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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Dec 22. 2021

두바이 엑스포에서 만난 겨울

두바이 스타일 겨울, 그리고 크리스마스

친정부모님과 나, 그리고 내 동생이 들어가 있는 단톡방에 새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뜬다. 누가 어떤 메시지를 보낸 걸까 궁금해 냉큼 들어가 보니 동생이 사진을 자그마치 열여섯 장이나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보고 또 봐도 보고 싶은 귀여운 조카들 사진이다. 두툼한 패딩에 모자와 장갑으로 중무장한 아이들이 눈썰매를 끌고 어디론가 바쁘게 걸어간다. 눈 쌓인 땅이 마치 제 집 안방인 양 바닥에 대자로 누워있기도 하고 알록달록한 스노우볼 메이커로 열심히 눈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겨울옷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아주 조그맣지만 추위와 기쁨으로 그 동그란 얼굴들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모가 살고 있는 먼 나라에까지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지난 며칠간 한국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고 한다. 여기저기에서 그런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래, 한국의 겨울은 눈이지. 올 초, 우리 가족이 한국을 떠나오던 겨울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 집 앞 놀이터 눈싸움은 기본, 마트에 재고가 다 떨어졌다길래 당근 마켓에서 간신히 공수한 눈썰매로 여행이는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썰매까지 원 없이 타고 아랍에미리트 바이로 이사를 왔다. 눈은커녕 일 년 중 가장 추운 지금도 기온이 20도 아래로는 내려가는 일이 드물다는 핫뜨거뜨거 중동으로.


두바이에서도 눈을 만나볼 수는 있다. 에미리트 몰(몰 오브 디 에미리트, Mall of the Emirates)에 자리한 실내 스키장, 스키 두바이(Ski Dubai)에서 말이다. 그곳에서 겨울 기분을 느껴볼 수는 있겠지만 사실 나는 인공눈 말고 하늘에서 내려와 땅바닥에 소복이 쌓이는 진짜 눈이 보고 싶다. 바닥을 두툼하게 덮고 있는 새하얀 눈을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내가며 밟고 싶고 아무도 안 밟은 갓 펼친 새 도화지 같은 바닥을 찾아 내가 제일 먼저 발자국을 남겨보고도 싶다. 급한 마음에 깜빡하고 장갑을 안 챙겨 나와 손이 당장에 떨어져 나갈 것처럼 시려도 꾹 참고, 가끔은 꽁꽁 언 손을 입김으로 호호 녹여 가며 작은 눈사람도 하나 만들고 싶다. 그래서 12월이 되자 나는, 눈이 많이 내릴 만한 나라들로의 여행을 계획해 보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아주 예전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어서 일찌감치 버킷리스트에 넣어두었던 핀란드의 로바니에미 같은 곳으로. 하지만 이런저런 상황을 고려해 보니 이번 겨울에 아랍에미리트를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을 듯해 우리 가족은 그냥 이 나라에서의 첫겨울을 만끽해 보기로 했다. 사실 이곳도 우리에겐 아직 낯선 땅, 반쯤은 여행지가 아닌가. 게다가 지금 두바이에서는 비행기 한번 안 타고도 전 세계 수많은 나라들을 만나볼 수 있는 행사가 열리고 있으니 손 안 대고 코 풀고 싶은 사람, 여기 여기 모여라!


2021년 10월 1일부터 2022년 3월 31일까지, 장장 6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두바이 엑스포(Expo 2020)는 인정 엑스포로 구분되는 대전 엑스포나 여수 엑스포와는 다르게 전시 규모 제한이 없는 등록 엑스포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또 아랍에미리트의 특기 아니겠습니까? 하여, 이 나라는 엑스포를 위해 여의도 면적의 1.5배에 이른다는 허허벌판, 아니지, 허허사막을 전시장으로 탈바꿈시키고 전철역도 아예 새로 뚫어버렸다. 192개 참가국 전체 개별 파빌리온을 만드는가 하면 매일매일 흥미로운 이벤트와 공연을 진행해 방문할 맛 나는 공간을 마법처럼 짠! 하고 탄생시킨 것이다.


지난 주말, 우리 가족은 다시 한번 두바이 엑스포장으로 향했다. 특별한 일정은 없지만 에너지는 아직 남아있는 날마다 방문했으니 시즌권 가격은 이미 뽑고도 남았다. 이미 여러 번 방문한 탓에 익숙한 곳이 많았고 벌써 몇 차례나 본 길거리 공연들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지만 그래도 방문할 때마다 나를 들뜨게 하는 엑스포 특유의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게다가 크리스마스며 연말이 다가오니 엑스포장도 반짝이는 전구와 크리스마스트리로 축제 분위기를 더한 모양새였다. 나는 가슴이 뻐근할 정도로 신이 나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 한여름 해변가에서 빨간 산타모자를 쓰고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호주 사람들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땐 저렇게 한다고 과연 정말로 크리스마스 기분이 날까 싶었는데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도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젖은 나를 보니 별빛처럼 반짝이는 알전구와 산타할아버지만 있다면 날씨랑은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든 크리스마스는, 그리고 겨울은 우리 곁에 있을 수 있는 거로구나 싶었다. 유레카!


두바이 엑스포장의 중앙에는 알 와슬 플라자(Al Wasl Plaza)라는 이름의, 거대한 돔(dome) 형태 건물 있다. 엑스포 개막식이 개최된 장소이자 매일 공연과 이벤트가 진행되는 행사장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부르즈 칼리파의 설계를 맡았던 회사에서 디자인을 맡아 돔(dome) 모양 지붕 전체에 수백 대의 프로젝터를 설치함으로써 알 와슬 플라자를 마치 캔버스처럼 활용해가며 화려한 영상쇼를 펼쳐낼 수 있도록 했단다. 운 좋게도 우리가 방문했던 날, 이곳에 설치된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점등행사가 있었다. 현대판 아고라를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공간에는 수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고 알 와슬 돔은 캐럴 스타일로 편곡한 두바이 엑스포의 주제가,  This is Our Time을 배경음악으로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풍경을 끊임없이 펼쳐내고 있었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드디어 트리에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사방에서 인공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기쁨에 겨운 표정으로 흩날리는 눈발을 손으로 잡아보려 애를 쓰고 그 풍경을 사진으로 찍었다. 덕분에 잠시, 지금 내가, 이제껏 보낸 그 어떤 겨울보다도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지금 두바이 엑스포장에 가면 두바이 스타일 겨울, 두바이 스타일 크리스마스를 즐길 방법이 무궁무진하다. 산타할아버지에게 자신이 받고 싶은 선물을 쓴 엽서를 보내면 추첨을 통해 진짜로 그 선물을 주는 이벤트도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에 여행이도 정성스레 편지를 남기고 왔다. 왠지 람보르기니 스포츠카를 받고 싶어요라고 쓴대도 두바이 스타일로 진짜 그걸 선물해 줄 것 같았지만 순진한 여행이는 축구화와 축구복이 받고 싶어요라고 적었다. 여행아, 그 정도는 엄마, 아빠도 사줄 수 있단다. 람보르기니 어떠니? 아니면 페라리라도?

아, 괜히 순진한 애까지 돈에 물들게 하지 말고 동심을 지켜줘야지. 잠시 잃었던 동심을 되찾은 나도 받고 싶은 선물을 조그맣게 되뇌어 보았다. 산타할아버지, 올해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맞이하는 더운 나라에서의 겨울을 최고로 즐겁게 보낼 수 있게 해 주세요. 아, 너무 어려운 소원이려나? 산타가 그건 좀 어렵고, 옛다, 슈퍼카! 하시는 건 아니겠지?


올해도 착하게 살았어요. 그러니 산타 할아버지, 제발 축구화랑 축구복 좀 보내주세요. 여행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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