매년 1월이 되면 난, 엄마의 생신을 잊고 지나치지 않기 위해 그해의 디데이를 확인해 달력에 표시해 놓곤 하는데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 눈 깜짝 사이에 다시금 엄마가 주인공인 날이 된 것이다. 올해도 여느 해처럼 나도 이제 마흔이라던 엄마의 앳된 목소리를 떠올려보고 가만, 우리 엄마가 몇 세가 되셨더라? 계산해 보다가 늘 젊기만 할 것 같았던 나의 엄마도 이제 예순을 훌쩍 넘겨 곧 일흔을 바라보는 연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국을 떠나 살 때마다 가장 아쉬웠던 점 중 하나는 가족들의 생일을 곁에서 축하하지 못한다는 이었다. 나도 이제 제법 나이가 들었고 벌써 네 번째 해외살이이기도 하니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눈앞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고 생일을 축하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해가 갈수록 커지는 것만 같다.


"내가 보라색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알고 그 색깔이 들어간 케이크를 사놨는데 그게 얼마나 예쁘고 고마웠나 몰라."


나이답지 않게 꽤나 어른스러운 나의 첫째 조카가 평소 외할머니를 관찰해 취향을 파악해 놓았외할머니, 그러니까 나의 친정 엄마가 좋아할 만한 케이크를 마련해 뒀더란다. 외국에 산다고 영상통화만으로 축하를 하고 마는 이모보다 네가 낫다 나아,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에 엄마가 추억에 젖은 얼굴로 덧붙이셨다. 할머니 생일 준비를 한 손주들을 보니 나와 내 동생이 어릴 적에 우리의 할머니를 위해 깜짝 파티를 준비하던 생각이 나신다는 거였다.

깜짝 파티? 무슨 깜짝 파티요?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동생은 우리 둘이 거실에서 할머니의 생일 파티를 다 준비할 테니 어른들은 파티가 시작될 때까지 절대 절대 방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고 한다. 그리곤 내가 준비를 하는 사이 동생은 엄마, 아빠의 방과 할머니가 계시던 방을 계속해서 오가며 "파티 시작까지 10분이 남았습니다! 5분이 남았습니다! 4분이... 3분이... 2분이... 1분이 남았습니다!"라며 어른들이 방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그렇게 깜찍한 짓을 했단 말이야? 내 기억 속에서는 끔하게 증발되어버린 이야기가 내 엄마의 기억 속에선 마치 오늘 아침에 일어난 처럼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엄마가 아직까지 기억하고 계신 일을 나는 기억하지 못해 죄송했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을 이제껏 기억해주는 엄마에게 감사했.


여행이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땐 아이의 존재 자체가 신비였다. 지구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조그만 생명체가 무얼 해도 신기했고 어떤 행동을 해도 사랑스러웠다. 아이가 그 조그맣고 반짝이는 눈으로 내쪽을 바라만 봐도 감격스러웠으며 이제와 뒤돌아 보면 무엇이었는지 알 수도 없는 외마디 소리조차 여행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면 나를 향해 던지는 의미 있는 말처럼 느껴졌다. 크레파스를 힘겹게 쥔 여행이가 하얀 종이에 가까스로 점 하나 찍고 줄 하나 그어도 그것조차 너무 소중해 한참을 버리지 못하고 보관할 정도였다. 언제까지나 잊지 않고 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간직하고픈 장면이 너무나도 많은데 절대 잊지 겠노라 다짐하고는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내 기억력이 아쉬 나는 매일매일 우리 아이와의 추억을 기록했다. 처음 미소를 지은 순간, 첫 옹알이를 하던 날, 앞만을 바라보던 여행이가 힘겹게,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시도와 실패를 번갈아 하다가 드디어 고개를 옆으로 돌렸던 날. 우리의 하루는 단순했지만 그 안은 기록할 가치가 있는 반짝이는 순간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한 살이었던 여행이가 두 살이 되고, 세 살, 네 살이 되어가면서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들에 나도 모르게 익숙해졌던가 보다. 아이의 성장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마음이 커진 반면 조그마한 변화에도 감사하는 마음은 조금씩 옅어져 갔다. 과거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쓰던 여행이의 성장일기 또한 이틀에 한 번, 삼사일에 한 번, 그러다가 일주일에, 한 달에 한 번으로 점점 드문 빈도로 쓰게 되었다. 내 뇌는 전보다 더 허술해졌으니 보관되지 못하고 증발해버리는 기억은 더 많아졌을 수밖에.


여행이가 학교에 간 사이, 아이의 방을 치우다 보니 우리 집 꼬마 혼자서 그려놓았을 그림과 사부작사부작 썼을 글들이 책상 위에 산처럼 쌓여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줄 하나도 삐뚤빼뚤 힘겹게 그리던 우리 아이가 언제 자라서 이렇게나 멋진 작품들을 완성하게 되었을까.

여행이의 그림을 보다 보니 엄마의 생신 즈음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나의 머릿속에서는 있을 자리를 찾지 못한 기억이 내 엄마의 마음속에선 언제까지고 소중하게 간직되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선사한 놀랍도록 따뜻한 기분까지 덩달아 떠올랐다. 이렇듯 내 부모가 나에게 전해준 사랑의 기억들이 이제는 시나브로, 나로부터 나의 아이에게로 전해지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한 시간 후면 하교하는 여행이를 데리러 간다. 아이를 만나면 책상 위를 왜 안 치우고 그림을 그렇게 많이 쌓아두었냐고 혼내기보다 그림 참 잘 그렸다고, 우리 여행이, 진짜 화가 같다고 마음껏 칭찬을 해 줄 것이다. 내 엄마 덕분에 나에게 온 사랑이 여행이에게도 온전히 전해질 수 있도록.


칭찬만 하기엔 굳은 결심이 필요하게 만드는 여행이의 책상
하지만 나는 여행이를 칭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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