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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Dec 31. 2021

고마웠던 2021년, 고마워질 2022년

HAPPY NEW YEAR!

어느덧.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점점 더 자주 사용하는 단어다.


어느덧, 2021년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팬데믹이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시간은 여느 해처럼 또박또박 흘렀다. 올초,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내 앞에, 아니 우리 모두 앞에 놓인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해 두려움에 떨며 숨 죽이고 지냈던 2020년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알고 있다. 우리가 지도도 없이 지나고 있는 이 터널이 과연 어떤 모양으로 구부러졌다 곧게 펴질 것인지, 혹시 반듯해졌다가 다시금 급경사를 이루구부러지지는 않을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긴긴 터널이 언제쯤 끝이 나 예전처럼 차창을 가장 아래까지 활짝 내린 채 시원한 공기를 폐 속 깊숙이까지 들이마시며 드라이브를 이어갈 수 있을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도 매사에 벌벌 떨지 않고 마음만은 자유롭게 살겠노라 마음먹었다. 지킬 건 지켜가면서도 상황이 허락할 때마다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고 가까이로 때로는 멀리로 여행을 떠나고 새로운 시도를 해가며 내 삶을 즐기겠노라고.


모든 의 손잡이마다 바이러스가 묻어 있을 것만 같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우리의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을 공기 중에도 이제는 이름을 떠올리기도 싫은 그것이 둥둥 떠다니고 있을 것만 같은 공포에 휩싸였던 시기, 국제이사를 하고 비행기를 타고 낯선 나라로 이사를 온다는 것은 분명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도 팬데믹 시기에 다른 곳이 아닌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지낸다는 것은, 이곳에서 꽉 채운 11개월을 산 지금 뒤돌아 보니 어마어마한 행운이었다. 우리가 도시로부터 정신적, 물질적으로 원하는 것은 대부분 갖추고 있으면서도 사람에 부대끼며 지내지 않아도 될 정도로 붐비지 않는 곳, 여차하면 차를 몰고 삼십 분만 달려도 하늘과 모래 외엔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 나타나니 그곳에서 원 없이 모래 멍, 하늘 멍 하며 고독을 즐기다 올 수 있는 곳, 우리 가족처럼 이 도시 태생이 아닌 이들이 대부분인 터라 타인과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포용력이 큰 곳. 게다가 그동안 유럽과 북미에서 살았던 경험은 있지만 중동지역에서 터를 잡고 지내는 것은 처음이니 매일 특별한 벌이지 않는다 해도 두바이에서 지내는 하루하루가 나에게는 일종의 여행이 아닌가.


2021년에 우리 가족은 두바이에서 일을 시작하고, 한국으로 치자면 초등학교엘 다니기 시작하고, 초등학생의 부모가 되었다. 여행이는 어른 키보다 깊은 물에서도 다이빙을 즐길 정도로 수영에 능숙해졌고 학교에 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영어를 원활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피아노도 배우기 시작해 학원에서 진행하는 콘서트 무대에 올랐고 좋아하던 그림은 가성비 최고 온라인 강의와 유튜버 한 분 덕분에 실력이 향상된 게 눈에 보일 정도다. 친한 친구들과 축구 레슨을 받은 이후론 포즈 하나만은 이미 리틀 손흥민이 되었고 예전부터 관심이 컸던 역사에 관해서는 틈틈이 책을 읽고 같은 관심사를 가진 제 아빠와 이야기를 나눈 덕분에 엄마인 나보다도 아는 게 많아졌다.


두바이로 이사오자마자, 귀임하시는 어떤 분이 내놓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0권을 덜컥 사버린 나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책을 읽고 있고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쓰려고 노력했던 덕분인지 몇 건의 기고 요청을 받아 일하는 시간에 대한 갈증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 아주 오래전 살짝 맛만 봤다 내려놓은 골프는 본격적으로 시작해서 매주 한두 번은 라운딩을 나가려 노력하고 있다. 한여름, 50도를 육박하는 날씨에 땀에 절어가며 18홀 도는 사람 나야, 나.


놀기도 열심히 놀았지만 사실 올해는 여행이의 학교 적응을 위해 시간을 가장 많이 쏟았다. 영어를 배우지 않고 두바이에 도착해버린 여행이가 받았을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싶어서 아이의 손을 잡고 영어책을 빌릴 수 있는 도서관에 들락거리고 매일 밤 잠들기 전 영어책을 읽어주고 때론 함께 앉아 책 내용을 쓰는 연습을 하는 식으로 엄마표 영어 교육을 꾸준히 했고 귀차니즘을 무릅쓰고 같은 반 학부모들에게 연락을 해 여행이의 하교 후 시간을 플레이 데이트(플데) 시간으로 채워주었다. 사실 처음엔 내가 이렇게 나서야 개학한 날로부터 몇 개월이나 지나 합류한 여행이가, 게다가 영어 까막눈인 여행이가 친구를 사귀고 영어 쓰는 환경에 친숙해질 것 같아 시작한 일이었는데 목표 달성은 물론 덕분에 나도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가진 재미난 친구들을 사귀게 되어 이제는 여행이의 플데인지 나의 플데인지 모호해지고 있다.


울 낭군. 작년에 내가 휴직을 한 이후로는 우리 집의 가정경제를 오롯이 혼자 책임지고 있어 어깨가 무거울 울 낭군은 일하느라 바쁘게 지냈다. 참으로 다정해서 평소에 나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그. 그러나 집에 와서 회사일을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스타일은 아니라 어깨너머로 은근슬쩍 상황을 가늠해볼 따름이지만 남의 돈 받는 게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울 낭군도 집에서 차로 10분이면 닿는 곳에 골프장이 있는 덕분에 퇴근한 후, 또는 주말에 정기적으로 골프를 치고 있다. 간헐적으로 떠나는 길고 짧은 여행을 제외하면 골프와 취미로 이어가는 피아노 연주가 그의 삶에 기쁨이 되어주고 있는 듯하다. 참, 한인 성당에서 반주를 시작하기도 했는데 연주는 사람의 심성을 반영하는 것일까. 울 낭군의 연주는 언제 들어도 참 포근하다.


2021년 마무리를 준비하면서 우리는 지난 며칠 동안 여행을 다녀왔다. 아부다비(Abu Dhabi) 사막에 있는 리조트에서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고 이어, 우리 가족이 참 좋아하는 오아시스의 도시, 알 아인(Al Ain)에 다시 방문해 이전 여행에서는 가보지 못했던 몇몇 곳들에 다녀왔다. 그러고 나서는 아랍에미리트에서 두 번째 높은 산을 배경으로 자리한 사막에서 글램핑을 하고 두바이로 돌아와서는 울 낭군의 생일을 맞이해 오랜만에 가족 골프 라운딩을 했다. 오랫동안 망설였지만 여행이가 하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바람에 우리 가족의 여행과 일상을 기록할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다. 여행하는가족의 유튜브답게 연말 여행을 하다가 덜컥 만들어버려서 아직 볼 게 많진 않고 자막도 배경음악도 없지만 앞으로 몹시, 굉장히, 아주우우우우~~~ 많아질 예정이니 좋아요와 구독 부탁합니다(벌써부터 유투버 모드)!!



올해의 마지막인 오늘,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몇 시간 후엔 두바이에서 인연을 맺은, 참 좋은 몇몇 가족들과 만나 바닷가에서 바비큐 파티를 할 예정이다. 이렇게 2021년이 끝을 맺어가고 있다.


많은 일들이 어느덧, 그러니까 내가 넋 놓고 있는 틈에 벌써 훅 치고 들어왔다 빠르게 뒤로 물러나 내 삶에서 사라지곤 한다. 나이가 들수록 '어느덧'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일들이 많은 듯하다. 자연스러운 일인 것도 같지만 올해처럼 내년에도 나는 조금 더 예민하게 촉수를 내밀고 살아가고 싶다. 어느덧 일어나는 일들에 내 삶을 점령당하고 싶지는 않다는 의미다.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고 여전히 지킬 것은 지키되 지금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의 삶에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은 포기하지 않고 싶다. 부디 결심을 이루어가는 한 해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나 스스로에게 당부한다.


참, 2021년아, 수고 많았고 고마웠어.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도 2021년보다 더 펄떡이는 기운찬, 그리고 행복으로 가득 찬 2022년 만들어 가시기를 빕니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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