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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Nov 08. 2021

낙타야 낙타야

낙타야 우지 마라

우리 가족이 낙타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6년 반 전의 일이었다. 당시, 우리는 미국에서 살고 있었고 여행이는 태어난 지 겨우 6개월이 된 아가였다. 6일 전도 아니고 무려 6년 전의 일인데 내가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태어나서부터 줄곧 모유로 커왔던 여행이가 처음으로 이유식을 먹은, 아... 먹었다고 표현해도 되려나? 여하튼 이유식 먹는 것에 도전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뭐 대단한 요리를 하는 것도 아니었으면서 그날 난 몹시도 긴장이 되고 바빠 아침부터 종종걸음이었다. 우리 여행이에게 먹일 첫 번째 이유식을 직접 만들어야 했기에. 그것도 요알못인 나 혼자서! 미국의 우리 집에까지 날아와 집안일이며 내 몸조리, 그리고 여행이를 보살피는 일까지를 도맡아 해 주시던 친정 엄마가 3개월을 꽉꽉 채워 머물다가 한국으로 귀국하신 후, 나와 울 낭군은 그제야 시행착오를 온몸으로 겪어 가며 진정한 부모가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빙빙 돌려 말했는데 짧고 굵게 말하자면, 아직 부모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어리바리한 부부였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울 낭군은 무슨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이유로 나와 여행이를 남겨 두고 혼자서 저 먼 아랍에미리트로 날아가 있던 상황이었다.


책에는 모유만으로 키운 아이는 생후 6개월이 되면 이유식이라고 부르는 고형식을 먹이기 시작해야 한다고 쓰여있었다. 대망의 아침이 밝자 나는 이유식 책을 마치 성경책 펴놓듯 활짝 펼쳐 놓고 조심스레 쌀을 퍼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쌀 15 그램을... 아, 너무 많이 담았나? 조금 덜자. 아차! 너무 많이 덜어냈나? 그럼 조금만 더 도로 붓고... 쌀의 분량이 책에 적혀 있는 것과 조금만 달라도, 물을 붓고 끓이는 시간이 조금만 더 길거나 짧아도 여행이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잘못될 것만 같아서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길로 책님이 시키시는 대로 쌀미음을 끓여냈다. 임금께 올리는 신선로 끓이듯 정성을 다해 끓인 쌀미음은 준비를 끝내고 나니 허무할 정도로 맹숭맹숭해 보였고 양도 황당할 정도로 적었다. 그땐 몰랐지. 그 조그만 이유식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여행이와 내가 사십 분도 넘게 씨름을 하게 될 줄은.


여행이는 먹성이 놀라울 정도로 좋은 아기였다. 낮에는 수유를 하고 조금 쉬어볼까 하면 또다시 배고프다고 앙앙 울어서 다시 수유를 하고 또다시 수유를 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덧 밤이 되곤 했는데 어린아이들은 밤에도 마치 낮처럼 중간중간 잠에서 깨어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는 을 몰랐던 나는 여행이의 사이클에 맞춰 나까지 밤중에 깨어 수유를 하고 아이가 다시 잠들면 꾸벅꾸벅 졸면서 유축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여행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잠이 부족하니 체력도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우울한 감정까지 찾아들어 힘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언제나 복스럽게 잘 먹는 여행이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것을 보는 것은 비할 데 없는 기쁨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유식을 먹이는 일도 쉬울 줄 알았다. 숟가락으로 음식을 퍼 입 근처에 갖다 대기만 하면 여행이가 그 귀여운 입을 앞으로 쭉 내밀고 덥석 받아먹을 줄 알았는데 이럴 수가. 뒤돌아 생각해 보니, 숟가락이라는 낯선 물건을 자기 입 안에 넣은 후 그것에 담겨 있는 음식만 쏙 핥아먹는 방법 자체를 처음 접하는 여행이 입장에서는 숟가락이고 이유식이고 모두 다 공포였을 것이 분명하다. 나 그동안 잘 먹고 잘 살았는데 이게 뭐야아~ 내 쭈쭈 도로 주세요~잉잉잉~


숟가락이 다가올 때마다 여행이는 고개를 좌우로 쉼 없이 돌리고 팔다리를 바둥거리며 울고 불고 난리였다. 그 와중에 그래도 조금이라도 이유식을 먹여 보겠다고 나는 고군분투를 했다. 사십 분도 넘게 그 난리를 치렀지만 여행이는 내가 준비한 15 그램의 쌀을 끓여 만든 이유식의 반도 먹지 않았다. 그마저도 사라진 이유식의 반 이상은 여행이의 얼굴과 머리, 그리고 옷에 덕지덕지 묻어 있는 상태. 평화로운 풍경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우리의 첫 아이가 처음으로 이유식을 먹는 순간을 함께 하지 못해 너무나도 아쉬워하는 울 낭군을 위해 나는 쌀미음이 눌어붙어 끈적해진 손가락으로 카메라를 쥐고는 중간중간 여행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울 낭군에게 보내주었다.


낙타가 등장한 순간이 바로 이때였다. 처참한 첫 이유식 현장의 사진에 대한 답례로 울 낭군이 낙타한테 뽀뽀를 하는 사진을 보내온 것이다. 자기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의미, 아랍에미리트에 가면 이렇게 재미있는 것도 할 수 있으니 다음에 꼭 우리 가족이 다 함께 가자는 의미였으리라. 실제로 그런 문자를 같이 보냈던 것도 같다. 그런 마음을 알면서도 낙타 X이랑 바람이라도 난 것 같은 울 낭군의 사진을 보고 나는 어찌나 부아가 치밀던지.


아랍에미리트도 싫고 낙타도 싫었는데 어쩌다 보니 나는 지금, 어쩌면 강아지보다도 낙타가 더 많이 살고 있을지도 모를 아랍에미리트에서 지내고 있다.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가 있는 두바이 도심을 벗어나 조금만 차를 달려도 주변의 풍경은 사막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가로이 노닐고 있는 낙타들을 만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신기할 것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도심에서도 낙타 동상은 흔하고 알 파히디(Al Fahidi historical Neighbourhood) 같은, 우리나라로 치면 용인 민속촌과 유사한 곳에 가면 살아 있는 진짜 낙타를 만져보거나 먹이를 줄 수도 있다. 몇몇 호텔에서는 라이딩 체험 프로그램도 제공하니, 사막의 나라에서 낙타를 만나기란 오버 조금 보태면 한강 공원을 걷다가 강아지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인 것이다.


심심한데 낙타나 보러 갈까?

여행이와 낙타의 첫 만남은 알 파히디에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지역의 전통 건축물들이 보고 싶었고 과거 두바이의 모습이 궁금해 찾아간 그곳엔 진짜로 살아 있는 낙타가 있었다. 그것도 입구 바로 옆에. 엄마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여행이는 책에서만 보던 동물을 그렇게나 가까이에서 만나 너무나도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하긴, 이 지역에서야 흔하지 낙타가 어디 쉽게 볼 수 있는 동물이던가. 예상 가능하게도 여행이는 내가 원하던 전통거리 쪽이 아닌 낙타 앞으로 직행했다. 그리곤 그 낯선 동물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직 햇살이 뜨거운 시기라 나는 이제 그만 다른 곳으로 이동을 했으면 했지만 여행이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움직일 줄을 몰랐다. 우리 가족 외에는 관람객도 거의 없었고 게다가 낙타 우리 바로 옆엔 염소들까지 살고 있었기에 여행이는 눈을 끔뻑거리는 그 순해 보이는 동물들이 마치 제 애완동물인 것 마냥 슬쩍슬쩍 만지고 이리저리 살피느라 바빠 전통 건축물이고 뭐고 다른 주제엔 전혀 시간을 내어 줄 준비가 안 된 것 같았다.



그 이후에도 우리는 몇 번이나 더 낙타를 보러 다녀왔다.  등에 올라 타 사막이며 해변을 베두인들이 그러하듯 거닐어 보기도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몸집이 크고 눈이 참 예쁜 그 동물은 양 끝이 순하게 내려간 모양에 촘촘하게 박힌 속눈썹을 하고는 무심한 눈길을 어디라고 콕 집어 말하기 힘든 방향으로 던지고 있었다. 도심에서 만난 낙타들은 좁은 우리에 갇혀 있다가 가끔 자기들을 만나러 오는 관람객들을 맞이할 뿐이니 그 삶이 참 무료할 것도 같았고 사막이나 해변에서 관광객들을 제 등에 태우고 그 주변을 빙빙 도는 일을 하는 낙타들은 참으로 힘겨워 보였다. 특히 몸집이 큰 사람들을 태운 채 굽혔던 무릎을 펴고 다시 일어나야 할 때면 거의 울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곤 했다. 그 울음소리가 나에겐 무릎을 너무 많이 접었다 폈다 해야 해서 힘이 드니 이제 제발 그만 하게 해주세요라고 외치는 것만 같아서 무섭고 마음이 아팠다.

그 울음소리를 들은 이후, 나는 낙타를 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처음 한 두 번이야 호기심에 탔지만(지금 생각하니 그것도 미안하다) 어리디 어린 낙타가 내던, 마치 관절염에 시달리는 노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듯한 울음소리가 잊히지 않아 다시는 그 등에 올라타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조만간 여행이의 친한 친구 가족들과 함께 낙타 농장에 가기로 약속을 했다. 한때는 사막을 유영했을 그 동물을 가까이에서 보며 신이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좋긴 하지만 나는 혹여나 그 순한 눈빛의 동물이 또 구슬픈 울음소리를 낼까 봐 두렵기도 하다. 그곳에서도 낙타 등에 올라타는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면 이번에는 하지 말자고 여행이를 설득해 볼 작정이다. 세상은 발전했지만 참으로 많은 이해관계가 생겨 사람과 동물이 양쪽 다 행복하게 공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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